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8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69길 520 (도봉동)
원통사[圓通寺]는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1 교구인 조계사의 직할사찰이다. 원통사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 잡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져 왔다. 조선초기의 무학대사를 비롯해서 근대에는 만공·동산·춘성스님 등 선지식이 이곳에 머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관음기도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 서명균 등이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며 심신을 닦았던 곳으로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 명소로 이름 높았다. 현재 경내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큰 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 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새겼다는 상공암 [相公岩]이라는 글씨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절 뒤쪽에 있는 우이암으로 불리는 바위는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원래는 ‘관음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주변의 자연 지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호랑이·코끼리·학 등 여러 동물 모습을 한 바위들이 이 바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곳을 천혜의 관음성지라고 믿고 있다.
2025-10-29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원등산길 386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완주 원등사는 원등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원등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진묵대사가 오백나한을 모시기 위해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 법당은 1956년 8월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하였다. 원등사는 약 1,200년의 고찰이며, 산중턱에 진묵대사가 참선을 수행했다는 참선당(토굴)도 있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지가 소실되어 정확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사찰 측에 따르면 신라 문성왕 2년에 광보조선사가 절터를 구하고자 무주 향악 난야에서 나무로 만든 오리를 날려서 원등사 터로 날아오자,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서 진묵대사가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등불이 보이고 있어서 백리길을 찾아와 보니 원등사 터에 남아있던 석등에서 불빛이 비추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묵대사가 성지임을 알고 중창하였으며, 이름도 멀리 비추는 등불을 보고 사찰의 터를 찾아내어 지은 사찰이라는 뜻으로 멀 원(遠), 등불 등(燈)을 써서 원등사라 했다고 한다. 그 뒤에 6·25전쟁의 공비토벌 때에 전소되었던 것을 1985년부터 3대 창건주인 수련스님이 석굴법당과 명부전을 재건하였고, 1989년에는 석굴법당에 500나한상을 모셨다.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사정거리1길 20
사찰의 창건 및 연혁에 관하여 1984년에 기록된 ‘원각사사적비(圓覺寺事蹟碑)’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본인 승려 아오키 타로가 일본 동본원사(東本願寺) 계통의 작은 규모의 사찰을 창건했으며, 창건 당시 이름은 진조사였다고 한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에 지금의 주지인 춘명 창석이 진조사를 인수하여 원각사(圓覺寺)로 이름을 바꾸고 사세를 점차 확장했다. 1968년에는 대웅전을 짓고, 1970년에는 종각을 새로 지었다. 1975년에는 최연화 화주의 시주로 오층석탑을 봉안했다. 1976년에는 미륵불상을 봉안하였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중앙로 197
원각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금남로 번화가에 위치한 대한 불교조계종 송광사의 광주 포교당이다. 현대에 중창된 대웅전, 사회활동장인 원각루, 그리고 요사채 두 동이 있다. 원각사 앞으로는 쉴 새 없이 자동차와 사람들이 오가며, 절에도 많은 사람이 참배하고 많은 모임과 행사를 통해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불일 서점에서 불교용품을 직접 팔고 있어 불교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법회에는 지장 법회, 관음 법회, 초사흘 법회, 합창단 법회, 어린이 법회, 중고등학생 법회, 청년회법회, 신도회법회, 거사림법회 등이 있고, 복지시설을 찾아 선행하는 청년회와 선우회, 그리고 음악회를 통해 선행하는 울림이라는 신행단체도 운영되고 있다. 문화행사도 요가, 사군자 법회 등 60여 회의 다양한 법회가 있다. 복혜쌍수의 도량 원각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개설되어 있고, 격월로 소식지도 발간하고 있어 말 그대로 완벽한 포교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26-09-11
충청북도 제천시 의병대로 118 (남천동)
원각사[圓覺寺]는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에 자리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원각사는 사찰의 이름처럼 깨달음을 찾는 곳이다. 대로변에 위치하지만 높은 축대가 더없는 가람의 테두리가 되며, 아래로 보이는 독송정산과 교동시가지는 관음보살의 자비를 받으려는 중생들의 터전이 된다. 불교의 불모지인 제천 지역에 관음의 터전이 생긴 것은 지암당 영지스님의 불심이 컸던 결과이다. 원각사는 1936년에 영하[永河]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남천동의 전통사찰로 터를 마련하였으며, 곧 이어서 혜봉스님이 주지로 상주하며 가람을 정비하였다. 그 뒤 지암 영지스님이 주석하면서, 1988년 적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가람을 확장하였는데, 현재도 1960년대 건립한 관음전을 비롯해서 승방, 그리고 일주문 등이 전해진다. 또, 1960년대 원각사에 오신 영지스님은 제천불교연합회는 물론 제천불교대학을 결성하여 포교에 앞장서고, 또한 태고종 총무원장으로서도 활발한 활동과 사회사업을 일으켰다.
2025-09-02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선주로9길 7-15
원각사는 구미 비봉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비봉산의 중심에는 형제봉이 있고, 형제봉의 좌측은 미타산이며 우측은 비봉산이다. 1931년 일제시대 당시 도리사의 주지였던 하정광 스님이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개축하여 민족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설립한 사찰이다. 처음에는 사찰이라는 허가가 되지 않아 선산포교당으로 시작하였으며 후에 원각사가 되었다. 원각사 주 전각인 원통전에 봉안한 목조 보살좌상은 조선시대인 1649년에 조성한 유서 깊은 불상이다. 창건 당시 구미시 무을면의 수다사에서 이운하여 봉안하였다. 보관이 화려하고 조각이 뛰어나며, 1999년 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97년 주지 대혜스님이 요사채 4동, 석축, 진입로 공사, 마당 확장 성역화 중창불사를 하여 지금에 이른다. 절은 산 밑에 위치하지만 마을과 가까이에 있어 법회나 참배가 쉽고 주민들이 저녁 산책을 나와 잠깐이라도 절 마당을 걸어볼 수가 있다.
2025-11-11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헐티로 1068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위치한 운흥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솟구친 최정산 중턱에 자리하며, 아래로는 대구의 상수원인 가창댐을 굽어보고 주위는 울창한 숲이 드리워져 있다. 운흥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 때인 832년에 운수화상에 의해 동림사로 개산하여 1620년 조선 광해군 12년 무념스님이 중수하여 수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751년 조선 영조 27년 치화대사가 지금의 위치인 최정산 정산 인근에 옮겨 중수하면서 운흥사로 부르게 되었다. 1760년 무렵에 간행한 여지도서에 운흥사가 실려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송운대사가 이곳에서 승병 300여 명을 지휘하여 왜적과 싸웠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요사채 5동이 있다.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특히 대웅전 안에는 1653년(효종 4)에 조각승 도우(道祐)가 조성한 대구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14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대구광역시 전통사찰이다.
2024-10-17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용길 27-4
운용사는 청주 삼불산 아래에 위치한 사찰이다. 현재의 사찰에서 1km가량 떨어진 절터골에서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된 것이 인연이 되어 운용사를 건립했다. 작은 암자와 같은 규모로 사찰이 경영되고 있어,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속에 아담하게 마련된 곳이라 찾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얼굴에 마모가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부분은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 불상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된 절터골에서는 아직까지도 세월이 오래된 듯한 기와조각이 발견되나, 아직까지 그곳에 어떤 절이 경영되었고, 언제 창건되어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운용사 소장 백의관음보살 후불도는 19세기말∼20세기 전반 마곡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한 화승 금호당 약효가 1904년에 조성한 불화로 관음보살을 외호 하는 보살들과 제자들, 사천왕을 표현한 작품이다. 본래 보살사 자운암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일체화하는 교리를 표현한 새로운 형태이고 백의관음 머리 위로 흩날리는 듯한 천의 표현은 약효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이다.
2024-12-10
경상북도 문경시 불정길 149-123
운암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경북 문경시 불정동 재악산 정상 부근에 있다. 678년(신라 문무왕 17)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된 것을 1658년(효종 9) 영준이 복원하였다. 이후 1666년(현종 6) 해특이 극락전을 중건하였으며, 1785년(정조 9) 인월이 중창하고, 1972년부터 4년간 대대적인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건물로는 극락전과 산신각, 삼성각, 안양문,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높이 81㎝의 정월당 부도와 높이 107㎝의 정봉당 부도가 전한다. 모두 석종형으로 조선 후기 작품이다. 마을 초입에서 1.3㎞, 먼 거리는 아니지만 재악산을 조금은 가파롭게 올라 거의 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운암사에 들어서면 약수물을 마셔야 한다. 재악산이 약수산이라고도 불릴 만큼 이곳의 물은 효험있고 맛있기로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암사 초입, 불정(佛井)이라는 마을의 이름 역시 좋은 물 때문에 생겨났다. 불정동에 들어서면 마을의 보호수인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 앞에 마을 지명 유래비가 서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거신이라는 사람의 집 근처 조그마한 암자에서 수도를 하던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암자의 우물물이 마르자 이상하게 여겨 근처를 살펴보다가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샘을 발견하고 샘 안을 들여다보니 돌부처가 한가운데 앉아있는지라 돌부처를 암자로 옮겨 봉안하고 그 후부터 이 샘을 부처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024-10-21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
덕유산 원통사는 무주군 남덕유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말사이다. 원통사가 있는 덕유산 중턱에는 무룡봉에서 뻗어 내린 준령이 신령스럽고 영험한 길지를 이루고 있고 사계절 비경을 연출하며 언제나 맑은 물이 넘쳐난다. 1698(숙종 24)년에 탄언, 도영, 혜왕, 일학 스님이 중창하고 범종 주조와 불상을 보수하는 등의 불사를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문태서, 김동신, 신명선, 박춘실 등의 의병장들이 원통사를 구국 항쟁의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였던 의미 깊은 호국 도량이다. 애석하게도 1949년 여순사건의 병화로 당우가 전소되어 폐허가 되게 되었다. 그러나 1975년 정공대종사가 중창을 발원하여 손수 법당을 건립하면서 복원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법당, 선방, 산신각,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원통사지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