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8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로 379-61
미타암은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천성산(千聖山)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646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원효대사가 창건한 89암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920년에 지공 대사가 중창하였다. 1376년에 중창했으며, 1888년에 다시 정진(正眞)이 중창하였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의 선사상을 부흥시킨 경허(鏡虛)의 제자 혜명(慧明)이 주석했으며, 현재 그의 비석이 남아 있다. 미타암은 천연 동굴에 인공을 가해 조성한 석굴 사원이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이 모셔져 있다.
2025-10-23
서울특별시 성동구 독서당로40길 21
옥수동에 자리한 미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의 직할 사찰로 달맞이봉공원 아래 위치해 있다. 또, 두뭇개에 있으므로 두뭇개승방이라고도 한다. 888년 신라 진성여왕 2년에 창건된 미타사는 금호동 부근에 대원 비구니 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되었으며 1115년 봉적 두 비구니 스님이 현재의 옥수동으로 옮겨 극락전을 건립하고 아미타불을 모신 후 국사로부터 미타사라는 사명을 받았다. 미타사의 극락전과 관음전은 불심 깊은 조대비의 보시로 건립되었으며 극락전의 삼존불과 6개의 탱화, 관음전의 천수 탱화, 7층 석탑 등은 불교예술의 전통미를 함축하고 있다. 미타사는 역사를 이어오며 많은 비구니 스님이 운집하여 미타사 내에 각기 암자를 건립하게 되는데 현재는 대승암, 칠성각, 금보암, 금수암, 정수암, 관음암, 용운암의 7개 암자가 있는 서울 도심 속의 특별한 전통 사찰이다. 1988년 천불전과 미타유치원을 건립하여 지역주민과 불자들의 친행처와 지역 어린이 보육전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6-03-11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로13길 56-33 (개화동)
미타사는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 서남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김포평야와 행주나루 끝자락에 걸쳐 있는 도심 속 사찰로, 한적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동산에는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나무들과 들꽃들이 어우러져 조용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은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김포공항을 사수하던 육군 1,000여 명이 전사하고 절의 모든 당우가 전소되는 비극을 겪었다. 사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법당 옆 바위 위에 세워진 미륵불입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이 불상은 땅에서 솟아났다고 전해진다.
2025-11-27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 6-16 (보문동3가)
보문사와 담장 하나 사이에 있으며, 탑골승방으로 잘 아려진 미타사는 여승들의 거처이다. 이 사찰은 950년에 혜거국사가 처음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1047년에는 석탑을 조성하여 탑골승방이라 하였다. 석탑은 대웅전 뒤 단하각 왼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131년에 혜감국사에 의해 중건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 또 이곳에는 6층으로 된 오래된 석탑이 있는데, 위 3층과 아래 3층이 그 시대를 달리하고 있다. 아래 3층의 조성 시기를 고려 때로 보고 있다.
2025-05-08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로65번길 94
부용산 자락에 위치한 미륵암은 미륵불과 농부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 제76호이다. 최초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세조 때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미륵불을 얻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국상 신숙주에게 절을 짓게 명하였고, 신숙주가 혜암대사를 후원하여 절을 짓고 미륵암이라 하였다. 이를 근거로 세조의 재위연간 중 1460년대를 이 절의 초창연대로 보고 있다. 이후 고종 28년 운송화상이 중수한 후 몇 번의 보수를 거쳐 지금의 주지스님이 법당을 중건하고 진입로를 말끔히 포장하였다. 사찰에 전해오는 중요 유물·유적은 없으나 농부가 발견했다는 미륵불은 현재까지 전해져 용화전에 협시보살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본래 석조불이었으나 최근 금동불사를 마쳤다. 경내에는 법당인 용화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의정부경전철 탑석역에서 자동차로 약 10 정도 소요되며, 400m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해 오르기 어렵지 않다. 절 뒤편으로는 부용한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이 절과 인연이 깊은 신숙주선생묘가 있다. 인근에 의정부 동부광장, 부대찌개 거리, 도봉산, 수락산, 장흥유원지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한다.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노송로 1188-5 (노암동)
미륵암은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암자로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당과 법당,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가 1992년 대웅전, 1994년 용화전과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내부에 절터에서 발견된 높이 192㎝의 고려시대 석불인 미륵암 석불이 모셔져 있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다. 원래 이 사찰이 자리 잡은 골짜기를 부처골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기도를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2025-11-20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미륵댕이1길 13-5
미륵사(彌勒寺)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혜능종 소속 사찰이다. 본 사찰은 수령이 30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 옆에 모셔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듯하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미륵사 보다 더 오래도록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며 대비보살로서 중생구제 원력을 펼치고 계신다. 관음보살의 영험이 알려진 것은 오래전 한마을 전체에 원인 모를 병이 돌아 매일 두세 명씩 죽어 나갈 때부터이다. 어느 날 한 노승이 나타나 마을 어귀 느티나무 옆에 있는 석조 관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 이내 효험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떠났다. 주민들은 처음 보는 노승의 말인지라 그냥 흘려들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질병이 심해져만 가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민들이 모여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노승의 말처럼 7일이 되자 백약이 무효였던 마을 사람들의 병은 씻은 듯 완치가 되었다. 그 후로 마을에서는 느티나무 옆 석조 관음보살님께 매년 한 번씩 모여 기도를 올리게 되었으며 현재는 윤달이 든 해 음력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재를 지내고 있다. 미륵사는 천년의 세월 가까이 수많은 영험을 낳으신 석조 관음보살 입상을 기도처로 삼아 1930년 대 작은 초막을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사찰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50년대 새로 전각을 지으면서부터이다. 미륵사라는 이름도 이때 가지게 되었고 현재의 ‘미륵댕이’라는 지명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수호불로 모시는 마을 사람들의 깊은 신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봉황면 세남로 408-64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백제 성왕 22년(544)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창룡사(蒼龍寺)라 칭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으며, 창건 이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한국전쟁 후 거의 폐사되어 인법당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 미륵당이라 불리면서 무속인이 거주하였다. 1990년대 후반 원일스님이 부임한 후 불사를 벌여 대웅전, 삼성각, 관음전, 설법전, 요사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웅전에는 내부 불단에 삼존불(아미타여래좌상,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있고, 불화로는 후불탱, 지장탱, 신중탱이 있다. 보물 제462호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과 보물 제461호 마애칠불상이 있다. 영산포 공용터미널에서 거리로 14㎞, 차량으로 18분 소요되는 거리에 있으며, 직선 길이 5㎞에 나주호가 있다.
2025-03-25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126
미륵사는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이곳에는 한가운데 위치한 염화 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가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선바위’라 불리고 있다. 이 바위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모자이크 한 듯이 어울려 있는데, 해가 지고 난 뒤 바위와 바위 사이의 금이 보이지 않게 될 때 전체로 보면 그 형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좌선바위 뒤편에는 미륵불과 닮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는 형상의 절묘한 터에 원효는 기도도량을 세운 것이 다. 미륵사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25-04-02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도장1길 33
문수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공주 동학사의 강주를 역임했던 경봉(1885∼1969) 스님이 1930년 무렵 옛 절터에 창건했다고 한다. 문수산은 지금의 옥천군 청성면 마장리와 대안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 산에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문수암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옛 문수사의 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도장리 마장동 뒷산에 불당골이라 부르는 곳에 절터가 하나 있는데 근래까지도 그곳에서 기와 편과 도자기 편 등의 유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문수사의 터일 가능성이 높다.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벽을 빙 둘러 팔상도(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묘사한 그림)를 벽화로 그렸고, 정면 포벽에는 여래상, 좌우와 뒷면 포벽에는 나한, 연꽃, 매화 등을 그려 놓았다. 대웅전 앞마당 왼편과 오른편에 요사가 1동씩 자리하며 왼쪽 요사 쪽으로 미륵불 입상과 4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 왼편의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삼성각은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모셨다. 삼성각 앞에 서면 멀리 속리산의 준령과 넓은 들판이 훤히 보이며 마음이 확 트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