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1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로31길 10-3 청량사
청량사는 천장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비구니 도량이다. 예로부터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한 돌꽂이 승방이 바로 이곳이다. 원래 청량사와 돌꽂이 승방은 별개의 절이었으나 1895년 일제의 조선 강점 흉계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황후의 능인 홍릉이 조성되자 홍릉 자리에 있던 청량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고, 때마침 돌꽂이 승방도 사세가 기울어 두 절이 병합되었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는 도성 사람들이 자주 몰려와 쉬던 휴양지였고 일제강점기에 나라가 어려웠을 때는 많은 애국지사, 고승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불교 운동에 앞장선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1939년 7월 12일에 한용운 선생의 회갑연이 이곳에서 조촐하게 열렸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불교계 학자인 박한영도 이 절에서 기거했으며 대방에 걸린 청량사 현판 글씨는 박한영의 글씨로 전해진다. 사찰 대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나타나는 관음전 뒤로는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청량사에서는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있다. 청량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보전은 지붕 위 중앙에 소탑 같은 보주가 박혀있다. 비탈에 세워진 사찰의 지세 때문인지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복층구조처럼 지어져 있다. 작지만 관음전, 무량수전, 대웅전, 대방채, 설선당, 적묵당 등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2025-04-07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도로 29
부산 명지동에 황금 닭이 알을 품는 듯 평안히 둥지를 이루는 금계포란형의 형상을 하는 곳에 청량사가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 중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청량사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할머니를 모신 사당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청량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석가모니 후불탱화 뒷면에 상세히 기록된 내용을 미루어 1917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산각이 있던 자리에 인근 김해의 불모산 장유암 주지 금도스님이 교당을 세우고 3년 후인 1920년 석가모니 후불탱을 모셨다고 한다. 청량사는 초창기 장유암 교당으로 불리다가 이후 연호사로 개칭되었는데, 이는 홍수 때마다 일대가 물에 잠기어도 유독 사찰만은 홀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연꽃이 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한국불교의 한 기둥이었던 홍경선사가 주석하면서 홍수 피해가 많은 장마철에 맑은 날씨를 염원하는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담아 1961년 범어사 말사로 등록하면서 청량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2025-09-18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3길 213
청계사는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절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아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신경준(1712~1781)이 편찬한 가람고(伽藍考)에 절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중기나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95년(고종 32) 화재로 소실된 것을 바로 복원하였다. 1907년 고종의 비밀조서를 받고 독립운동가 노병대가 이 절에서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다 체포되어 복역하던 중 단식으로 옥사하였다고 전해진다. 1924년 한 비구니가 중창하면서 인근 남장사에서 불상을 모셔왔으며 청계사의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가 있다. 특별한 유물은 전해지지 않으나 청계사의 진정한 가치는 산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라는 것이다. 맑은 계곡을 끼고 터를 잡은 청계사의 수려한 산세와 풍광으로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뒤로는 상주 사벌 출신인 견훤이 대궐터로 보았다는 대궐터 산과 옛 산성 축대 흔적이 남아 있어 이를 견훤산성이라 부른다.
2025-10-31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천장사길 100
천장사는 연암산(燕岩山)에 숨어있는 작은 절집이다. ‘천장(天藏)’이란 ‘하늘 속에 감춘다’는 뜻으로서 장자가 물가에 매어둔 배를 온전히 숨기려면 산이나 들이 아닌 배 그곳에 숨겨야 했던 말과 통하고 있다. 이처럼 천장사는 제비바위가 있는 산 중턱에 너무도 깊이 숨어 있어 하늘도 땅도 감추어진 곳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제비바위의 가파른 봉오리로 둘러싸인 좁은 골짜기에 조성된 천장사는 이러한 산 계곡 간에 세워진 너무도 작은 절집이지만 이 집을 거쳐 간 큰 스님들로 인하여 그 어느 곳보다 큰 사찰이다. 이 천장사에는 근세에 이 땅에 선풍(禪風)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경허스님이 일 년 석 달 동안 보림수행을 한 곳이다. 이후 송만공 대사가 이곳에서 불법을 계승한 사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몇 해전 큰 산불로 인해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다 불타버려 제비바위에서 사찰 쪽을 바라보면 죽은 나무들이 둘러싼 가운데 오로지 천장사만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어 불법의 오묘함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다시 제비바위에서 눈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고북저수지가 눈에 들어오고 날씨 맑은 날에는 서해 앞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한 천장사는 이처럼 그 규모는 매우 작지만 선사들의 높은 뜻을 간직하고 있는 참선도량으로서, 오늘도 햇빛 잘 드는 사찰 앞마당에 서면 큰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바람 소리를 헤치고 들리는 듯하다. * 연혁 * 천장사의 연혁을 알려 줄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형편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 없이 정확한 연혁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서산시청 자료인 사찰 현황을 토대로 그 역사를 재음미해 볼 필요는 있다. 즉 위 자료에서 천장사는 “서기 633년에 백제의 담화(曇和) 선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말에는 경허선사가 수도하고 송만공대사가 이곳에서 득도한 고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먼저 창건주인 담화선사가 누구인지 밝히기가 어렵다. 참고로 삼국사기에서 거의 같은 시대의 신라에 담화라는 스님이 있었으며, 그는 620년(신라 진평왕 42년)에 안흥법사가 황룡사에서 머물면서 번역한 경전인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받아 썼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천장사가 창건되었다고 한 633년의 다음 해인 634년(백제 무왕 35년) 2월에는 백제 흥왕사가 낙성되었고, 신라에서는 분황사가 낙성되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의 법당 앞에 있는 7층석탑(문화재자료)이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적 특징을 어느 정도 보여 주고 있어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천장사가 조그만 암자로서 석탑을 갖춘 채 고려시대 언제인가부터는 현재의 자리에 창건되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오랜 세월 동안의 연혁에 대해서는 유물이나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밝히기 어렵다. 다만 조선말기 이래로 선풍을 널리 떨친 고승인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 스님이 천장사에 머물면서 수도하는 한편 후학을 지도했다. 또 이곳에서는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스님이 경허 스님의 제자로 이 절에서 출가하여 불법을 계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시기의 유물로는 1896년(건양원년) 5월에 조성된 신중탱이 남아 있다. 한편 이 절의 연혁과는 직접 연관이 없지만 관음사후불탱으로 조성된 1788년(정조 12년) 작 불화가 법당 불단 뒤 후불탱으로 걸려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2025-04-07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528-111 (노형동)
아흔아홉 골의 수려한 풍광 속에 들어앉은 천왕사는 한라산 어승생 동쪽에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흔아홉 골 중 하나인 금봉곡 아래 위치한 사찰이다. 1955년 천왕사 근처 토굴에서 참선수행하던 비룡스님에 의해 수영산 선원이란 명칭으로 처음 창건되었다. 비록 건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1994년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바로 뒤로는 용바위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마당 왼쪽 자락에 기세 좋게 곧게 뻗은 바위가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사찰 옆의 냇물을 따라 올라가면 한라산의 유일한 폭포라는 선녀 폭포가 나오고, 사찰 입구에는 약수터가 있다. 특히 가을에 기암절벽 아래 물드는 단풍이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2026-03-19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216-111
예부터 영남 지방의 명산이라 불리는 팔공산에 위치한 천성암은 통일 신라 시대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창건 시기에 대한 문헌이나 유물은 유존하지 않는다. 천성암에는 사리굴 전설이 전해지는데 창건 당시 천성암에는 하루에 한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이 나오는 바위 굴이 있었다고 한다. 주지는 매일 같이 나오는 쌀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이로써 큰 불편함 없이 지냈다고 한다. 이후 주지가 바뀌었는데 새로 온 주지는 매일 한 끼 정도의 쌀만 나오는 데 대하여 욕심을 품고 하루는 큰 막대기로 바위 구멍을 팠다. 그러자 구멍 속에서 쌀 대신 구정물이 나왔다고 한다. 현재 그 자리에는 용왕당이 있다. 천성암에 대한 기록은 6·25전쟁 직후 처음 확인되었으며 주불전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자광전, 요사 등의 전각과 선묘정이라고 칭해지는 우물, 의상대사가 심었다고 전하는 천도복숭아나무, 참선바위에 있는 작은 규모의 칠층탑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기와지붕 구조로 아미타불상을 주존불로 지장보살상과 관음보살상을 협시로 봉안하고 있다. 극락전에는 닫집이 따로 없고 후불탱화 3점이 봉안되어 있다. 산령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인 맞배 기와지붕 구조로,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있는 신중탱화 등 2점의 탱화가 조성되어 있다. 이 외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요사와 패널로 건축한 요사 2동이 있다. 의상대사가 식수로 쓰던 선묘정은 겨울에도 도롱뇽이 서식한다고 한다.
2025-09-09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꿀덩이길 93
천성사는 문수산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근세에 창건된 사찰이어서 봉화지역의 축서사나 각화사에 비하여 규모가 작다. 하지만 경내의 무량수전에는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봉안되어 경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또한 삼층석탑이 있다. 특히 이곳을 찾는 불자들의 다양한 기도 영험이 알려지면서 먼 곳에서부터 병을 치유하기 위한 기도나 학업성취를 위해 공부를 하러 절을 찾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주지 경운스님에 따르면 은사인 완휴당스님의 스승이셨던 박대은스님의 은사가 환암스님이었다고 하며 그 계보를 잇고 있는 사찰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천성사는 근대에 창건된 사찰로 1952년 이화성스님이 세운 절이다. 2001년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산신각 앞의 당우인 무량수전의 지붕이 풍우로 훼손되자 이에 주지인 경운스님이 불사를 시작 하여 현재의 무량수전을 신축하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무량수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입상과 경내의 삼층석탑도 이화성 스님이 주지로 주석할 당시 봉화군내의 절터에서 이건 해 온 것이다.
2025-05-12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45 (별내동)
천보사는 남양주 불암산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에 관한 기록은 ‘문종실록’에 ‘문종 1년 3월 병진일에 의정부가 원유의 혁파를 건의’하는 내용의 상소문에서 불암산을 ‘천보사 인근의 산’이라 칭하고 있다. 그 후 일제의 침탈로 황폐해졌으나 1955년 이후 동훈 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처바위라는 뜻의 불암산은 주봉이 마치 송낙(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불암산의 다른 이름이 천보산이다. 천보산이자 불암산이기도 한 산에 불암사와 천보사가 모두 있는데, 천보사는 불암사에서 서남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비탈진 등산로라서 오르기에 쉽지는 않다. 울창한 숲을 빠져나와 천보사 도량에 닿으면 남양주 별내 신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범종루 앞에서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오르면 눈앞에 거대한 자연 암벽이 나타나고 암벽 앞에 천보사 대웅전이 오롯하게 자리하는데 이 모습은 방문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천보사는 예로부터 천연보궁으로 불리며 기도 영험이 있는 사찰로 유명했다. 암벽 아래 쌓은 석축에는 미륵불좌상과 오층석탑이 올라가 있다. 오층석탑은 천보사의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 양식을 띄고 있다. 천보사가 있는 불암산은 해발 508m로 주요 등산로만 10개에 달하고 등산로도 평탄한 편이라 초보 등산가들도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경치가 수려하여 절에 가는 길이라면 산행도 함께 추천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영암읍 천황사로 280-82
천황사는 월출산(809m) 사자봉 아래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법화종 사찰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에 관련된 기록은 없지만, 절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을 통해 추정하는 것이다. 1995년 12월에서 1996년 1월에 걸친 목탑지 발굴 때 ‘사자사(獅子寺)’가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천황사의 전신인 사자사가 이곳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고려시대의 연혁은 알 수 없지만 목탑지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 법통을 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절에서 ‘순치병술년(順治丙戌年)’명문기와, 곧 1646년(인조 24)에 해당되는 연도가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발견되어 그 해에 중창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영조 재위(1725~1776) 시절에 다시 중창되었는데 이 무렵 한 때 ‘칠산사’로 개칭되었다고 하며, 그 뒤 1906년에 중창되면서 다시 현재의 절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47년에는 영암군 무궁청년단에서 지어 수련장으로 쓰던 건물을 절에 기증하여 법당으로 만들었으며, 1953년에 법당 기와 불사가 있었다. 문헌에 의하면 월출산에는 50여 개 이상의 사암(寺庵)의 이름이 전하며, 속전으로는 99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월출산의 사자봉(해발 700m)과 장군봉이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한 천황사는 사자봉의 웅대한 흐름을 견제하는 자리에 서있는 의미 깊은 사찰이다. 사자봉 정상에서 내려온 협곡을 따라 옆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면적이 좁아 자연환경과 지형에 순응하여 대지를 조성하고 소규모 산지사찰이 설립되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약간 오르면 다소 급한 경사지에 3단의 대지가 있는데 그 맨 앞의 대지에 천황사가 있고 다른 단 위에는 건물지와 탑지가 좌, 우에 있다.
2025-09-10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92-2 (도봉동)
천축사는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전통사찰(노원 제9-1호)이다. 통일신라시대 673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절을 창건하고 물이 너무 깨끗하여 옥천암이라고 불렀다. 고려시대 인도 승려 지공이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지금의 인도)의 영축산과 비슷하다.”하였다고 한다. 그 후 1398년 태조 이성계가 이곳 옥천암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태조 7년에 절을 중창하고 하늘 천(天) 나라이름 축(竺)을 써서 천축사라는 편액을 내렸다. ‘항상 부처님이 상주해 계시는 평안한 곳’을 뜻한다. 천축사는 왕실에서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1474년 성종 5년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 문정왕후가 화류용상(제366호, 불교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을 하사하여 불단으로 사용하였다. 1812년 순조 12년에 경학이 중창한 왕실 기도도량으로 1959년에 중수하여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중창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천축사는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무문관을 중수하여 청정수행 가풍을 이어온 근본 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