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4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3길 56 (회기동)
연화사는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천장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말사이다. 서울 동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회기동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소인 회릉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그 터에는 그녀의 원찰로 지어진 조그마한 절이 있다. 일체중생의 근본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청정한 연꽃과 같다는 의미에서 연화사라 불렸는데, 이후 묘련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모두 연꽃의 청정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연산군이 생모 윤씨의 명복을 빌고 비명에 간 원혼을 천도하기 위한 도량으로서, 연꽃의 기능 중 화생의 의미로 붙인 이름인 듯하다. 현재는 회릉이 서삼릉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 경희여중·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 터 아래 조그마한 사찰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사찰의 모습이 아니라 도심 속 사찰로 변모했지만 사찰에는 폐비 윤씨는 물론 선의왕후의 원찰로서 많은 상궁이 조성한 불화들이 남아 있어 왕실 원찰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2025-08-14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42번길 13
1923년에 세워진 연화사는 수정산(일명 금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성 옥천사의 포교당이었으나 지금은 제12교구 본사 합천 해인사의 포교당이다. 보살들의 수행정진 도량으로 유명한 이곳은 초창기부터 여러 큰스님이 주석하며 수행 가풍으로 항상 30명 정도의 보살들이 정진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정도가 하도 깊어 스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연화사 도량에 가면 부도가 2기 있는데 스님의 것이 아닌 보살의 부도이다. 이 부도는 이곳에서 공부한 보살들이 입적하면서 남긴 정진의 결과물인데 공부의 깊이가 상당했을 뿐 아니라, 불자들의 귀감이 되어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사찰의 상단에는 대웅전과 범종각, 요사채, 선방 등 종교 건물을 일자로 배치하고 하단에는 종무소, 유치원과 놀이터 등 부대시설을 배치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평면에 팔작지붕의 목조와가이며 화려한 단청이 시문되어 있으며 안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2026-05-29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죽죽길 80
합천 연호사는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동에 있다. 대야성 아래에 있는 연호사 뒤로는 황우산이 솟아 있으며, 앞으로는 황강이 흐르고 있다. 산을 뒤로하고 누각에 앉으면 유유히 흐르는 황강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으며, 비 오는 날에는 누각 처마에서 황강으로 바로 떨어지는 빗물을 보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합천 황강에 온갖 번뇌망상은 흘려버리고 부처님의 불법만 고이 지키고, 삼국시대 신라의 변방으로 군사 요충지였던 황우산 대야성에서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남쪽 석벽 위에 지어진 연호사는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과 신라 장병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원찰[願刹]이다.
2025-12-24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활성길 120-5
경주 괘릉 안쪽 활성리라는 작은 마을 언덕에 있는 연지암은 일제강점기 말 김연지화 보살이 창건했다. 김연지화 보살은 꿈꾼 뒤 길가에 버려진 석불을 찾아내 이 절에 봉안했는데, 한 일본군이 이를 알고 불상의 출처를 대라며 연지화 보살을 고문하자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불상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석조 약사여래 입상으로, 얼마나 영험한지 학업 성취, 사업 성공,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 연지암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 목조건물인 대웅전과 2동의 요사채로 이루어졌다. 대웅전 안에는 석조 약사여래 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연지암 인근의 경주 괘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괘릉은 유홍준의 ‘우리 문화 답사기’에 등장하는데, 경주에 있는 155개 고분 중 능묘 정원이 가장 아름답고, 그 능묘 조각은 통일신라 리얼리즘 조각의 진수라고 해서 더욱 알려진 곳이다.
2025-10-23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7길 127 (연원동)
연수암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진감국사가 건립한 장백사의 여러 암자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과 쌍사자 석등만 남아 1930년부터 토굴암자로 있다가 1940년에 재건되었다. 연수암이란 뜻은 천연의 바위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연꽃이 피는 모양 아래 샘물이 항상 나온다고 한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사찰 내에는 삼존불과 십일면 관세음보살입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2002년 12월 20일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출처 : 관광상주)
2025-12-29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연수사길 115-103
연수 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 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서 신라 애장완 3년(802년) 감악조사가 감악산 남쪽에 절을 세웠으나 빈대 때문에 절이 망하여 능선 북쪽인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연수 사는 감악산의 시원스러운 하늘 아래 안겨 아름다운 전설을 지닌 만큼이나 뜻깊은 명소이고 물과 인연 깊은 절이다. 고려 공민왕 때 벽암선사가 심여사원을 지어 불도를 가르쳤다는 절로서 푸른빛 감도는 바위구멍에서 떨어지는 맛 좋은 샘물이 있다. 이 샘물에서 신라 헌강왕이 중풍을 고쳐 감사의 뜻으로 그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사시사철 온도가 같은 점이 특징이다. 여름철 이른 새벽이나 저녁에 연수사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연수사 약수를 찾아가는 이들로 ‘연수사 물 맞으러 간다’는 말로 통하고 있다. 절 앞 은행나무는 6백여 년 전 고려 왕손에게 시집가 유복자를 낳고 속세를 피해 절로 들어왔다가 조선에 망한 고려 왕 씨의 명복을 빌던 한 여승이 심었다는 나무로써 도지정 기념물 제124호로 지정되어 연수사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2025-12-16
경상북도 안동시 제비원로 672 (이천동)
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 꼬리에 해당하고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라 불렀다. 연미사라는 이름은 원래 조선시대 영남 지역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길 여행객이 쉬어가는 숙소인 연비원, 속칭 제비원이라 불렀다는 데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연미사에 있는 보물인 이천동 석불의 잔잔한 미소는 안동의 상징적인 얼굴로 잘 알려져 있다. 속칭 제비원 미륵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석불은 바로 연미사의 오랜 역사에서 홀로 남은 고마운 부처이자 우리 불교사에서도 몇 되지 않는 대표적인 미륵불이다. 또한, 이 석불은 대표적 민요인 성주풀이에도 나올 만큼 백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뿌리내리려 한 민간신앙의 대상과도 닿아 있다. 연미사가 사찰로서는 매우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미륵불이 담고 있는 미술적, 민족적 유산 가치는 뛰어나다.
2026-03-05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로 17-3 (좌천동)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좌천역, 부산진역 등과 가까운 도심 속 사찰로 찾는 이가 많다. 불가에서 연등은 무명을 밝혀 지혜를 얻는 상징이다. 사찰명에 연등을 쓰는 경우는 드물어서 그 옛날부터 불심이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연등사의 창건 시기나 유지에 관해 전해지는 기록은 없으나 1860년대 무렵 한 스님이 지금의 자리를 보고 팔금산의 정기가 고루 맺혔다 하여 초암을 짓고 포교에 나선 것에서 사찰이 비롯됐다고 하는 이야기가 동네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정해진다. 1882년 승려 덕산이 주석하면서 지금의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짓고 연등사라 불렀다. 연등사 내에는 20세기 초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소조 아미타불 좌상, 관음보살 좌상, 대세지보살 좌상과 조선 후기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목조 관음보살 좌상, 석조 지장보살 좌상을 비롯해 지장탱, 신중탱, 칠성탱,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연등사 영산회상도 등의 탱화가 있다. 그밖에 석조 나한상 1점과 동종, 2개의 석탑을 볼 수 있다.
2025-11-21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1길 407
여적암은 법주사에 속한 암자로 조선 숙종 20년(1694)에 여적당 경수대사가 창건한 후 광무 9년(1901) 당시 주지였던 남응익 대사가 중창하였다. 1950년 6.25로 소실된 뒤 1964년 행담이 중건한 암자이다. 법주사의 여러 산내 암자 가운데 대부분은 등산로와 연결이 되어 있어 첩첩산중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여적암은 일반인들의 발길이 드문 몇 암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여적암은 1694년 여적 경수 스님이 창건한 이래 3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는 암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경계한 여적 스님의 깨우침이 전설로 남아 전해오고 있다. 주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경내에 남아있는 청석탑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석탑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특이한 형태의 석탑으로 실제 조사된 것은 전국적으로 10기가 넘지 않는다. 그것도 옥개석 몇 장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법주사 여적암다층청석탑도 조성 양식으로 보아 대략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연꽃 문양이 조각된 갑석형과 옥개석 네 귀퉁이 전각에 풍경공이 있으며 탑신석이 남아 있는 상태로 학술 가치가 큰 유물이다.
2025-03-06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대로804번길 42-57 약수암
약수암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 불교법화종 소속 사찰이다. 1890년경 승려 경파가 조청정화, 박보리화, 서본성월이라는 보살과 함께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950년대부터 청명 스님이 55년간 주석하면서 불사를 이루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약수암은 대웅전과 약사전, 삼성각, 종각 그리고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에 주심포 형식이며 1950년대 초에 건립한 전각이다. 대웅전 건립 시기와 같은 1950년대 초반에 지어진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주심포 형식이다. 외벽화는 없으며 오른쪽 외벽에 창방이 하나 나 있다. 1999년 팔각형의 시멘트 건물로 지어진 약사전은 외부 단청까지 되어 있으며 외벽에는 산수, 화훼, 화조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벽화가 8면에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