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0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무심서로 565
용화사는 청주 무심천변에 자리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다.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처음 지었으며,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1752) 벽담선사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보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용화전, 탐진당, 적묵당, 해월루 등 목조건물과 불사리 4 사자 법륜탑, 효봉스님 사리탑이 있다. 불사리 4 사자 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 석탑으로, 진신사리 7 과가 봉안되어 있다. 산내 암자로는 고려 태조 26년(943) 도솔선사가 세웠다는 도솔암, 조선 숙종 7년(1681) 청안선사가 세웠다는 관음암이 있다. 용화사에는 1902년 고종의 비인 순빈 엄 씨가 명하여 발견했다는 칠존의 석불이 안치되어 있으며, 상당산성 안에 있던 보국사를 옮겨 이 절을 지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곳은 일반 사찰과 달리 시내 가운데에 있어 누구나 편히 방문할 수 있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절에서 묵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지기 좋다. 봄에는 사찰 주위의 무심천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2025-03-16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소강정1길 83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용화사는 신라 성덕왕 19년에 만들어진 숭덕불상을 모시기 위해 처음에는 미륵불당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조선 시대 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할 때 절은 없어지고 이석불만 외롭게 서 있다가 1959년에 기해 10월에 한자심에 의해 법당, 요사채를 각 3칸씩 짓고, 1965년 을사 10월에 법당을 중수하고 용화사라 이름 지었다. 경내에는 도지정 제138호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높이 7m의 커다란 불상으로 타원형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보인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있고 그 아래에 표현된 목걸이 장식은 얼굴과 함께 불상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신체는 부피감이 거의 없는 커다란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옷은 가슴을 드러낸 채 양 어깨에 걸쳐 입었고 하체에는 U자 모양의 주름을 겹쳐 나타냈다. 가슴 앞에 들고 있는 오른손이나, 연꽃을 들고 배에 댄 왼손은 작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크기, 부피감 없는 사각형태, 빈약한 세부표현에서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2025-10-30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법전길 260-31
안성 용화사는 안성시 미양면 법전리에 자리한 사찰이다. 나지막하고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 사이로 좁은 들이 펼쳐지는 이곳의 지형 특성에 따라 지어진 용화사는 산사보다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절의 창건은 1902년 소현 스님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인연에는 스님의 꿈과 연관된 일화가 있다. 불학을 공부하고 포교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스님은 그 첫날밤에 종산에서 용이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은 하늘로 오르면서 무슨 미련이 있는지 자꾸 자신이 솟아오른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꿈속에서 보았던 터전에 지금의 용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찰의 건물로는 용화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법당 내 오른쪽에 석조여래 입상과 작은 바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불상과 바위에 관해서는 남녀 미륵불이 땅속에서 솟아날 때, 지나가는 행인이 여 미륵 위에 소변을 누는 바람에 미륵불이 못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임신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 용화사에 핵심인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앞쪽에 큰 석조 불상이 있고 뒤쪽에는 그보다 작은 크기의 바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앞쪽의 큰 석불이 남 미륵이고 뒤쪽에 자리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바위는 여 미륵이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얼굴 윤곽은 뚜렷하나 이목구비 등이 많이 닳고 훼손되어 있다. 정확한 이미지를 쉽게 그려볼 수는 없으나 팔, 법의 등 조성된 양식으로 추정해 보았을 때 고려 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2025-09-04
경기도 김포시 금포로 1487-5 (운양동)
김포 용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제방도로를 타고 강화 방면으로 가다가 누산리 평야가 시작되는 지점의 좌측, 운양산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로 일산 신도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대략 1405년(태종 5)으로, 뱃사공인 정도명이 조공을 배에 가득 싣고 오다가 간조로 인하여 운양산 앞에 배를 대게 되었는데, 그날 밤 부처가 꿈에 나타나 대어놓은 배 밑쪽에 석불이 있으니 잘 모시라 하여 이를 모시고 자신도 삭발수도하게 되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비교적 높은 석축 위에 동서로 50m, 남북으로 30m에 이르는 대지 위에 용화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용화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로서 팔작지붕으로 된 기와집이다. 5층석탑은 높이 약 5m에 달하며, 회백색 화강암 재질로써 옥개받침은 5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화전의 상단에 모셔져 있는 석불은 용화사의 창건설화에 나오는 미륵석불로 조선 초기 불상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2004년 8월 김포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
2025-03-25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상골길 403
용상사는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해 있다. 993년(성종 12), 1010년(현종 1)에 이어 1018년(현종 9)에 소배압이 거느린 4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게 되자 현종은 민간인의 차림으로 이곳 월롱산까지 피신하게 되었다. 다행히 강감찬이 귀주에서 승리하면서 나라 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절을 짓게 하고는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덕은화주가 1445년(세종 27)에 중건하였으며, 이때 소북석상을 인근 벽장굴에 조성해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도량이 되었는데 왜군의 시체가 근처 골짜기에 가득하여 한때는 ‘무덤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 이름이 보이고 있고,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보면 ‘절이 지금은 없어졌다’라는 말이 있어 임진왜란 이후 어느 때인가 폐사된 것으로 생각된다. 근대에는 1926년에 정염스님이 폐허가 된 절터에 사찰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터에서 약간 아래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게 되었다. 1967년에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면서 서쪽에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용지면 봉의로 205
용봉사(龍鳳寺)는 김제시 봉의리에 위치한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경내에는 팔작지붕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불당이 있다. 용봉사는 1927년 김응삼(金應三)과 박대창(朴大昌)이 창건한 개인 사찰이다. 그 후 1958년에 승려 김기춘과 최보현화 보살이 미타전(彌陀殿)을 기와로 중수하고 약 49.59㎡의 대웅전을 목조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또한 산신각과 요사를 개축하고 종각을 건립하여 범종을 달았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삼존불에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고 석탑도 세워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화양면 용문사길 91
비봉산 아래 위치한 용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의 화엄사 말사로 통일신라 시대 사찰이다. 1981년에 발간된 여수여천 향토지에서 통일 신라 효소왕 원년에 당 고승 도증법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문헌이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전설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용문사는 도심에서 벗어나 있어 포교활동에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찰의 호젓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산사 음악제를 개최하여 지역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용문사의 다실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조용한 산사에서 차를 음미하며 담소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신도회의 봉사 활동도 활발하여 지역 내의 복지 시설을 찾아 자원봉사와 후원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 지역 사회에 정서적으로 녹아드는 포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25-11-20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화원휴양림길 132
용문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비슬산 중턱에 자리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이른바 용이 승천하기 위해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이어 주기 세워진 사찰로 사명 역시 용의 관문이라는 뜻의 ‘용문’이라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용문사와 용문사의 주변은 ‘용문‘이라는 지명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하다.
2026-03-12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헐티로 1375-9
비슬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용천사(湧泉寺)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옥천사(玉泉寺)라고 하였는데, 당시 옥천사는 해동화엄전교(海東華嚴傳敎)의 10대 사찰 중 한 곳이었다. 고려 원종 8년(1267)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선사(1202~1289)가 중창하여 불일사(佛日寺)라 하였다가 다시 용천사로 고쳤다. 임진왜란 후 조선 인조 9년(1631) 조영대사가 3중창 하였으며, 조선 순조 5년(1805) 의열화주가 크게 중수하였다. 해방 후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구교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편재되었다. 용천사는 맑고 풍부한 석간수가 끊임없이 용솟음쳐 흘러내리고 있어 용천(湧泉)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2012년 지거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9년 동안 봉직하며 목암, 공양간 건축, 경내 토목 공사정비, 각 전각의 단청 등을 완수하여 도량을 일신하였다. 전성기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였고, 부속 암자로들은 백련암, 청련암, 일련암, 남암, 서암, 내원암, 부도암, 도성암 등 47개소에 이르렀으나 무구한 세월 속에 사라지고 사찰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 2m 높이의 부도 6기가 사찰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사찰 내 전각들 중 대웅전은 1631년 3중창 때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2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내 후불탱화 영산회상도는 보물 제1956호로 지정되었다.
2026-03-05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용봉산1길 109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의 북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용봉사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고찰의 하나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용과 봉황이 있는 산에 있는 사찰, 용봉산의 용봉사라는 그 이름조차 범상치 않다. 이 절은 확실한 창건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으나 각종 유물에 의해 백제 말 혹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앞쪽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자리 잡고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용봉사는 홍성 지역의 사찰 중에서 종류와 내용이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고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