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7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칠밭골길 446
부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부귀사의 자세한 연혁이 전하지 않지만, 591년에 혜림법사가 거조암과 동시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때 보조 국사가 주석으로 있었다고 전하며,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도중에 폐사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1873년에 담운이 중창한 바 있고, 1882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 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보화루에 있는 「종각중수기」, 「부귀사게판기」, 「부귀암중수기」 등의 기문을 살펴보면 당시의 사찰 규모의 단편을 알 수 있다. 2000년에 아미타 도량을 세우기 위하여 중창 불사 발원 기도를 올린 뒤 불사를 하였다. 부귀사 내 건물로는 극락전, 보화루, 신검당, 산신각과 요사채 등이 있다. 부귀사 극락전에 1754년에 조성된 부귀사 미타회탱이 있다.
2025-11-04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윗말1길 173
봉학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장미산 자락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입적하자 제천 백운사 주지인 윤인선이 이곳으로 와 상주하면서 가람을 정비하여 향화를 이어갔는데, 1955년에 불교 분쟁으로 봉학사를 비구승이 접수하면서 이후 비구승에 의해 관리되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절 운영이 어려워지자, 3년 후 다시 윤인선이 주석하며 사찰을 꾸려갔으며, 이후 충주 토박이 승려 배해월, 배용운, 배영환이 절을 운영하면서 사찰을 정비하였다. 1974년에는 명담 오길수가 인수하여 장연사(檣蓮寺)로 개칭하고 법당과 요사, 그리고 종각을 개축하여 현재의 사찰 모습을 갖추었다. 1986년에는 선혜 이도현이 절까지의 진입 도로를 마련하였으며, 전화도 가설하여 절로의 진입이 용이해졌다.
2025-05-09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길 113
이곳은 서천 건지산(127m) 자락에 있는 사찰로 공주 마곡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99년(정조 23)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이 시기에는 이미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후기 문신 석북 신광수(1712~1775),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1850~1927), 서천 출신의 시인 석초 신응식(1909~1975) 등이 머물며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사찰에는 극락전, 삼성각, 심검당, 종무소 등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1619년(광해군 11)에 제작되어 보물로 지정된 조선 중기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소조삼존불상도 있다. 봉서사가 있는 건지산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건지산성이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문헌서원, 한산모시관, 한산소곡주 양조장, 한산읍성, 한산 오일장, 신성리 갈대밭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하기 좋다.
2026-03-11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2로 84-77
봉영사는 남양주 진접읍 내각리 천점산(393m)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의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봉영사는 599년(진평왕 21)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봉이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1755년(영조 31)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묘가 순강원으로 승격되면서 이 절을 인빈 김씨의 원찰(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았으며, 이때 절 이름을 봉영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후 절 지위가 크게 높아졌는데, 1877년(고종 14) 고종 숙부인 이공이 대대적으로 중수공사를 했으며, 이후 계속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다. 봉영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진 무량수전과 지장전, 승방, 요사, 그리고 사적기와 혜경선사 공덕비 등이 있는데 모두 근래에 건립된 것이다. 봉영사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절 입구에는 쉼터인 찻집이 있으며, 이 찻집 안에 있는 봉영사 도서관은 휴식과 독서를 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종류의 불서와 양서를 접할 수 있다.
2024-11-05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북평로 1057-114
봉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로 경북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금계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봉서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태백(太白)의 줄기에서 뻗어 내려온 안동 금계산(金鷄山) 또는 금학산(金鶴山)이라 부르는 산정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안동의 명찰이다. 안동과 영주의 경계되는 자리에 고스란히 터를 잡았다. 대부분의 전각이 조선 후기에 중건한 사찰이지만 봉서사에 남아있는 터를 가늠해 본다면 꽤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 알 수 있다. 봉서사는 현재 비구니 도량으로 탈바꿈하여 특히 어린이포교에 관심을 가지고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역 불자들의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봉서사에는 현재 보광전, 응향각(凝香閣), 포란루, 산령각(山靈閣), 요사채가 남아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문루인 포란루와 마주 보고 있다. 포란루는 봉서사의 문루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현재는 1층이 폐쇄되어 출입할 수 없다. 포란루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난간은 우주와 평주를 연결하여 기둥에 난간대를 붙였다. 산령각은 1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산신상이 모셔져 있다.
2025-10-29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1742년(영조 18)에 징월이 창건하였으며 인근 보현산에 있던 법화사를 학서산으로 옮겨왔으며, 법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을 옮겨온 설화가 전해지는데 법화사의 한 사미승이 탁발을 나갔다가 병이 들어 절에 돌아오지 못하고 민가에서 요양하였다. 사람들은 사미승을 극진히 보살폈는데, 여름이 되자 개고기가 몸을 회복하는 데 좋다며 먹으라고 권하였다. 사미승은 고민 끝에 개고기를 먹고 병이 나아 칠월 칠석이 되어 절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번개와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밤새 내리더니 다음 날에 승려 1명이 사라졌다. 그 후 매년 칠월 칠석이면 어김없이 밤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다음 날에 승려 1명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급기야 주지가 회의를 열고 칠석날 모든 승려의 몸에 실을 연결하여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아보자고 하였다. 다음 날 역시 한 승려가 사라졌고 실을 따라가 보니 산 중턱 바위 굴속에 큰 지네가 잠을 자고 있었고, 이 화를 피하고자 절을 옮겼다고 한다. 경내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불상과 후불탱화신 , 중탱화, 지장탱화, 칠성탱화 등의 탱화가 남아 있다.
2025-09-23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 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극락전 내에는 보물 제980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발견된 복장 내에 조성개금기에 의하면 조성시기는 1312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장에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의 각종 전적 8종이 발견되어 보물 제1095호 지정되었다. 현재 본사인 용주사 박물관에 이전 보관하고 있는데, 이중에 담뱃갑보다 작은 크기의 금강경(가로 7.3㎝, 세로 4.5㎝) 1339년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섬세한 필치의 변상도까지 갖춘 호신용 경전이다. 사리, 사리병, 각종섬유, 곡물, 구슬 등이 복장에서 함께 발견되었고, 그중 사리는 1979년 3층 사리탑을 조성하여 봉인하였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봉래면 우주로 3159-32
봉래사는 외나로도의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덕암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그만 암자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절이다. 송광사 판암 스님께서 1935년 덕암산 아래에 초가 3칸을 건립, 명이 송수인 스님을 청하여 거주하다 1938년 여름에 법당 4칸을 창건하여 신흥암이라 하였고 1949년 명송 스님께서 송광사로 가시고 남원 실상사의 벽운성범 스님께서 안거하면서 암자명을 봉래사라고 개칭하였다. 그 후 1962년 백은종택 스님께서 법당을 헐어버리고 법당 4칸을 재건하여 1987년 봉래사 연혁을 필사본으로 정리하였다. 대웅전에는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중탱화라는 불화가 보관되어 있다. 경내에서는 신금리 나로도항이 한눈에 보이고 나로도항 수협 위판장에서는 계절별로 맛있는 해산물을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
2026-06-10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6-54
봉녕사는 수원시 장안구 우만동 광교산 기슭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광교산 기슭에 자리한 봉녕사는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고려 시대의 불상인 석조 삼존불과 대웅전 앞뜰에 수령 800여 년의 향나무는 봉녕사의 창건과 더불어 역사를 함께한 산 증거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하였고, 1400년 경에는 봉덕사로 개칭하여 오다가 조선 예종 원년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하였다. 혜각국사는 세조로부터 스승예우를 받았으며 간경도감의 경전언해에 기여한 큰스님이기도 하다. 봉녕사는 1971년 비구니 묘전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요사와 선원을 신축하고 선원을 개원하였으며, 이후 1975년 비구니 묘엄스님을 강사로 승가학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1979년에는 묘엄스님이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였으며 승가대학으로 개칭하게 된다. 현재 절에는 선원과 강원, 그리고 율원을 함께 갖춘 비구니의 수련도량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 절이 위치한 곳이 광교산으로 그 뜻에 걸맞게 널리 가르침을 펼쳐 불성을 연마하고 한국불교의 초석이 되기 위한 수학, 정진에 여념이 없는 곳이다.
2026-03-13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202 (정릉동)
봉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정릉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1395년 조선 왕조의 개창에 큰 역할을 했던 무학대사 자초(自超)가 약사불을 봉안하고 약사사라 한 것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왕실의 지원으로 1468년 다시 한번 중창하였다. 현재의 이름인 봉국사로 바뀌게 된 것은 1669년 태조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묘를 정릉으로 복원하면서 약사사가 원찰로 지정되었을 때부터이다. 이때 정자각(丁字閣)과 안향청(安香廳)·전례청(典禮廳) 등을 지었으며, 나라를 받드는 절이라는 뜻으로 봉국사라 하였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불에 탔으나 이듬해 청계(淸溪)와 덕운(德雲)이 중창하였고, 1898년에는 운담(雲潭)과 영암(永庵)·취봉(翠峰) 등이 명부전을 중건하였다. 1913년 칠성각, 1938년 염불당을 세웠으며 1977년에는 일주문 옆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천왕문, 위층은 일음루(一音樓)라는 종루로 삼았다. 1994년 안심당을 짓고 현재에 이른다. 현재 만월보전과 천불전, 용왕각, 명부전, 삼성각, 독성각, 연화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