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대구면 정수사길 459
정수사는 천개산에 있는 절로,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말 애장왕 6년(805년)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세울 당시에는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에 묘덕사와 쌍계사 두 절이 있었는데, 후에 쌍계사는 수정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것을 중종 19년(1524년) 다시 지으면서 정수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정수사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인 정수사대웅전과 보물로 지정된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볼 수 있다. 향좌측의 소조불좌상은 묵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조각승 태보와 사담에 의해 1561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시 1648년에 화원 승일 등 7명의 조각승에 의해 중앙과 향우측의 불상이 조성될 때 다시 중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석가여래삼불좌상 중 1존이 나머지 2존과 조성 시기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조성 양상마저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불상 조성 방식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5-03-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8 (부암동)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1413년(태종 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이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422년(세종 4)에는 군인들의 출입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1617년(광해군 9)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해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1741년(영조 17)에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漏穴)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2026-06-01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17-4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박의장의 넷째 아들 박선(1596~1669)이 맏형 박유를 위하여 1600년 중반에 집을 완성했다. 야산을 뒤로하고 앞들을 내려다보며 남향으로 놓여 있으며, 건물 전체가 대문채, 정침,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10칸, 측면 7칸의 ㅁ자형이고, 사랑채는 팔작지붕, 안채는 맞배지붕이다.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구조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가운데 설주의 유구와 사랑대청의 대들보, 상부에 파련대공 등 품격을 지니고 있는 큰 규모의 종택으로 무의공의 위세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고택과 함께 세월을 보낸 370년 된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2026-06-11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던 시설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국경이 명확해지면서 봉수 시설을 체계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약 12㎞마다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놓았다. 그중 영덕대소산봉수대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대소산 봉수대에 서면 멀리 영덕 축산항과 영해면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2025-11-24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예주8길 14-5
영해향교는 경사지에 건립하는 일반적인 예에 따라 대성전을 명륜당 뒤에 두는 전학후묘 방식을 택했다. 태화루를 제외한 대성정, 명륜당, 동재와 서재는 2009년에 중수하였고, 동무와 서무, 내삼문, 전사청은 전에는 없었으나 과거의 기록에 따라 이때에 새로 만들었다. 대성전에 5성, 동무와 서무에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2025-04-02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신촌동)
연세대학교에 최초로 세워진 건물로서, 1919년 착공하여 1920년 완성된 돌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 언더우드(한국 이름 원두우) 목사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서 항구적인 학교 건축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찰스 스팀슨의 기부금을 얻어놓고 세상을 떠난 뒤 후임 교장인 에비슨이 그 기부금으로 건립한 것이다. 유가족인 언더우드 부인이 초석을 놓았고 당시 화학과 교수인 밀러가 공사를 감독하였다. 설계자는 알 수 없으나 당시 미국인 건축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설계와 기본 계획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장방형의 평면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2025-11-25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164
중앙고등학교는 1908년 기호지방의 우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된 기호학교가 1910년 9월 흥사단이 설립한 융희학교를 합병하여 설립된 학교이다. 1910년 11월 모두 통합하여 중앙학교로 학교 이름을 개칭하였다. 1915년 김성수가 인수하였고, 1917년에는 계산 언덕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본관, 서관, 동관 등의 건물을 12월에 준공하였으며 당시의 교사는 2층 벽돌집이었다. 1934년 본관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935년 6월 우리나라 근대 건축가이자 고려대학교 본관과 도서관, 조선일보 사옥을 설계한 박동진(1899~1980)의 설계로 다시 착공하여 1937년 9월에 준공하였다. 중앙고등학교 본관, 서관, 동관은 각각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관은 학교 정문에서 바라볼 때 정면에 세워졌으며, 석조 콘크리트 철근 2층의 근대식 건물이다. 좌우가 대칭되는 H자형 평면의 중앙에는 중세 시대 고딕 성관풍의 4층 탑을 두고, 그 좌우로 1층에는 교무실, 2층에는 교실을 두었다. 서관은 1921년 10월에 2층 붉은 벽돌집으로 준공되었으며, 설계자는 확실치 않다. 1934년 화재로 없어진 구 본관 건물(지금의 동상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관이 있고, 오른쪽에 바로 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회백색의 화강암 돌과 붉은 벽돌로 엇물려 지은 이층집이다. 설계자는 일본인 중촌여자평이다. 평면은 T자형이며, 박공면이 돌출해 있다. 이곳에는 모두 교실을 배치하였다. 또한, 3·1운동 이후 조선 소년군 창설,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동관은 1923년 10월 준공된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1934년 화재로 소실된 구 본관 왼쪽에 지어져 건너편의 서관과 마주 보고 있다. 서관과 마찬가지로 설계자와 시공자는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 않다. 동관의 건물구조와 특징은 서관과 비슷하다. 붉은 벽돌집 슬레이트 이름의 고딕식이다. 평면은 T자형이며, 박공면이 돌출되어 있다.
2026-04-09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세렴폭포는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있는 폭포로 구룡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폭포로 알려져 있다. 높이 6.7m의 폭포로 2단으로 굽이쳐 내려오는 모습이 장쾌함을 선사한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의 산책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 가능한 치악산 대표 탐방코스이다. 출발지인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구룡사~용소~대곡안전센터~세렴폭포를 왕복하는 탐방코스로 총 3km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특히나 구룡소까지의 황장목숲길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목에 황장목 군락지는 울창하고 시원한 산책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산림욕을 즐기며 등산을 하기에 좋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등산 코스는 하절기와 동절기에 따라 입산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방문하기 전에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다. 탐방로를 끼고 이어지는 계곡도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2026-02-1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 안에 있는 아펜젤러관은 연세대학교의 본관 건물인 스팀슨관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미국 북감리 교회 최초의 선교사이자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시의 제일감리교회의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스팀슨관과 언더우드관과 마찬가지로 화학과 교수인 밀러의 감독하에 1921년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성되었다. 아펜젤러관은 스팀슨관과 언더우드관의 두 건물과 함께 ㄷ자형의 캠퍼스를 구성하며, 중앙에 있는 언더우드관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평면은 장방형이며 중앙에 현관과 계단실이 있고 본래는 이학관으로 자연과학계의 교사로 쓰였고 해방 후에는 상경관으로 상경계통에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행정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6-02-05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안에 있는 언더우드관은 이 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창립자인 언더우드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형인 존 티 언더우드의 10만 달러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1921년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공되었으며 감독은 당시 화학과 교수였던 밀러가 담당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캠퍼스의 중앙을 가로지른 백양로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의 5층으로 된 중앙의 탑은 이 캠퍼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본래 강의동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에는 대학본부 건물로 총장실을 비롯한 중요 행정부서가 있다. 구조는 돌구조로서 지하 1층, 지상 3층이며, 탑 부분은 5층이다. 이 건물은 1950년에 한국 전쟁으로 소실되어 내부와 지붕부가 크게 파괴되었으며, 전후 복구되었고 그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