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금산면 금산중촌길 266
거금도 용두봉산에 자리한 송광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 연혁에 대해서는 1990년 경내에 세워진 송광암 9창기적비를 참고하면, 고려시대인 신종 3년(1200)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이루어졌다. 전설에 의하면 국사께서는 모후산에 올라 터를 찾기 위하여 나무로 조각한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 마리는 송광사 국사전, 한 마리는 여수 앞바다 금오도, 한 마리는 금산 송광암에 앉았다고 하여 삼송광이라 부른다. 1987년에 들어서 범곡 원공 스님이 대웅전과 요사를 늘려짓는 등 대략 9번째 중창을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극락전 내부에 삼존불상과 후불탱, 진중탱, 지장탱, 칠성탱, 산신탱 그리고 범종이 모셔져 있다. 경내의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거금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령스러워 신목으로 여기지고 있다. 송광암은 규모가 작은 사찰이며, 적대봉 등산 코스에 있으므로 함께 방문할 수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93-10
벌교포교당은 동서남북으로 부용산, 제석산, 낙안, 진토제 등의 불교적 지명에 둘러싸인 천혜의 사찰 터라는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 대웅전 마당에 수령 300년의 우람한 향나무가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건강하고 우람한 모습으로 포교당을 감싸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가깝게 다가가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사찰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전통사찰의 소임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군민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신도 교육을 위해 교양 강좌를 개설하여 경전 공부와 강의 및 스님과의 편안한 대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힐링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포교당 인근에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배경 장소인 벌교홍교, 소화다리가 있다.
2026-03-05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검정로 241-3 (홍지동)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의 작은 굴에서 기도하여 개국의 뜻을 이루었으므로 1396년(태조 5)에 달마대사께서 9년 동안 면벽좌선한 승산 소림사의 이름을 따서 ‘소림굴’이라 하였다고 한다. 왕명을 받아 사찰을 직접 창건한 사람은 혜철스님으로 창의문 밖에 관음보살을 모시게 된 것이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에 중종과 선조 때 소림굴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당시에도 사찰이 계속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선조 때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수륙재를 시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817년(순조 17)에 관해스님이 중건하면서 ‘소림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1913년에 두삼스님이 대방 불사가 있었고 1933년에 칠성각, 1935년에는 대웅전, 그리고 1942년에는 대방과 산신각이 각각 용호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근래에 소림사는 비구니 도량으로 1979년부터 2003년 사이에 혜윤스님의 원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요사채, 약사전 중창불사를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6-06-01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건립된 이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방(1칸× 2칸)과 대청(3칸× 2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짜임새는 오량(五樑)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쇠서 하나를 둔 초익공(初翼工)의 공포(拱包)로 꾸몄다. 대청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고 종도리를 받친 대공(臺工)의 모양이 특이하다. 독락당 옆쪽 담장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살창을 통하여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특출한 공간구성이며, 독락당 뒤쪽의 계정(溪亭)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이인이 바둑을 두던 희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 희수의 다친 발을 냇물에 식히던 장면을 비롯해 의 아름다운 풍경을 책임진 곳이 바로 독락당과 그 옆 계곡이다. 옛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독락당 계정에 들어서면 마치 과거에 온 듯 착각이 든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내동리쌍무덤은 영산강 하류에 있는 내동리 서쪽의 구릉 중간부에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상에 드러난 고분의 외형과 규모를 통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점으로 확인되었다. 1호분과 2호분은 봉토가 거의 맞닿아 있는데 그 사이에 오솔길이 나 있다. 1호분은 가장 큰 분구를 가지고 있는데 봉분의 규모가 56m나 되는 긴 타원형을 이루고, 2호분은 방형 또는 원형이다. 3호분은 1호분과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데 1호분과 2호분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 고분군은 본래 4기였으나, 4호분은 민묘(民墓) 조성으로 훼손되고 3기만 남아 있다. 쌍무덤은 1호분과 2호분을 통칭하는 것으로 구릉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쌍무덤을 마을주민들은 풍수지리적인 면에서 ‘매화낙지(梅花落地)’라고도 부른다. 내동리쌍무덤에 대한 성격과 구조는 정식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인근에 있는 초분골고분의 발굴 조사로 봉토 내에 독무덤이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마한 시기의 지배 계급 무덤으로 생각되며 내동리쌍무덤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조선 중기 명장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묘소이다. 광해군 7년(1615)에 과거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 등을 거쳐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여러 공이 인정되어 죽은 후 병조판서로 벼슬이 높여졌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 아래에서 용맹을 떨쳤고, 인조 1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묘는 원래 해남면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 44년(171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묘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운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박세채가 글을 짓고 조명교가 글씨를 쓴 것이다.
2025-12-12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동서는 안압지로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반월성 남쪽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신라 왕도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반월성,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물왕을 위시한 수십 기에 달하는 신라시대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일대의 면적은 668,121㎡(202,46평)이다.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재위 924~927)의 무덤이다. 경애왕은 신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명왕의 동생으로,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사를 보내어 고려를 도왔다. 927년에 포석정에서 제사를 지낸 후 연회를 베풀던 중 그곳을 기습한 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덤은 삼릉계곡 입구의 소나무 숲 안에 있다.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가라며 둘레돌로 보이는 석재가 일부 드러나 있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2026-03-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92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상소산(성황산) 기슭의 서림공원 내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형 사찰이다. 성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 말사이다. 이 절의 창건 당시부터 절의 명칭이 성황당사였다는 점은 부안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공동체 수호 신당인 당산과 함께 부안에서 성황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부안에는 열두 샘물과 동서남문으로 성문이 있는 읍성이 자리하고 있어 성 밖에 파놓은 해자나 성을 지키는 신을 뜻한 점과 관련해 부안읍성의 수호 사찰로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성황사는 정월, 석가탄신일, 백중에는 불사를 크게 진행하고 동지에는 불사를 지내지 않는다. 겨울철에는 신자들의 산행이 위험하기 때문에 동지 불사를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소산 정상에서는 부안 지역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2025-09-09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 459-99
통일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했다고 추정되는 성혈사는 소백산 국망봉 아래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성혈사의 명칭인 성혈은 사찰 남쪽에 있는 굴의 이름인데, 옛날 이곳 바위 굴에서 성승이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성혈사의 가람은 지형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좁은 계곡의 일부를 지형에 따라 절터로 조성하고 여기에 승방과 나한전을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나한전, 산신각, 삼성각, 심검당, 함담정·누각, 요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나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근래에 들어 신축하였으며, 당호와 현판도 없는 건물이 여러 채 있다. 성혈사는 개창 이후 기록이 없다가 조선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내 중요 문화재로는 성혈사 나한전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신중탱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