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곡성읍 교촌길 71
서산사는 곡성군 생활체육공원의 죽동저수지와 교촌마을 회관을 지나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1935년으로 이 지방의 부호였던 정진태, 수태, 규태 삼 형제가 아버지 정일택과 어머니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가 1938년에 서산사로 바뀌었다. 서산사에는 관음전과 요사채 1동 이외에도 법당 뒤에는 참봉 정일택 부부의 영당(신불을 모신 당) 등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산사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서산사 동종이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
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사동마을의 운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 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730년 무렵 목관 강필경이 부임해 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가량인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은 1779년(정조 3)에 복원된 건물로 1870년 의윤, 정기, 진일 등 3인의 스님이 발원하여 중수하였으며, 최근 년에는 정랑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요사채, 칠성각, 천불전, 화장실 등을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 종각, 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절에는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서동사 목조삼존불 좌상 보물 1715호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제245호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이 있다.
2025-03-16
충청남도 서산시 부춘산1로 44
서광사는 후삼국시대인 928년(신라 경순왕 2, 고려 태조 1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며, 893년(신라 진성여왕 7)에 고운 최치원이 부성군 (현 서산) 태수로 역임하면서 공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후 조선 후기에 현재의 사찰로 개편되어 삼선암이라 불리다가 1987년에 서광사로 개명되었다. 이곳은 본래 저녁 종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였으며, 현재는 여러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사찰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 외에 인곡수련원, 공양간(식당), 휴심당 및 적요당(숙소), 바둑체험관을 갖추고 있다. 서광사가 등지고 있는 부춘산(186.7m)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소나무 숲과 더불어 야생화들이 가득하고 솔의 향기와 꽃의 향기가 어우러져 서산 시민의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겨울 설경이 아름답다. 주변 관광지로 서산중앙호수공원, 풍전저수지 등이 있다.
2025-10-23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4길 19 (서성동)
상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참배객들의 방문이 쉽다. 상주 불교 포교당으로 1921년 설홍스님이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상주 지방 불교 부흥과 보급에 크게 기여해 온 사찰이다. 당초 포교당이던 사찰명을 2002년 상락사(常樂寺)로 바꾸었다.
2025-07-09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658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1958년 임실군수 양창현(梁昌鉉)이 중심이 된 상이암 재건위원들이 빈터에 법당과 요사를 지었다. 『성수산 상이암 사적기』에 의하면, 894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17세의 나이로 도선국사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다시 3일을 더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 전설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1380)을 승리로 장식하고 개선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3일간 치성을 드리자, 천신이 내려와 ‘성수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후 조선 태조가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고려 태조가 썼다는 ‘환희담(歡喜潭)’ 비석과 태조 이성계가 썼다는 ‘삼청동(三淸洞)’ 비석이 있고, 혜월당(慧月堂) 부도와 두곡당(杜谷堂) 부도가 각각 국가유산자료 제124호와 유형국가유산 제15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출처 : 임실군 문화관광)
2025-11-03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상원사길 214
방장산 기슭의 고창읍 월곡리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상원사는 백제 성왕 23년(546)에 신라의 법사 고봉과 발용에 의해 건립하였다. 당시 신라는 진흥황 시기이었는데 전국적인 불사창건령에 따라 고봉과 발용은 임금의 밀명을 받고 백제 땅까지 들어와 사찰을 지은 것이다. 이후 현재까지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18세기 중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모시 상원사의 중심 건물이다. 대웅전은 규모가 작아 다른 사찰의 대웅전에 비해 단정하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상원사는 호남지역 인사들이 다담을 나누는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번잡한 세속을 떠나 그윽한 다향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아담한 고찰이다.
2026-02-24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박사로 169-47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삼악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지며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상원사에 가기 위해서는 삼악산 등산로 입구 삼악산 매표소에 주차하고 가파른 등산로를 30분가량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석탑 1기만이 남아 있다. 사찰 앞으로는 의암호가 펼쳐져있고 뒤로는 암벽과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주변에 등선폭포를 비롯하여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옥녀탕, 삼악산성 등 볼거리도 많다. 특기할 만한 문화유산은 없으나 절 주위의 풍치는 빼어나다. 또, 이 산중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궁예가 몸을 숨겼다는 흥국사가 있다.
2025-10-23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함양군 백전면에 위치한 상연대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경애왕 1년(924)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연(上蓮)이라는 이름을 하여 상연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건한 이래 신라말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을 이곳에 옮겨와 선문(禪門)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역대의 고승· 대덕스님이 수도 정진해 오던 곳으로 천여 년의 영험 어리고 신령한 수도 도량이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고 1953년경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의 뒤편으로는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백운산(1279m)이 우뚝 솟아 있다.
2026-03-12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구룡길 57-125
사자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절터다. 백제 무왕과 선화비가 행차 중 미륵삼존불을 목격한 사건을 계기로 미륵사가 창건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자사는 백제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93년 발굴조사에서 ‘지치 2년 사자사조와’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사자사터임이 확인되었다. 유구에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건물터 흔적과 함께 통일신라 토기, 백제 기와, 분청사기, 청자, 백자 등이 발견되어 다양한 시대의 흔적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 석탑 1기가 남아 있으며, 발굴 후 과거 법당 자리에 약간 확장된 형태로 대웅전을 복원하였다.
2025-09-09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97-22 (북한동)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 남쪽 중턱에 있다. 신라 때 원효스님(617∼686)이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과 지청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인 상운사로으로 바꾸었다. 1864년(고종 1) 긍홍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과 덕산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석탑과 석등 부재가 남아 있다. 그중 석탑은 기단부와 1층 탑신만 전한다. 절 뒤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바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