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3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60-29
영천시 신흥사에 있는 신월리 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가 4.75m이다. 신라 진평왕 때 신흥사가 위치했던 곳이라는 전설에 따라 근년에 신흥사라는 절이 새로 건립되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쌓아 올린 것으로,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윗 기단부의 면석에는 팔부중상이 돋을새김이 되어 있고,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돌로 조성되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은 4단이고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또한 보통 석탑의 몸돌인 경우 문짝모양과 자물쇠를 조각하는 경우는 볼 수 있지만 이 탑처럼 면마다 무늬를 새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비록 기단과 탑신부의 여러 곳에 손상을 입었으나, 신라 석탑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6-03-04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대호만로 2424
에너지 캠퍼스는 신재생 에너지전환의 비전을 가상현실(VR)과 4D영상 등 최신 미디어 기술로 담아낸 멀티미디어 체험학습장이다. 2007년 한국동서발전(주)당진발전본부의 전력문화홍보관으로 최초 개관하였으며 2022년 11월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에너지캠퍼스로 전면 탈바꿈하였다. 에너지 캠퍼스에서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전 연령층이 전기생산과정과 신재생 발전원리를 직접 체험하며 전력산업 트렌드를 익힐 수 있다. 전시관은 총 9개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입구인 발전소 게이트를 통과하면 발전소의 보일러 안으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에너지전환 여행을 시작한다. 에너지원 변천사를 그린 파노라마 실감영상 감상 후 가상의 드론택시를 타고 발전기 내부를 누비며 발전원리를 VR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4D영상관에서는 미래 생태도시를 여행하며 무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놀이공원 못지않은 박진감과 역동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친환경 발전설비 기술, 신재생에너지 원리 등을 퀴즈 형식으로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 또한 에너지캠퍼스의 자랑이다. 우리가 간과해 왔던 신재생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등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약 45분에 이르는 에너지전환 여행은 우리가 지켜낸 깨끗한 지구와 형형색색 빛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된다.
2026-09-2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276-1
구한말 둔헌 임병찬(1851~1916) 선생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들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이다. 임병찬 선생은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과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순창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최익현과 함께 붙잡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1914년 독립의군부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여 대한독립의군부로 만들었으며,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거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지역은 해발 400m 이상인 산간오지로서 임병찬 선생이 경술국치를 대비,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공자를 모시는 영소전 학당을 지어 제자를 가르쳤다. 또한 병기참 및 탄약제작소, 숙소를 설치하고 활쏘기, 말타기 들를 익히게 하였다. 현재는 당시 건물들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며, 최근에 후손들이 기념비를 세웠고, 정읍시에서 안내판과 표석을 설치하였다.
2026-03-12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
벽련암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원래 이름이 백련사로 기록되어 있다. 사찰은 백제 의자왕 20년인 서기 660년에 유해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부터 백련사로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추사 김정희가 사찰 이름을 벽련사로 고쳐 부르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25년 학명선사가 극락보전을 중창하고 요사와 선원도 함께 지었다. 이 건물들 역시 1951년 음력 12월 10일 한국전쟁 중 모두 소실되었다. 사찰 서쪽에는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는 탑 형식의 부도가 남아 있다. 암자 뒤편 암벽에는 태인 출신 여성 시인 몽련당 김진민이 쓴 '석란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현재 벽련암은 그 역사성과 유물로 인해 문화적 가치가 크다.
2025-03-16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 372 영동향교
조선 선조(1567∼1608) 때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며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영동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현종 1년(1660)에 옛 읍성 안에 이건, 복원하였다. 숙종 2년(1676)에 구교동으로 옮겼다가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로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인 6칸의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중간에는 내삼문을 두었고, 그 뒤 편에 문묘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제향을 받들고 있다. 소장전적은 판본이 몇 권 있을 뿐이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영동향교는 1980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25-03-17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임산3길 28-13
조선시대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남지언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그의 호를 따서 삼괴당이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남인과 아들인 남경도 역시 효자로 이들을 칭찬하기 위해 나라에서 삼효각을 세워 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삼괴당 건물은 순조 25년(1802)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2025-03-16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민주지산로 3759-13
영동 사로당은 현감 박수근(朴守謹)이 그의 아우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사로당이라 하였다. 박수근의 아우들은 수인(守認), 수해(守諧), 수원(守源)이다. 이곳은 조선 숙종 36년(1710)에 세워졌고, 영조 43년(1767)에 중수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면에서 땅에서 1.2m 높이 위에 마루가 설치된 전형적인 별당 건축이다. 보기 드문 높은 마루를 하고 사면에는 간결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다. 앞면 3칸 중 왼쪽 끝 1칸과 오른쪽 모퉁이를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를 대청마루로 하였다. 2단의 받침대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웠다. 사방에 간결한 난간이 둘러져 있고 온돌방의 창호가 알맞게 짜여 있다.
2025-03-16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관기길 16-3
영동 영모재는 고성 남 씨의 재실 건물이다. 재실이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순조 28년(1828)에 남주한이 선대의 묘소 아래 처음 지은 후 1885년에 고쳐지었으며, 1929년에 중수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중앙의 2칸은 넓은 대청으로 하고, 양끝에 온돌방을 만들었으며, 돌담과 높이 솟은 대문, 현판, 중수기, 상량문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온돌방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내부로 빨려 들어가게 하여 열효율을 극대화하도록 굴뚝을 설치하지 않은 특이한 건물이다. 영모재는 전통온돌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2026-10-01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
임진왜란(1592) 때 의병장이었던 삼괴 장지현(1536∼1593)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순절비 및 전적지이다. 장지현은 선조 23년(1590) 신립 장군의 부장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 감찰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2,000명을 모아 관군과 합세하여 추풍령에서 1만여 명의 왜적과 싸워 김천 방면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곧 금산 방면에서 공격해 온 왜군의 협공을 받아 사촌동생 호현과 함께 전사하였다. 장군의 높은 뜻과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1978년 사당을 건립했다.
2026-10-01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구교리길 88
황간향교는 태조 3년(1394)에 마을 뒷산에 세웠으나 현종 7년(1666)에 흙으로 쌓은 성안으로 옮겼으며, 영조 28년(1752)과 고종 9년(1872)에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과 고직사 등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앞쪽은 배움의 공간, 뒤쪽은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들을 모시는 제사공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집이다. 또한 주춧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사원건축양식과 정자, 주택양식이 절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책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