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6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달아실길 24
마을 가운데에 약간 긴 네모꼴로 담장을 두르고 뒤쪽에 ㄷ자형 안채를 동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틀어서 배치하고 축을 맞춰 앞쪽에 사랑채를 두었다. 안마당과 사랑채는 담장없이 그대로 이어 중문칸을 사랑채 왼쪽에 작게 만들었다. 중문 왼쪽 곁에는 세로로 헛간채를 두어 안마당의 남쪽을 막았다. 그 앞은 중문밖으로 샘이 있고 담장을 따로 돌렸다. 그 앞에 단칸의 대문을 만들었는데 사랑마당에 직각축으로 놓여졌다. 사랑마당 북동쪽 모퉁이에는 뒷간과 돼지우리가 시설되었다. 또 사랑채 북쪽에는 안마당에서 계속된 광채를 두었다. 이것은 남도 양반주택의 인위적인 형태로서 안채는 약 18세기, 사랑채는 19세기 말경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큰방과 대청이 나란히 있는 남방식이지만 대청공간이 매우 크며 세 공간으로 구분되는 점이 특이하다. 뼈대는 기본적으로 양쪽 날개를 3칸으로 처리하고 몸채는 후퇴로 구했으며 왼쪽날개는 3칸, 오른쪽은 4칸, 몸채는 5칸이다.
부엌은 동쪽에 두어 앞 3칸은 부엌이며 뒷칸은 부엌방이다. 다음은 복판에 좌우 2칸인 큰방, 2칸대청, 몸채끝이 가운데 대청인 차례로 놓여졌다. 왼쪽 날개에는 앞칸에 갓방, 다음은 2칸의 갓대청이다. 큰방과 큰 대청 앞에는 쪽마루를 시설하고 뒷퇴에는 각각의 골방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운데 대청과 큰대청 웃칸의 뒷퇴는 나중에 다시 빈칸을 뒤로 더 빼내서 각각 고방을 크게 만들어 두었다. 골방이나 고방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중부지방과 다른 특이함을 나타내고 있다. 부엌도 앞쪽으로 1칸은 별도로 후에 보수한 것이며 오른쪽 측벽은 처마밑을 이용하여 헛기둥을 세우고 증축한 것이다. 그러나 이 헛벽의 구조는 특이해서 도리가 서까래 밑까지 가지않고 울담처럼 허공에 떠있는 헛도리이다.
벽체도 두꺼운 빈지널을 세로로 끼워 넣은 점이 고전적 느낌을 준다. 구조는 3평주 3량으로서 내진주도 평주로 처리하고 종도리는 양기둥 중앙에 두었다. 납도리이고 장혀를 받쳤으며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웠다. 대들보의 단면은 양면치기한 둥근네모꼴이고 전면 기둥에만 단이를 받쳤다. 내진주 머리에는 대들보와 갓보와 같은 위치에서 맞춰지며 대들보 아래에만 보아지를 끼워 보강했다. 도리간으로는 헛장혀가 맞춰진다. 이 집은 특히 양쪽 날개의 기둥을 몸체기둥과 구분함으로써 구조체를 완전히 따로하였다. 지붕의 몸체는 합각이고 날개는 박공인데 오른쪽 전면만 증축하면서 눈썹지붕을 덧붙여 마치 합각지붕으로 보인다. 사랑채의 평면구성은 역시 남방식으로서 5칸 -자형 전후퇴집이다. 간살이는 맨 북쪽으로부터 아랫방, 웃방, 부엌, 사랑방, 사랑대청으로 구성했다. 1989년 안채와 사랑채를 보수하였다.
* 규모 - 가옥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18세기
2026-10-01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영원산성은 원주 치악산에 자리한 돌로 쌓은 산성이다. 2003년 6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문무왕 때 이 산성이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 충렬왕 17년(1291) 원나라의 합단군이 침입했을 때, 원충갑이 지역의 백성들과 함께 산성으로 들어가 지키다가 침략군을 통쾌히 무찌른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목사 김제갑의 지휘 아래 원주 일대의 주민들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함락되어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으로 당시 치열한 격전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산성의 성벽은 동쪽과 서북쪽 일부 구간에 잘 남아 있으나 대체로 붕괴된 상태이며, 전체 둘레는 약 2.4㎞ 정도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성안에는 우물 한 군데와 샘 다섯 군데가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샘터가 남아 있다. 샘터 외에도 성안에는 건물 터, 성문 터 등이 남아 있다. 영원산성은 산성 축조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산성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학술적으로는 중세 산성의 특징을 잘 나타냄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고려·조선시대를 걸쳐 전란 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교육 현장의 귀중한 유적이다.
2026-08-10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일로 85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원일로에 위치한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목·군·현을 담당하던 강원도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1395년(태조 4)에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됨에 따라 기능을 상실하였다.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1895년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지고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 내아 등 몇 동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 1896년 이후 강원감영 건물은 원주 진위대 본부로 사용하였고,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된 후에는 원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2000년부터 강원특별자치도와 원주시에서 복원작업을 추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일부를 복원하고 이후, 2011년 10월 선화당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원주 우체국 청사를 철거하고 후원 권역 복원에 착수하여 2018년에 복원 완료하였다. 복원이 완료된 선화당 후원은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봉래각, 채약오, 조오정, 관풍각 등의 정자, 건물들과 600년 수령의 보호수인 느티나무, 원주 출신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인 〔김금원의 여행일기〕 조형물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원주 강원감영은 전국의 감영 중에서 형태가 가장 잘 복원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복원 이후에는 매년 9월경 밤 10시까지 시민에게 개방되는 ‘달빛여행’이라는 지역 축제를 개최하여 아름다운 야경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2025-07-18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고문골길 270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였으며,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보문암창기(普門庵創記)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중창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普門蓮社)라고 불렀으며,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1930년에 강상준이 중건하고, 1971년 주지인 이백련화(李白蓮華)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산신각·용왕각·요사채 등이 있다.
2026-03-1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충효사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위치한 사당으로, 부사과 충효공 황무진(1568~1652)을 봉안한 곳이다. 원래는 원주시 명륜동 향교 자리에 있었으나 건물의 노후로 인해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황무진의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자룡, 호는 벽룡담이다. 그는 회산부원군 황석기의 9세손으로 원주시 봉산1동 무진고개 인근에서 태어났으며, 가세가 어려워 문막읍 반계리 골무내기 마을로 이주해 평생을 살았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모셔 '하늘이 낸 효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사한 김창일, 관설 허후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여 절충장군 용양위 부사과에 봉해졌다. 1634년(인조 12) 그의 효행을 기려 나라에서 명하여 집 앞에 정문을 세웠다. 사당은 황무진 사후 69년이 지난 1721년(경종 1)에 건립되었다. 충효사 내부에는 황무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3월 23일 생일에 헌다례가 열린다. 충효사는 원주굽이길 6코스 12.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당 구간은 황무진의 이름을 따 ‘황효자길’이라 불린다.
2025-10-28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행구동
운곡 원천석(1330~) 선생의 묘이다.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조선 태종의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를 개탄하면서 치악산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조선왕조가 들어서 선생에게 벼슬이 주어지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지 않았다.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묘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10-28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문익공 조엄(1719~1777)의 묘역이다. 조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능하고 민생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지평, 수찬 등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조창을 설치하고 조세부담을 줄이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영조 39년(1763)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봉분 앞에는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 망주석 2기가 있고 상석에서 조금 왼쪽으로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서 100m 떨어진 묘소 진입로 쪽에 신도비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신도비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6-03-1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황골로 707
입석사는 원주 치악산에 있는 전통사찰로 상원사와 비로봉에 오르는 중간 지점인 치악산 입석대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이 토굴을 짓고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경내의 연화대좌와 광배와절 앞에 있는 석탑의 연꽃받침 탑신은 고려 전기의 조각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절의 서북 방향인 입석대 옆에는 마애불좌상이 있는데 원우오년경오삼월일[元祐五年庚午三月日]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90년(선종 7) 무렵에 불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1957년 요사가 건립되었고 1992년에는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2025-12-16
부산광역시 영도구 해안산책길 52
절영해안산책로는 영도 서쪽 편 봉래산 아래 해안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산책로이다. 원래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하여 접근이 어려웠으나, 시민들의 관광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2001년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를 개설하였다. 경치 좋은 절영해안 산책로에는 곳곳에 있는 장승과 돌탑, 뱃놀이 터, 산책로 우측의 넓은 바다, 담벼락의 다양한 모자이크 타일 문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2014년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5대 해안 누리길로 선정되었고 2021년 부산 안심 관광지에도 선정되었다.
2025-09-15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제3땅굴로 310
도라산전망대는 송악산 OP 폐쇄에 따라 대체 신설되었으며, 북한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이다. 수십대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개성의 송악산, 김일성 동상, 기정동, 개성시 변두리, 금암골(협동농장)등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으며, 날씨가 맑은 날에는 개성공단까지 볼 수 있다. 도라산전망대는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승용차의 출입이 제한된다. DMZ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비무장지대 연계관광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2018년 10월 신축이전된 도라산전망대는 실향민과 남북분단 현장을 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 등 연간 80여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명소이다. 또한 민간인 통제구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필참 해야 하므로 잊지 말고 준비해야 한다. (출처 : 파주 DMZ 평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