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품바발상지

품바발상지

2026-08-2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에 소재한 천사촌은 우리 민족의 한과 역사를 마감하고 희망찬 새 시대의 도래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은 상황 연극의 효시인 ‘품바’가 탄생한 옛 터다. 품바는 1981년 당시 일로읍 공회당에서 인의예술회를 통해 문화활동을 해오던 시인이며 극작가인 무안 출신 김시라의 각색·연출과 정규수(1대 품바) 출연으로 초연한 이후 국내외 4,000여 회 최장기 공연으로 최다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수립하였다.

선봉사(칠곡)

선봉사(칠곡)

2024-11-12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산로 275-209

선봉사는 칠곡군 금오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1132년에 세운 선봉사 대각국사비(대각국사 의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에 의해 고려 시대에 선봉사가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선봉사는 대각국사와 그 제자들이 수행했던 천태도량으로, 당시에는 현 위치보다 아래쪽에 있었으며 부지면적이 약 3만 3,000㎡(1만여 평)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조선시대 들어 임진왜란 발발 7년째 되던 해에 왜인들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었다. 그 후 1922년 유장렬이라는 이가 선몽을 꾸고 대각국사비를 발견한 후 선봉사 터 부근에 대각사라는 사찰을 지었고, 1989년 성수스님이 대각사를 인수함으로써 선봉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정식 사찰명은 선봉사가 아닌 선봉선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경내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대각국사비를 모신 비각이 있고, 왼쪽에 산신각이 자리한다. 대웅전의 주존불은 1950년 조성한 토불인 석가모니불이며, 법당보다 대각국사비 앞에서 치성드리는 신도들이 많다고 한다.

선림사(보령)

선림사(보령)

2025-11-27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521-64

보령시 오천면에 자리한 선림사는 유형문화유산이 있으며, 바다를 볼 수 있는 절경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진 천년사찰 선림사는 울창하게 숲이 우거져 오천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곳이며, 서해 바닷가 쪽 큰 산 냇골 동쪽, 이른바 ‘싱기댕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다. 사찰의 주위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해안이 가까이에 있어 멀리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다. 절의 돌 틈에서 나오는 약수는 머리가 맑아지게 하여 감로수라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관음조가 유난히 많고 갖가지 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여 성지다운 도량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선국사(남원)

선국사(남원)

2025-12-15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성길 239 (산곡동)

선국사는 교룡산성 내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산성 내에 있다고 하여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685년(신문왕 5)에 남원 소경이 설치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창건되었으며, 이곳에 용천이라는 샘이 있어서 용천사라 하였다. 절 둘레에 교룡산성을 쌓은 뒤 절의 성격이 호국 도량으로 바뀌면서 이름도 선국사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국사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절 이름에 [국 國]자가 들어가는 사찰들은 대부분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처럼 선국사도 나라를 지켜낸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호남지역의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미를 바로 이 교룡산성에 보관했는데, 이때 선국사는 교룡산성을 지키는 수비대의 본부 역할을 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보제루, 관음전, 요사가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부에 아미타삼존불과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여러 점의 탱화와 큰북, 중종, 현판 2매가 보관되어 있다.

선광사(제주)

선광사(제주)

2026-06-0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510번길 42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선광사는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선광사는 해안 석벽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해안 동굴들이 태고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바다와 맞서고 있는 남원큰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선광사가 창건된 것은 1942년 보화 법인스님이 법당과 객실을 지으면서부터이다. 1945년에는 1차 중건 불사로 포교활동에 박차를 가했으나, 1948년 4·3사건의 여파로 선광사는 잠시 폐사가 된다. 그 후 4·3사건과 6·25전쟁 등 격동의 세월을 역사와 함께 보내고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게 되자, 다시 중창 불사하여 현재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사찰 면모를 갖추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탄사(정읍)

석탄사(정읍)

2025-12-1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허궁실2길 186-125

석탄사는 정읍의 칠보면 용태봉 석탄의 동봉 암벽에 자리 잡은 전통 사찰이다. 창건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오래된 절이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선조 때 임신과 정유 난 때 병화로 타 버렸는데 영조 때 박잉걸이 다시 지었고, 1894년 갑오동학 혁명에 소실된 것을 가산 김수곤이 중건했었는데 1950년 6.25 사변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1973년 조병준이 재건하였다. 석탄사의 대웅전 앞 쪽으로 지맥이 뭉친 곳이 있는데, 이 곳을 무제등이라 하고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 인근 지역에 가뭄이 심하게 들 때면 고을원이었던 태인현감이 20리나 떨어진 이곳에 와서 직접 기우제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또 이 사찰은 삼성각의 나반존자가 여러 영험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곳이다. 날씨가 맑은 날 대웅전 앞에 서 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멀리 변산반도와 서해까지 들어오는데 산을 오를 때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런 경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주변 관광지로 국사봉, 수청저수지, 칠보산, 무성서원이 있다.

석천암(괴산)

석천암(괴산)

2025-03-17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길 205-182

석천암은 대야산 서쪽에 위치한 고찰로 구전에 의하면 ‘바위밑에서 약수가 나온다 하여 석천암으로 부른다’는 유래가 있어 석천암으로 부른다. 현재의 석천암은 보덕암에서 석천암으로 이름을 바꾼 사찰이며, 옛 석천암은 현재의 석천암 아래 삼송리 29번지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곧 원래의 석천암이 6.25 전란으로 법당이 소실되고, 1965년경 수해로 요사채가 소멸되어 폐사(廢寺)되었다. 이후 석천암 위에 있던 보덕암이 1985년경 화재로 소실되자 사찰을 신축하면서 ‘석천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석천암은 1칸 크기의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으며, 사찰에 면한 뒤쪽 암반에서 나오는 물을 사용하고 있다.

석천사(여수)

석천사(여수)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충민사길 52-21

여수 마래산 중턱에는 충민사와 석천사가 있다. 충민사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고, 바로 옆에 위치한 석천사는 충민사의 수호사찰이다. 충민사 뒤편 큰 바위 아래 석천이라는 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정유재란이 끝난 3년 후(1601) 이순신장군과 함께 판옥선을 타고 종군한 승장 옥형 스님과 자운 스님이 이충무공의 인격과 충절을 잊을 수 없어 충민사 곁에 공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암자를 건립하였다. 석천사에는 의승당이 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몇 해전 법당이 불에 타버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종각, 요사 등을 새로 짓고 보수했으나 충민사 정화 사업 때 법당과 요사의 원래 위치가 바뀌었고 일주문도 없어졌다. 충민사와 함께 둘러보면 좋고, 석천사가 있는 마래산은 여수 8경에 속하며 정상인 활공장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와 여수시내, 그리고 오동도를 조망할 수 있다.

석종사(충주)

석종사(충주)

2025-04-03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길 271-56

석종사는 충주시의 외곽의 금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웅전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오화각 및 범종각, 소소원(선방), 안양원, 금봉암, 조종육엽(조실채), 금봉선원, 감로각, 천척루(누각), 회명당(후원), 원흥료(종무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 역시 사찰에 몸담아 수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템플스테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조용히 수양하고 참선하며 불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불교대학을 운영함으로써 불자와 일반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 밖에도 불설사십이장경, 인천안목 권상과 같은 여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석천암(남양주)

2026-02-24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75

석천암은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때 지증 국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82년(고종 19)에 병역 제도의 개편으로 오위 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 이장군이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그 후 1922년에 거사 김한구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1956년에는 주지 창근 스님이 요사채를 중수하고, 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또한, 석천암의 중심 커다란 암벽에는 중생 구제의 염원을 가진 미륵불이 새겨져 있다. 말법 시대 중생들의 귀의처인 이 미륵불은 1966년 설봉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미륵불 앞 기도처는 동방 제일의 기가 강한 곳으로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사찰은 2011년 의문의 화재로 2010년 4월 낙성된 52.23㎡(약 15.8평) 규모의 대웅전이 모두 소실된 사건이 있었다. 방화 사건으로 마무리된 후 2013년 재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석천암은 불암산 등산코스에 있으며 불암사에서 석천암까지는 20분가량 가파른 산길과 암벽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 사찰에 가까워질수록 아래를 돌아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은 불암산을 등반하는 길에 꼭 한번 들러봄 직한 아름다운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