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구절암(홍성)

구절암(홍성)

2025-04-30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거북로218번길 163

굽이굽이 산 길 따라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대숲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사찰, 구절암을 찾는 길은 산이 높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구불구불 꺾이는 산길을 지나 산사를 찾는 마음이 바쁘지만, 이정표도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다.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산사를 이렇게 찾기 힘든 것처럼 구도의 길 또한 그만큼 멀고 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구절암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인적 드문 시골길. 봄바람이 살랑살랑 귓불을 간질이고 작은 바람에도 대밭의 댓잎들이 서로 비비면서 내는 소리가 싱그럽다. 봄을 준비하고자 두엄용으로 뿌려놓은 쇠똥 냄새가 시골 내음으로 다가오고, 멀리서 밭을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절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험난한데, 어느 정도 가면 이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지만 절은 아직도 멀었다. 낮은 하늘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아득하고 멀기만 한다. 이렇게 찻길이 꼬불거리고 가팔라 힘이 들고 절을 찾아가야 하는 마음은 바쁘며, 또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산사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구절암이 멀리서 보이게 되면 좌우에는 크고 작은 돌을 손 닿은 대로 올려 마치 탑처럼 쌓아놓은 것과 만나게 된다. 이제 굽이굽이 복잡하고 험난한 길을 지나 드디어 구도의 길을 찾아가듯 힘들었던 구절암에 도착하게 된다.

구절사

구절사

2025-04-17

충청북도 옥천군 상중길 226 문화재(전통사찰-구절사)

구절사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절사는 옥천의 상동 부락 서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식장산 영축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사명은 영구암이었는데 이는 영축봉의 동쪽과 서쪽의 두 정상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탑 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나무들은 5월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향기가 온 천지를 감싸는 아카시아 꽃길을 이룬다고 한다. 이 사찰은 어느 순간 폐사되었으나, 1933년에 절 아랫마을의 한병석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중건했다. 이후 사찰의 명칭이 구절사로 바뀌게 되었는데, 절 뒤에 있는 영축봉을 구절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구암사(순창)

구암사(순창)

2026-06-25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구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 숭제법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태조 원년(1392) 각운선사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석전 박한영을 비롯한 불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다. 구암사에는 전북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원년(1392) 무학대사 자초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월인석보 권15도 발견되었는데, 완전한 상태로 전존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1998년에 소개된 바 있는 성암본이 모두 30장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구암사본은 비록 앞뒤의 표지가 결락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낙장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이다. 월인석보 권15는 완전한 초간초쇄본이라는 점에서 그 진가가 높다.

증평 광덕사

증평 광덕사

2025-03-17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상그린로 239

광덕사는 1949년 이묘연 보살이 석불의 몽조(夢兆)를 얻어 석불 옆에 3칸의 암자를 짓고 마을 이름을 따서 광덕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사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석불입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곳에 계속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자리에서 천여 년을 비바람과 더불어 지키고 있다. 이 불상은 광덕사 석조여래입상으로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 높이 4.8m, 불상 높이 4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긴 얼굴에 눈은 반쯤 뜨고 정면을 바라보며, 목에는 3개의 줄 삼도(三道)가 있고, 귀는 긴 편이다. 위엄이 있으면서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는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관음사(대구)

관음사(대구)

2025-07-21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 535

대한 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관음사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절벽 아래 난간과 계단을 세우고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도동낙가산관음사사적비명’에 의하면, 관음사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0년(67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9세기 초에 심지왕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관음사는 1933년에 해인대사가 중수하였고 교남지에 '해안면 도동에 관음암이 있다.'라고 함을 보아, 해인대사가 퇴락한 관음암을 중수하였다는 것은 사실로 추정된다. 1970년에 관음전을 신축하였고 1999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탈문을 지나면 1층은 정면 7칸, 측면 5칸, 2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구조의 무설전이 있다. 무설전 맞은편 2개의 석등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아주 작은 2층의 누각이 있어 1층에는 낙가산관음암이, 2층에는 관향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관음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오른쪽 미륵보살 왼쪽에 지장보살을 모셨다. 특히 주불인 석조관음보살은 외형이 매우 투박하여 옷의 주름 표현이 세련되거나 화려한 관을 쓰고 있지도 않다. 미륵전은 관향루 왼쪽 계단을 올라가면 자연석 바위를 머리에 인 상태로 조그마한 전각에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다. 누각 아래 길을 오르면 향산이라는 편액이 있는 요사가 있고 관향루와 요사 뒤쪽 산 중턱에 오층석탑이 있다. 관음사는 사찰의 규모가 크지 않고 모셔진 불상이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사찰이다. 또한 오랜 세월 관음사와 함께 한수백 년 된 대구 도동 측백수림은 대구 10경 중의 하나로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관음사(고령)

관음사(고령)

2026-03-18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순환길 147

관음사는 일제강점기인 1911년 5월 6일 경북 고령 대가야읍 봉두동에 법찰대본산해인사본말사고령포교당이라는 이름으로 주지 박보담 등에 의해 창건되었다. 1956년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등록했다. 1981년에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고 1990년대 초에 승려 종운이 천불전을 건립했으며 현재 경내에는 관음전을 중심으로 칠성각과 산신각, 천불전 겸 유치원, 종각, 요사동이 배치돼 있다. 관음사내에는 화승들이 북극성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와 일월을 비롯한 성신들을 그린 칠성도와 아미타여래도와 신중도가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관암사(대구)

관암사(대구)

2025-12-19

대구광역시 동구 갓바위로 350 (능성동)

관암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팔공산에 위치한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사찰 명칭은 팔공산 관봉(冠峰)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갓바위 아래에 자리하여 관암(冠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시대 창건한 고찰이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폐사가 되어 누가 언제 창건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관암사는 태고종 총무원장을 지낸 백암승려가 기도 중 불상을 발견하고 터만 남은 곳에 중생들의 안식처가 되도록 서원(誓願)을 세우고 1962년 3월에 재창건하였다. 그 후 건물이 노후화되어 2대 주지인 혜공화상이 200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2006년 대웅전, 2008년 관음전, 칠성각을 완공하였다. 이어 2009년에 모든 전각의 단청불사를 완공하고, 2010년에 지장보살, 관음보살, 후불탱화 등 부처님을 조성함으로써 가람의 형태를 일신하여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고성사(강진)

고성사(강진)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260

고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천불산화엄사사적비>에 1211년(고려 희종 7)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를 중창할 때 함께 지은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고성암(高聲庵)이라 되어 있다. 특히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선사와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다산정약용은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高聲寺)로 옮겼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 감로탱화, 신중탱화가 있다.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 제작된 것이다. 칠성각에는 4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고성사 목조삼존불상중에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국녕사(고양)

2026-02-27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268 (북한동)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는 1713년 승병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로 1711년에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13개 사찰들 중 하나이며 86칸 규모로 승려 청휘와 철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보경 스님에 의해 법등을 다시 밝히게 된 국녕사는 1991년 화재로 소실이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의 국녕사는 1998년 폐허를 딛고 가람을 중창한 것이어서 예전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광덕사(상주)

2025-09-04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구서2길 138

상주 광덕사는 1925년 동학 상주지구 접주였던 해운당 배순광이 불교에 귀의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1974년 대한불교법화종 말사로 등록하였고, 1988년 7월 전통사찰로 선정되었다. 1954년 배순광스님이 입적한 후부터 경수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1990년 대웅전·삼성각을 중수하고, 1992년 오층석탑, 1993년 종각을 지어 오늘의 모습에 이른다. 경내에는 1952년 동학의 거장 수운 최제우의 도덕연원 영세불망비를 세워 매년 이날 천제를 올리고 있다. 상주 인근 지역에 동학교당이 있어 이와 연계하여 관람하며 그 의미를 짚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