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청하면 청공로 185-80
청운사는 19세기에 보천 스님이 단칸의 초가집을 짓고 주석한 것에서 시작된 이후 이곳의 샘물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고 한다. 1925년 3월 10일 법당을 짓고 태고종에 속하였으며, 1927년 승려 월인이 초가 법당을 3칸으로 늘리고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요사를 지었다. 1931년 초가 법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절을 중창했는데, 이 법당이 지금의 관음전이다. 1959년 현재의 염불원 오른쪽에 있는 요사를 새로 지었고, 1970년 이전의 요사를 헐고 옛 만경현 동헌에 있던 건물을 매입해 옮겨와 대웅전을 삼았다고 한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대혜보각선사서는 중국 남송의 고승 보각선사가 40여 년간 설법한 내용들을 모아 발간한 것으로써 고려 우왕 13년(1387)에 이색이 발문을 붙여 편찬하고 1531년에 다시 간행한 것이다. 청운사는 하소백련축제로 유명하다. 하소백련지는 다랑이 논처럼 위에서부터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는데 하소는 연못의 모양이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25-10-30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가느실길 128-23
세종시 청안사는 1900년경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현재의 청안사에서 약 50m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간 경사면에 위치한 옛 절터에서 조선시대 중기의 기와편과 백자편이 출토된 바 있어서 적어도 이 무렵에는 사찰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백제 말에 창건된 북혈사로 추정되기도 하며 일설에는 비암사에 속한 암자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또한 현 사찰지에 신라시대의 불당이 있었다고 전해기기도 하고 주변지명이 절골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1900년경 스님들이 살기 시작하여 1950년경 곽재순씨가 요사터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1987년 법진스님이 법당을 현재 위치에 개축하였다. 청안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불교태고종 성불사(成佛寺)였다. 그러나 2001년 3월부터 주지로 부임한 청현(靑峴)스님에 의해 2002년에 현재의 이름인 청안사(淸眼寺)로 개명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으로 종단을 변경하였다.
2025-03-19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67-11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에 있는 청송포교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인 은해사의 청송지역 포교당이다. 원래 경허선사가 주석했던 자리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1936년에 청송 읍내의 신도들이 마음을 모아 세운 사찰이며, 창건 이후 별다른 사적은 전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딛고 청송 지역민의 포교를 위해 군법회며 불자들을 모아 불심을 펼치는 데 노력하는 등 지역주민을 위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청송포교당의 시설로는 대웅전, 포교당, 공덕비가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신도 수는 200여 명 가량이다. 1990년의 조사에서도 신도 수가 200여 명이었는데, 청송군의 기타 종교와 달리 현재까지 그 신도 수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청송 지역 포교당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2025-03-17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청정로 116
청주 구룡산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 청주의 초입은 여름이면 동굴 속을 떠올리게 하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로 시작된다. 전국의 고속도로 진입로 중 가장 아름답고, 운치가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청주 청룡사는 이 가로수길 초입 수의동에 자리한다. 수의동은 예로부터 절의를 지킨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실제 청룡사 인근에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로 동래성을 끝까지 지키다 순국한 송상현의 묘소와 위패를 모신 충렬사가 있기도 하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산사를 품고 있는 구룡산과 연관이 있는데 구룡산의 형세가 아홉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청룡사는 이 아홉 마리 용 가운데 청룡을 나타내는 산줄기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명당으로 알려진 청룡사 인근에는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많은 절터가 남아 있으며, 청룡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에도 신라 시대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청룡사는 1925년 청신녀 박문수행이 수숫대에 흙을 발라 띠집을 짓고 구도행을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이때 향불을 피우며 예불을 올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불상이 남아 있는데, 주불인 석가여래 좌상과 그 옆에 있는 조그마한 관음보살상이다. 이 두 불상은 흙으로 만든 토불이다. 토불은 흙부처, 또는 소조불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 만든 불상을 말한다. 청룡사의 석가모니 불상은 흙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이쪽저쪽이 둥글둥글하다. 금칠을 입혔지만 투박한 조성 수법으로 인해 잘 다듬어지지 않은 흙의 표면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정감이 간다.
2026-03-13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오상리
청룡사는 경상북도 비봉산 중턱에 있는 작은 사찰로 대한불교법화종에 소속되어 있다. 1674년(현종 14)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중창과 관련된 기록은 인근 도남서원에 보관되어 있다. 사찰은 주 전각인 극락전과 산신각·요사·종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단청이 되어 있지 않다. 내부에는 목조보살상이 2층 누각의 화려한 보궁 안에 모셔져 있는데 높은 보관을 쓰고 한 손에 보주를 든 채 금칠한 사자상 위의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형태로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보살상 왼쪽 불단에는 경주 옥석으로 제작했다는 높이 40㎝의 지장보살좌상이 있다. 머리에 모자를 쓴 이른바 피모지장에 천의를 걸친 양식으로 보아 처음 조성했을 때에는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다른 손에 보주를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극락전 앞으로는 지름 130㎝가 넘는 석조 좌대 1점과 이와 비슷한 크기의 맷돌 1점이 있는데 이 유물들은 오래전에 청룡사가 많은 대중들의 수행처였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200m 거리에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청룡사전망대가 있으며 낙동강 문학관 쪽 회상나루 관광지에 주차하고 청룡사까지는 1.5㎞로 왕복 1시간 소요된다.
2025-04-04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충주시 소태면의 청계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 시대의 창건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한 도승이 이 근처를 지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급히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하는데, 공중에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땅에 떨어뜨렸다.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다 청계산 위로 올라갔으며 여의주는 큰 빛을 내다가 사라지고 용도 함께 사라졌으며 비도 멈추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도승이 산세를 살펴보았고 그곳이 비룡상천형(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의 길지임을 깨달았다. 용의 힘이 꼬리에 있다는 것을 상기한 그 도승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청룡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청룡사는 옛 터의 북쪽에 있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가 있다. 옛 절터에는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등과 같은 역사 문화재가 있다.
2025-09-03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망산길 65 (숭인동)
청룡사(靑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다. 922년에 도선(道詵) 국사의 유언에 따라 태조 왕건이 어명을 내려 창건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하는 산등에 지었다고 하여 사호를 청룡사라 하였다. 1036년에 만선 비구니스님이 퇴락한 절을 창건 이후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하여 10차의 중창 역사를 갖고 있다. 1923년 다시 옛 이름인 청룡사로 불리게 되었고, 1950년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며, 1973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5-10-3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80-122
청룡사는 금산사에서 심원암으로 가는 도중 자리한 절로서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며, 금산사의 부속 암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079년에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혜덕왕사가 금산사를 중창할 당시 모악산 내에 40여 암자를 세웠는데, 이때 청룡사의 전신인 용장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1954년에 승려 용봉이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후 용장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청룡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건물은 1974년에 세운 것이다. 관음전에 모셔진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655년에 왕과 왕비, 세자의 무병장수를 빌기 위해 승려 천승이 나무로 만든 것이다. 원래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사에 있었으나 1950년대에 화재를 피해 이곳 청룡사로 옮겼다고 한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조각 기법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양상이 돋보이며 작은 불상이지만, 상호 및 손가락의 표현 기법이 매우 섬세하여 보존의 가치가 뛰어나며, 인자하고 원만한 얼굴이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2026-06-12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청련사길 99
영취산의 북녘 기슭에 자리한 청련사는 영취산에 있던 대흥사(大興寺)의 작은 암자로 세워졌으며, 대흥사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암(東庵)이라 불려 왔다. 대흥사는 청련사뿐만 아니라 인근의 극락암(極樂庵), 삼성암(三聖庵)의 기록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일대의 많은 암자들을 거느릴 만큼 사격이 높았던 듯하다. 따라서 청련사의 중창주 덕암(德庵) 스님 또한 사라져 버린 대흥사를 아쉬워하며 퇴락한 암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목적으로 법당을 창건했을 것이다. 현재 청련사에 남아 있는 현판 자료에는 하나같이 청련암 앞에 ‘영산 대흥사’를 붙이고 있어, 대흥사는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청련암이 그 법등을 잇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중에 전하는 1842년(헌종 8)의 중창([重創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어 청련사가 자리한 자연적 입지를 짐작게 한다. 좌우에 둘러 있는 봉우리들이 높이 솟아 있어 마치 많은 별들이 북두성을 향하는 것과 같고, 앞뒤로 흐르는 골짜기 시내가 잔잔하여 수많은 옥가루가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 듯하다. 이는 반드시 하늘이 아까워 숨겨놓은 곳이며 땅이 내보이기 인색하게 숨겨놓은 명승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가람을 세워 법당을 창건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2025-11-06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일로 335 청련암
먼 옛날 고려의 창건주 태조가 후백제를 정복하고 개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사찰을 세웠다. 산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를 보고는 필히 부처가 가르침을 주는 교시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리고 그 산을 광교산이라 하였는데, 이후 산 이름이 각지에 알려지면서 영험이 생겨났고, 이에 많은 스님들과 선남선녀들이 산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결국 산골짜기마다 암자가 들어섰고, 모두 89개소에 이르는 도량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낱 전설로 전해 내려 와 현재 그 자취를 찾을 순 없지만, 현재 광교산에는 그 뜻을 이은 부처님의 진실 도량 청련암이 조선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수원의 중심지로서 시가지가 형성되었지만, 그 길의 끝 광교산 아래에는 여전히 여법한 도량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아담한 비구니 사찰 청련암이 있다. 한때 퇴락하여 빈터만이 있던 것을 창건주 청련 스님이 지었다고 하여 청련암이라고 칭해졌으며, 이후 조선 후기 세도가인 흥선대원군의 지원과 영친왕 이은의 어머니 귀빈 엄 씨의 기도처로서 현재 가람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귀빈의 화주와 보살임 씨의 도움으로 수월 도량으로서 그 맥을 이어갔으며, 나한 도량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손수 실천하는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