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대성사(이원)

대성사(이원)

2025-03-16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청길 36-9

대성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옥천에는 전통사찰로 등록된 대성사가 2군데 있다. 이원면에 위치한 대성사와 옥천읍 교동리에 위치한 대성사인데 모두 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그러나 이 두 사찰은 그 사찰의 경영에 있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원면에 있는 대성사는 민가에 둘러싸여 있으나 한가하고 여유로우며,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조용한 도량이다. 불전이라고 해야 대웅전 한 채만이 전부이며 사찰의 영역도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곳이다. 대웅전 전면에 마당이 있고, 마당에 4기의 석등과 법당창건 시 역공노비가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2001년에 중창한 건물로, 일반적인 불전의 정면이 3칸 혹은 5칸의 홀수칸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많은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성사(옥천)

대성사(옥천)

2025-03-16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지용로 142

옥천군에는 대성사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이 두 곳이 있다. 이곳은 옥천읍에 위치한 대성사로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실천불교를 표방하는 사찰이다. 대성사에는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옥천 대성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대성사가 있는 청성면 도장리(道場里)는 ‘불당골(佛堂谷)’로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 관련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옥천 육씨 족보에도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대성사에 석불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입상은 높이가 360cm이며, 가운데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머리에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식으로 법의를 입고 있으며, 맨 아래에는 발의 모습도 확인된다. 왼손 가운데에 홈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지물(持物)을 받쳐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둥근 관모 형식을 쓴 형태는 서울 약사사 석불 입상(1490) 등과 유사하며, 예산 삽교 석조 보살 입상과 같이 두 개의 돌기둥을 조립하여 만든 형식은 고려 석불의 전통으로 볼 수 있다. 지역 공동체에 신앙의 대상이며, 조선 전기 석불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대성사(서울)

대성사(서울)

2025-09-18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28길 49 (서초동)

기록상 마라난타가 백제로 오는 동안 풍토병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우면산 물을 마시고 완쾌하였다고 한다. 이에 우면산에 대성초당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성사의 전신이라 전해진다. 또한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명 중 한분이신 백용성 스님께서 주석하시며 불교 대표로 참가하시어 대승적 독립운동을 전개하셨다. 현재 대성사에는 백용성 스님이 조성하신 목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이 모셔져 있다.

대성사(대구)

대성사(대구)

2026-03-05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19-1 (서야동)

1922년 임진왜란 때에 창건된 대성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였던 광문사 터에 있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사찰이다. 한국의 사찰들은 역사적으로 부침이 많은 국내외적 영향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역사와 가람이 없어지는 사례가 빈번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도 사찰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허무하게도 무너져버린 경우도 간혹 존재하고 있다. 몇 년 전 만 해도 소박하지만, 가람이 존재했던 대구 대성사가 바로 후자의 경우로 여겨진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대성사의 현재는 그 터에 4층 건물을 지어 올려 은해사의 대구포교당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성사’라는 예전의 사명은 그대로 물려받아 부처님의 법음을 대구 지역에 전파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대구 중구 지역에서 그 터가 가장 오래된 건물로 손꼽혔던 대성사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던 건물인지라 실은 왜색이 짙었던 것이 멸실의 이유로 추측된다.

대산사(청도)

대산사(청도)

2025-01-20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248-170

대산사는 청도군 월은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창건 당시에는 용봉사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후에 중건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도둑이 약탈하고 불질러 태운 것을 1876년에 의문이 중건한 뒤 대산사라고 절 이름을 바꾸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원통전을 중심으로 하여 선실, 산령각, 칠성각, 용왕단,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법당 앞에 있는 높이 2m의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의 지대석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멧돼지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월은산은 제비가 알을 품은 형상이고, 실제로 산에 새가 많은 편이라 뱀도 많다. 이 뱀을 물리치기 위해 탑 아랫부분에 멧돼지를 조각했다고 한다.

제천 옥순봉

제천 옥순봉

2026-03-05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제천 10경 중 8경에 속하는 옥순봉은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팔경에 속하기도 한다. 경관이 뛰어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옥순봉의 산세는 청풍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해발 283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함마저 느낀다. 확 트인 정상부는 너른 안부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다. 산행과 더불어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과 구담봉의 멋들어진 석벽을 조망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옥순봉은 높이가 낮은 데다 등산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으니 1시간 산행이면 충분하다.

대비사(청도)

대비사(청도)

2025-12-03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대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 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대비사는 566년(신라 진흥왕 27)에 신승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국사가 보수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비사 대웅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6세기 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의 구성도 꼼꼼하고 튼튼하며, 이를 이루는 세부 부재들의 형태를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다.

대복사(남원)

대복사(남원)

2025-09-2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복사길 61 (왕정동)

남원의 서쪽 교룡산 자락에 자리한 대복사는 신라시대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한다. 도선국사는 남원의 지세가 재물을 가득 실은 배(船)의 형국이고, 교룡산이 배를 덮치는 험한 파도로 보았다. 이에 주산인 백공산의 약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선원사(禪院寺)를 창건하고, 객산인 교룡산의 강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대복사의 전신인 대곡암(大谷庵)을 창건한 것이다. 따라서 풍수적으로 볼 때 대복사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조선 후기에는 절이 매우 퇴락하였던 것을, 뱀으로 화할 업보를 면하게 된 ‘대복(大福)’이라는 한 중생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사찰을 중수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따서 대복사로 사찰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매우 번창하여, 남원지역 불교학생회와 청년회가 이곳 대복사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까닭에 두고두고 사찰의 자랑으로 삼을 만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하면서 사찰도 퇴락하였다가,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예전 대복사의 불교활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생회를 다시 구성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다도강좌주말수련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실현되는 앞날에 대복사는 다시 한 번 남원 땅에 큰 법음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대법사(밀양)

대법사(밀양)

2026-03-11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경남 밀양시 일대는 사명대사의 전설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지역으로, 땀 흘리는 표충비, 사명대사 생가 유적지, 표충사 등이 있다.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 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마당에 서 있으며, 나무 밑동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큰 모과나무이다. 대법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사찰로 열반 후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대법사라 하였다고 한다. 초창기 학 세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하여 백하암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랫동안 국가의 관심 속에 중건을 거듭해 왔으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조실 지혜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대법사(여주)

대법사(여주)

2025-06-30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대법사는 대포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명성황후의 출생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와 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됐으며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해 미륵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 민치록의 인연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숙종 때 사찰 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묘를 쓰면서부터이다. 이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한 뒤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부인인 한산 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원당사로 개칭하고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원당사는 사라지고 거의 폐사되어 흔적만 있던 것을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스님 또한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웅전, 지장전, 범종각, 국사당, 삼성각 등이 있다. 1971년 건축해 1989년 중수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 좌상이 있으며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9m에 이르는 미륵석불과 7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 옆 작은 석실에 명성황후와 연이 있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지 닳고 닳은 외형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절 입구의 국사당에 2개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좌측에는 산신이 우측에는 보통 호랑이가 있지만 말을 탄 선비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민치록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