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문수사(익산)

문수사(익산)

2026-03-12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천호산길 140

문수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천호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신라 881년 혜감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천호산은 문수·보현·관음의 3대 보살이 나투신 성지로 여겨졌으며, 문수사는 문수보살의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해소하는 도량으로 손꼽힌다. 오랜 세월 흥폐를 거듭하며 중건비와 부도만이 옛 흔적을 전하였으나, 최근 비구니 원공 스님의 부임 이후 극락전, 명부전, 삼성각, 선원 등이 정비되었다. 1994년까지 대웅전으로 쓰였던 삼성각은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산신, 독성, 칠성을 봉안하고 있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신 새 대웅전에는 1932년 제작된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

문수사(김제)

문수사(김제)

2025-12-01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황산5길 158 (황산동)

문수사는 백제무왕 25년(서기 623년) 혜덕왕사가 문수보살의 현몽으로 문수골에 창건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암이라 칭하였다. 그 후 서기 950년에 화재로 건물 등은 소멸되고 문수암 현판만이 현재 사찰의 부지인 장소에 날아와 떨어졌다고 한다. 현 소재지에 건립하라는 지시 인가 하여 서기 957년 고려 광종 8년에 혜림왕사가 현 장소에 중창하였다. 전 문수골과 현재 장소의 거리는 350m이고, 날아온 현판은 현재 보존하고 있으며 필적은 신필이라고 한다. 문수사 도량 앞마당과 관음전옆에는 느티나무가 있으며, 이 고목은 명칭 귀목이라 하는 글자 그대로 귀한 나무이다. 이 나무는 705년(서기 1202년)에 수도승이던 무불스님이 이곳에 왔다 가는 표적으로 심었다고 한다.

문성암

문성암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암정로 325-37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과거 운흥사와 관련된 문수암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 1987년 다정스님이 문성암을 창건하였다. 2층 건물의 구조로 1층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2층은 참회전이라 하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 백호선원, 지장전, 문수선원 등의 건물이 있으며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고 다른 사찰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아 정갈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문성암이라는 이름대로 글을 매우 잘 하는 사람이 출현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문수는 문수대성(文殊大成)이며 여기에서 문성(文成)을 따서 암자의 이름을 지었고, 문수가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선원 터로 적합하다고 여겼다고 하며, 문수보살이 화현한 터라고도 한다. 문성암을 세운 다정스님은 죽림사와 운흥사를 오가며 수행할 때 문성암 앞의 커다란 소나무를 보고 사찰이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또 운흥사 초가에서 기거할 때 스님이 문성암 쪽에서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꿈을 꾸고 절을 짓고자 결심하였다. 처음 터를 닦을 때 같이 일을 하던 보살이 꿈을 꾸었는데 불이 나서 그 불길이 하늘을 태웠다고 하는 길몽을 꾸었다고도 한다.

무진암(부여)

무진암(부여)

2025-11-11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181-17

무진암의 소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리 만수리 125번지이다. 무진암은 비구니 스님의 정갈함이 묻어나는 작은 비구니 암자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무진암으로 오는 도중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소나무가 마치 산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인 무진암은 남쪽을 향해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있으며, 야트막한 만수산의 줄기를 따라 비교적 평평하고 너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깨끗한 만수산의 자연을 닮아 사역 전체가 맑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최근에 불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제법 규모가 큰 대웅전이나 삼성각과 함께 여러 채의 요사를 갖추고 있다. 무진암 인근의 사찰 무량사는 부여에서 가장 큰 절로 외산 만수산 기슭, 소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고려 때 크게 융성했고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인조(1636~1646) 때에 재건되었다.

무봉사

무봉사

2026-03-11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 (내일동)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773년 법조스님이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를 순례하다가 큰 봉황새가 현재의 무봉사 자리에 날아와 앉으므로, 상서로운 성지라 생각하고 무봉암을 창건하였다. 고려의 고승 범률국사가 이 절에서 하안거를 하면서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기 때문에 절 이름을 무봉사로 하였다고도 한다. 1359년 영남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무봉암이라 하였던 이 절을 무봉사로 승격시켰다. 무봉사는 밀양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밀양 최고의 명소 영남루와 인접한 탓에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밀양강 상류 쪽 절벽 위에 아랑의 전설이 깃든 아랑각이 있고, 계단을 올라서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인 영남루와 무봉사가 있다. 무봉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인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봉사 인근에는 영남루와 밀양 박물관, 아랑각, 박시춘 생가지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밀양강 아래로 펼쳐지는 대나무 숲과 강가 맞은편 공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묘적사

묘적사

2026-06-08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수레로661번길 174

묘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가사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이를 고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묘적사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세종시록』, 『연산국일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있으며, 이 문헌들에 묘적사는 조선 초기에는 그 사격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대웅전 앞의 팔각칠층석탑 또한 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묘적사는 창건 뒤 조선 초기까지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세종 때 학열스님이 180여 칸을 지으며 중창하였고, 남북 군영을 세워 무과 시험장으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절에서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묘적사는 본래 국왕 직속의 비밀 기구가 있던 곳으로, 이곳에 일종의 왕실 신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사찰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승려 교육과 아울러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두 차례는 잘 막았으나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완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는 이제면이라는 사람의 묘와 묘비가 있어 이를 통해 묘비가 세워졌던 1720년(숙종 46) 무렵에는 절이 거의 페허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묘적사가 다시 중건되는 시기는 19세기로 절에 남아 있는 기록 중 『묘적산산신각창건기』에 따르면 1895년(고종 32)에 규오 법사가 산신각을 중건했다고 한다. 그 뒤 1969년에 화재로 대웅전, 산신각 등이 소실되었다가 1971년 자신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가 중건되었다. 이후 1976년에 다시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과 마하선실을 중건하고, 1979년과 1984년에는 나한전과 산령각을 각각 건립했다.

묘심사(부산)

묘심사(부산)

2025-03-19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71

묘심사는 1888년 지금의 서구 토성동에서 대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임제종 포교당으로 기능했다. 일본인이 사찰을 운영하다가 해방 후에 기독교인에게 팔리기도 했는데, 당시 몇몇 신도가 성보들을 현재의 사찰 자리로 옮겼고 1960년대 무렵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범종과 종각 등을 가지고 와서 묘심사로 다시 창건했다. 묘심사는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변에 위치하는 도심 속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식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에는 금동 석가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좌우 협시하고 있다. 또 1946년 제작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대웅전 옆으로 유리 보호각을 둘러 씌운 지장보살 입상이 동자를 안고 서 있다. 그 뒤편 계단 위로 삼성각이 자리한다. 삼성각 내에 칠성도, 산신도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30㎝의 돌좌상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옆으로 ‘ㄱ자’의 현대식 요사채가 있다.

묘각사(영천)

묘각사(영천)

2025-10-23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길 499

묘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기록은 없다. 용왕과 관련한 사찰이라 이곳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교 신앙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기룡산 아래에는 용화·삼매·정각 등 불국 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들이 많다. 창건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자 용왕이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용왕이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려 주어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 이에 의상이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44년(인조 22) 설선당(說禪堂)을 지어 중창하였다. 1657년에 요사를 중창하였는데 지금은 설법전이다. 1760년(영조 36)에 삼성(三性)이 중창하였고, 1889년에 법당을 중수하였다. 1994년에 진광(眞光)이 산신각을 지었다. 1999년 아미타삼성전을 복원하였다.

모은암

모은암

2025-09-22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

모은암의 전설은 지리산 하동 화개의 칠불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다. 김해시 상동면과 생림면의 경계에 위치한 무척산은 수로왕과 가락국 불교 이야기, 기묘한 바위, 산정호수인 천지(天池)가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산이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동면의 기암절벽 아래에 백운암이 있으며 반대쪽인 서면에 모은암이 자리하고 있다. 무척산은 김해에서 밀량 삼량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생림면 생철리 산불감시초소 옆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석굴암을 거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오르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 바로 위 모은암이 나온다. 가야 불교를 일으킨 가야국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세운 고대국가이다.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옥과 결혼, 열 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왕자가 성불, 지리산의 칠불사를 창건하게 됐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을 상징하는 자연 남근석이 암자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 있다.

무량사(고양)

2026-03-12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84 (북한동)

경기도 고양시 무량사는 북한산성 입구인 대서문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고종의 후궁인 순빈 엄씨와의 인연으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순빈은 지금의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 아들이 바로 영친왕 이은(1897~1970)이다. 이런 이유로 이 절은 순빈의 원당이 되었으며, 일반인에게는 백일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로 알려졌다. 현재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는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하여 승병을 주둔시켰던 승영사찰은 아니지만, 1900년 전후에 제작된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어 경기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