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3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조양동 52
춘천 중심가인 명동에 닭갈비 전문점이 모여 있는 골목. 춘천 닭갈비는 1960년대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양념에 재운 후 갈비처럼 숯불에 구워 먹으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닭고기에 양배추, 양파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철판에 볶아 먹는 형태로 변화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대학생이나 군인들이 즐겨 찾았고 이때 닭갈비는 ‘서민 갈비’, ‘대학생 갈비’라는 애칭을 얻었다. 1970~80년대 춘천 명동 뒷골목에 닭갈비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면서 닭갈비 골목이 형성됐다. 골목 양쪽으로 닭갈비 가게가 늘어서 있다. 이 골목에서 숯불 닭갈비와 철판 닭갈비는 물론 또 다른 춘천 향토 음식인 춘천막국수도 맛볼 수 있다. 골목에는 춘천 닭갈비의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무한도전> 등 매스컴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2025-07-24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남창동)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융릉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위층은 1칸으로 위로 가면서 좁아진 형태다.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 훈련인 성조[城操]를 거행했는데 1795년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1795년 성조식이 끝난 뒤 정조는 화성장대 현판의 글씨를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짓고 글씨를 쓴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효원의 종은 1991년 11월 수원시가 조성한 높이 3.54m, 지름 2.15m, 무게 12.5톤의 종이다. 팔달산 정상에 종각이 세워져 있으며, 19평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한식 기와집으로 건설되었다. 종의 전면에는 시의 상징물인, 은행나무, 철쭉, 비둘기 등과, 화홍문을 위시한 수원화성의 주요 문화재 등이 새겨져 있다. 효원의 종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효원의 종은 유료로 3번 타종할 수 있으며 제각각 다른 의미의 소원을 빈다. 첫 번째 타종하면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두 번째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빌며, 세 번째는 자신의 발전과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이 종각은 효의 도시 수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2025-06-25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103번길 8 (매향동)
화성어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주요 관광 포인트를 순환하며 운행되는 관광열차로, 관람객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수원화성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열차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실제로 탔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되었으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화성어차는 연무대에서 출발해 수원화성의 주요 군사시설과 유적을 지나 다시 연무대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로 운영된다. 총 4량(동력차 1량, 객차 3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번에 약 36명 정도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주행 속도는 시속 20km 내외로 느긋하게 운행되어, 창밖으로 펼쳐지는 성곽과 문화유산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가족 단위나 어르신, 어린이 등 걷는 데 부담이 있는 관람객에게도 매우 유용한 이동 수단이며, 탑승 중에는 주요 지점에 대한 안내 방송과 함께 역사 해설도 제공되어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수려한 성곽을 따라 느긋하게 이동하는 화성어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수원화성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특별한 체험 콘텐츠로 손꼽힌다.
2025-11-26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07-9 (교동)
수원향교는 원래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에 있었으나, 1789년에 수원의 중심이 팔달산 아래로 옮겨지면서 1789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수원향교 앞에는 하마비(타고 온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비석)가 있고, 붉은색 나무로 세워진 홍살문이 있으며, 외삼문, 동재·서재, 명륜당, 내삼문, 동무·서무, 대성전 등의 건물이 있다. 1795년 윤2월 11일 정조대왕은 을묘년 행차 시 수원향교 대성전에서 참배를 행한 후, 대성전, 동무·서무의 건물을 새로 중건하게 명하였고, 그 해 8월에 공사를 마쳤다. 1892년 중수 이래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수원향교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며 봄과 가을에는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2026-02-25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로 166
반딧불이 화장실은 1 급수에 사는 다슬기만 먹는 반딧불이처럼 깨끗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수원의 문화 상징을 담고 있는 으뜸 화장실이다. 2016년 리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동안 수원시는 공중화장실에 ‘문화가 있는 화장실’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수원의 문화적 전통을 담아낼 수 있는 건축양식에다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화장실 16개소를 건축하였다. 여기에 이제껏 도외시되었던 장애인, 여성, 노약자를 위한 공간과 첨단의 위생 설비 시설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화장실에 향기, 그림, 꽃, 책꽂이와 음향시설을 하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용자의 감탄을 자아내는 문화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반딧불이 화장실은 클래식 음악,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등을 방송해 주며 밖이 보이는 유리창을 통해 아름다운 광교 저수지를 감상하며 용무가 가능하다는 차별화를 구현하였다. 물론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2026-04-01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77
화성에는 수원천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데 성의 연결 부분에는 수문을 설치하여 북쪽에는 북수문, 남쪽에는 남수문을 두었다. 화홍문은 화성의 북수문으로 7개의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특징이라면 7개의 수문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운데 수문이 좌우의 수문보다 넓고 크게 설치되어 우량[雨量]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화홍문 동쪽 언덕에는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이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화홍문은 수문을 밝히는 조명과 산책길 덕분에 야경 명소로 유명하다. 솔이에게 선재가 마음을 고백했던 화홍문 앞 다리는 지금도 팬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을 만큼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2025-06-11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문이다. 창[蒼]은 푸른색을 가리키므로 ‘동쪽 방향을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한다.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럽게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 역할을 한다. 문 안쪽의 넓은 공터는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조선 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이 2층 문루에 우진각 지붕인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1층 문루에 팔작지붕이다. 옹성은 서울의 흥인지문처럼 한쪽 모서리를 열어둔 형태다. 창룡문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석공 우두머리 이름을 새긴 실명판이 잘 남아 있다. 한국 전쟁 때 문루가 파괴되어 1976년에 복원했다.
2026-04-01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910 (장안동)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사대문 중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라는 뜻으로 또 다른 서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안문이 정문이라는 것은 왕이 수도인 한양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는 문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94년 공사를 시작하여 약 6개월에 걸쳐 완성했으나 현재 있는 누각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1978년 복원한 것으로 지금도 성벽 곳곳에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축성 기술의 결정체인 화성 장안문은 조선시대의 성문이자. 성의 정문이라는 점에서 조선 초기에 세워진 한양 도성의 정문 숭례문과 비교 할 수 있는데 서울의 숭례문과 외관은 매우 유사하나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며 숭례문에 비해 좀 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군사시설인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2026-02-06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4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의 서쪽’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문을 두었다.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조선 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석축의 규모도 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과 개성, 강화도에서 온 석공이 참여했는데 박상길은 축성이 끝난 후 석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의 상을 받았다. 현판은 화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채제공이 썼으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
2025-07-0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八達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1794년 2월 28일 장안문과 같은 날에 터 닦는 일을 시작했지만 대체로 장안문보다 공정별로 약 1주일 늦게 완성하였다. 강원도 출신 목수 윤사범이 다포를 짜 맞추는 일을 담당했는데, 이 목수는 훗날 창덕궁 인정전을 짓는 공사를 담당해 근 100년 만에 화성에서 재현했던 다포 건축 기술을 이어 나갔다. 팔달문은 축성 당시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사 감독과 석공의 이름을 새긴 실명판, 현판까지 원형이 잘 남아 있다. 2013년 처음으로 문루 전체를 수리했는데 훼손된 목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였다. 부재에 남겨져 있는 전통 기술의 흔적까지 보존한 사례로 손꼽힌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