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4
경기도 부천시 소사로 367
석왕사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보운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이다. ‘바른 불교, 실천불교’를 표방하며 짧은 역사에 비해 도심 속의 포교 사찰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76년 전 총무원장 고산 스님이 천막법회를 시작으로 창건한 석왕사는 20여 년 만에 등록 신도가 1만 5,000세대에 이르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도심 포교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석왕사가 주목받는 것은 단지 이런 규모만이 아니라 어린이집, 유치원, 경로잔치, 문화행사, 출판 등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려는 다양한 시도를 해 왔기 때문이다. ‘석왕사보’를 발행, 사실상 현대불교 최초의 문서 포교를 전개했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포교, 생활협동조합 설립 운영, 부천시민신문 발행,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 설립 운영 등의 활동을 통해 불교의 지역사회 운동 및 사회민주화 운동에 신기원을 이룩했다. 특히 1980년대 석왕사는 민주화 및 노동운동가의 단골 집회소로, 부천의 민주화 성지로 알려지기도 했다. 석왕사는 일주문과 법당, 팔각구층탑, 범종각 등이 사찰이라는 것을 말해줄 뿐 여느 사찰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생활협동조합, 아름다운가게, 무료진료소, 룸비니 수영장, 어린이집, 유치원, 왕생극락전(장례식장), 안락정토(납골당) 등이 있고, 생협과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실은 트럭이 오가는가 하면 저 아래쪽 어린이집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재잘댄다. 또한 장례식장과 명부전에는 검은 상복 차림의 유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성거리기도 한다.
2025-03-11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석상암은 선운사와 함께 백제 시대에 창건된 기록이 전하며, 이후 1665년(현종 6)에 승려 학철이 중창한 선운사의 산내 암자로 승려들의 수행 장소이다. 선운산에 위치해 있으며 절 이름은 절의 서쪽 30m 지점의 평상처럼 생긴 넓은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법당은 최근 건물로서 옥돌의 관세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고, 보살상 뒤에는 1765년(영조 30)에 조성된 후불탱화를 중심으로 같은 해에 조성한 칠성탱화, 지장탱화, 신중탱화 등이 좌우에 있다. 현재는 법당과 칠성각만이 남이 있으며, 주변 네 곳에 건물 터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본래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크고 웅장한 규모가 잘 갖춰진 본사 선운사와 달리 작지만 아담하고 담박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암자이다. 석상암은 자랑할 만한 큰 전각이나 국보급 불상은 없지만 암자 주위의 자연환경이나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매력적인 곳이다.
2025-07-04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구성북로160번길 76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 백월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석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7교수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석련사는 멀리서도 잘 보이는 그런 곳이다.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산길은 백월산의 풍광이 한눈에 각인되는 그런 곳이다. 나막하나 정겨워 드라이브 코스로 알맞다. 따스한 봄볕을 받고 있는 산길에는 아직 솔잎이 깔려 있어 폭신하다. 그러다 석련사에 도착하면 정갈한 경내 모습에 부처님을 향한 환희심이 넘쳐 난다. 높은 석축 위에 위치한 대웅전과 그 옆에 그림처럼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말없이 석련사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질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을 느끼며, 그 나무에 기대서면 갑자기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두 손을 합장하게 된다. 사찰 앞 백월산의 우거진 나무 때문에 드문드문 보이는 홍성의 활기찬 모습이 보이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시야를 탁 트이게 하는 환상적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석련사에서 내려다보는 도심과 자연의 풍광이 아름답다. 대웅전에서 조금 더 산 위로 오르다 보면 근래에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이 마애불에서는 돌에 낀 이끼라든지 세월의 두께가 더께더께 붙은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그곳에 그 부처님을 모신 사람들의 믿음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그곳에서 다시 한번 더 산 아래를 내려보면 가슴속에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다. 이렇게 석련사에 오면 도심에서 멀지 않은 사찰이면서도 산사의 높이감과 믿음의 깊이감을 함께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알맞은 곳에 딱 그만큼의 법당과 석물이 절집을 찾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2025-11-21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 519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 잡은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 그 산세가 크고 뛰어나며, 물 또한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사찰이다. 오봉산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이 3년간 수행정진 했다고 전해진다. 끊임없는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맥을 이어갔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석굴암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1954년 초안큰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원불사를 이루어 나가 현 가람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2026-03-12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3길 167
석골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운문산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 비허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에 법조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짐으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던 사찰로,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으며, 한때는 석굴사 또는 노전사라고도 불렀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 함화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2025-12-18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방축4길 22-49
서천사는 경기도 평택시 장안산에 있는 한국불교해동종 사찰이다. 호국사찰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호국사찰이란 부처의 공덕으로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고자 건립한 사찰 또는 그런 역할을 한 사찰을 말한다. 서천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주둔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또한 서천사 미륵전에는 승병을 보호하던 하얀 미륵불 석조여래좌상이 5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국토를 수호하고 있다. 1352년(고려 공민왕 원년) 나옹화상이 창건하여 1623년 인조반정 시 모두 불에 탄 후에 1870년 동파비구가 미륵불을 발견하여 사찰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929년 중창불사가 있었다가, 1953년 화재로 소실되어 1954년 법당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찰하면 산속에 자리한 산중 사찰을 연상하지만 서천사는 너른 평택의 들판을 바라보며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서천사 입구에는 선훈당이 자리하고 주전인 미륵전과 종무소 겸 요사채인듯한 안월당, 각령전, 산신각, 부도탑이 자리하고 있다.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 대표적인 불상의 석조여래좌상은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석가모니불상으로 돌로 만들어졌으나 몸 전체에 회칠을 발라 놓은 상태이다.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석불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서천사는 크지 않은 아담한 사찰로 네 채의 사찰 건물들이 보기 좋게 분배되어 지어졌고, 사찰 뒤로 낮은 병풍을 드리운듯한 낮은 산이 있어 산책하듯 사찰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다.
2025-12-17
경상북도 안동시 서악길 67-14 (태화동)
서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통일신라 후기 경문왕 때 도선국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사기인 「서악사기」와 「태화산운대사상량기문」에 의하면, 1744년(영조 20) 태화산 중턱에 있던 서악사를 현재의 자리로 옮겼고, 1748년(영조 24) 대규모의 중창 불사가 있었다고 한다. 서악사는 본부(本府)의 사악(四嶽) 중의 하나로 지덕을 돕기 위한 비보사찰이다. 본부의 사악은 동(東)은 동악이라 하며 절이 있고, 남(南)은 남산인데 순천사가 있으며 서(西)는 서악이며 절이 있다. 그리고 북(北)은 금학산인데 수정사라는 절이 있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주법당인 원통전 내부에 있는 불상은 근래에 제작한 것이고 탱화 6점은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로 평가되는데, 6점 중 3점은 1770년(영조 45)에, 1점은 1868년(고종 5)에 제작한 것이다. 또 법당 안에 있는 동종은 1933년 3월 조성된 것으로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른 귀중한 유물이다. 절 입구 바위에는 ‘연파독역산(蓮坡讀易山)’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이 글귀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1853-1938)이 이곳에서 「역경(易經)」을 읽었다는 뜻으로, 절 뒤편에 장화식의 묘가 있다.
2025-10-23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대심1길 160
봉덕산 중턱에 자리한 서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1960년 요사채를 중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701년(조선 숙종 27)에 창건된 사찰로 1737년(영조 13)에 이건 하였으며, 1761년 요사채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요사채 2동, 일주문이 있다. 주법당인 원통전 내부에 있는 불상은 근래에 제작한 것이고 탱화 6점은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로 평가되는데, 6점 중 3점은 1770년(영조 45)에, 1점은 1868년(고종 5)에 제작한 것이다. 또 법당 안에 있는 동종은 1933년 3월 조성된 것으로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른 귀중한 유물이다. 절 입구 바위에는 ‘연파독역산’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는데, 이 글귀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1853~1938)이 이곳에서 역경을 강독하던 곳이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비금면 서산길 260
서산사[西山寺]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고려 후기인 1375년(우왕 1)에 내월리 선왕산 뒤편에 처음 세워졌었다는 구전이 전해질 따름이다. 이 외의 사적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주지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위축되었던 포교활동을 1898년 목포 개항과 함께 다시 시작하려 하였으나 산길이 너무 험해 192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서산사는 불교의 미타신앙과 토착적인 용왕 산신신앙이 복합된 신앙을 내용으로 섬 주민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며, 나한기도의 도량으로서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비금도의 유일한 사찰이기에 여기에 들르는 관광객들이 꼭 한 번은 찾아가는 명소이기도 하다.
2025-12-02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2번길 177 (장암동)
수락산 석림사(石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1671년(현종 12년)에 석현화상과 그의 제자 치흠이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이 석림암(石林庵)이라 이름 짓고 「석림암기」와 「석림암 상량문」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1745년(영조 21)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하고 석림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후 6·25전쟁 당시 전소되어 또다시 소실되었다. 1960년부터 비구니 상인스님이 상좌 보각과 함께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