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0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로 72 (은행동)
성남시 중원구 은행 1동에 양묘장과 용도 폐기된 배수지를 이용하여 재 활용 공간으로 조성된 식물원이다. 식물원엔 다양한 식물과 야생화, 곤충류들이 서식하고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자연교육 학습장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친숙한 자연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양한 식물들 앞에는 친절하게 설명문을 붙여뒀고 연못 주변에 정자를 설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게 배려했다. 식물원 주변의 탐방로나 산책길은 평탄하고 쉬운 길이 있는가 하면 오르막도 있어 선택할 수 있다.
2026-03-11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태허정로 267-54
율봄농업예술원(율봄식물원)은 농촌예술테마농원이다. 농업을 재배, 생산뿐만이 아닌 시각적 관점으로 아름답게 가꾸고 작품화시켜 볼거리와 쉼터를 제공하는 농업 관광 서비스 공간이다. 창정 자연 속에서의 편안한 휴식과 함께 정직하게 재배된 신성한 농산물을 이용한 계절별 농촌체험도 즐길 수 있다.
2026-03-12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속말1길 61-61
태안 흥주사는 태안군 태안읍 백화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득히 먼 옛날 먼 길을 가던 노승이 백화산 산기슭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꿈인 듯 하얀 산신령님이 나타나 노승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가리키며 이곳을 장차 부처님이 상주할 자리이니 지팡이로 이곳에 표시를 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노승은 꿈에 산신령님이 가리킨 지팡이를 그곳에 꽂아두고 불철주야 기도를 하니 지팡이에서 은행나무 잎이 피기 시작하였고 노승은 더욱더 기도에 정념 하니 또다시 산신령이 나타나 이 나무에 자식 없는 자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게 되고 태어나 자식들이 부귀영화를 얻어 부처님을 모실 것이니라 하며 사라졌다. 그 후 몇십 년 후 산신령님 말씀대로 그 자손들에 의해 사찰이 지어졌고 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탐스런 은행과 항상 푸르름처럼 부처님의 손길이 자손만대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노승은 절의 이름을 흥주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흥주사 만세루 앞에 90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외줄기로 되어 있고 그 위부터 몇 개의 줄기가 곧게 하늘을 향해 갈라져 있다. 은행나무의 주간부가 외형적 손상 없이 완전하고 수피도 깨끗하며, 생육상태가 양호할 뿐 만 아니라 나무의 형태도 아름다워 자연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2025-07-01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당전로 345-4
흥왕사는 신륵사 하구로 흘러내리는 금당천과 중암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완장천 사이에 자리한 고려시대 사찰로 나지막한 야산에 그 터를 잡고 있다. 고려 초 소달[蘇達]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고려 말 혜근(1351∼1374)이 세웠다고도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흥왕사는 여주의 명찰 고달사와는 형제와 같은 절로 그 옛날 소달과 고달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고달과 소달은 형제지간으로 각기 뜻을 품어 부처님 전에 그 몸을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각기 뜻을 품은 바가 달라 고달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절을 세웠으며, 소달은 사찰을 진리의 도량으로 생각하며 오래도록 중생을 교화하는 절을 세웠다. 한때 고달이 세운 고달사는 고려의 명문사찰로 명성을 떨쳤지만 일찍 폐사되었고, 소달이 세운 상왕사는 조용히 은둔하며 그 법을 이어나가 아직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소달산 흥왕사는 자그마한 암자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진리의 도량 모습을 품고 있다.
2025-09-19
경상남도 김해시 전하로 269-74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국을 하는 김해 임호산(林虎山) 꼭대기 가파른 자리에 위치한 가야불교의 성지 흥부암(興府庵)은 가락국의 수로왕 때 장유화상(長遊和尙)이 도성의 흥성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신비로운 땅 ‘가락국’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예로부터 그 형상이 거북, 용, 호랑이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해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곳에서 수로왕 이후 사라진 훌륭한 임금이 다시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러한 기운을 간직한 임호산은 유민 산유민산, 가조산, 호구산, 안민 산안민산, 봉명산, 임오산임어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임호산(林虎山)은 이름 그대로 생긴 모양이 호랑이 머리와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옛 가야국의 중심지인 금관가야의 중앙에 위치한 흥부암은 허황후 오빠인 장유화상이 서기 48년에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다.
2025-11-0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승반길 103 (흥사동)
흥복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온 보덕이 창건하여 승가사라 하였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나 현재로서는 알 수 없고,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절은 완전히 불타버려 절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1625년(인조 3) 김제에 살던 흥복 처사가 부처님의 감응을 받아 이 절을 기원도량으로 삼아 극락전을 중건하면서 절의 이름을 흥복사라 불렀다. 그 뒤 절은 다시 퇴락하였는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1943년 법운 스님이 극락전과 관음전 등을 중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54년 불교정화운동 때는 교단의 행정본부가 되었으며, 1961년에는 월주 스님이 금산사와 흥복사의 주지를 겸임하면서 전라북도 지역 불교정화운동의 핵심역할을 했다. 1976-1979년에 걸쳐서 대대적 중창 불사가 거행되어 절의 면모가 일신되었다. 절에는 대웅전을 비롯해서 미타전, 미륵전, 삼성각, 사천왕전, 정혜원(요사), 요사 및 수각인 불유각 등 여러 채의 건물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수령 600년 가량의 신단수와 설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장대길 102
순천 시내에 위치한 흥륜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 소속 사찰로 시민들의 휴식처인 죽도봉공원의 남쪽 사면에 위치한다. 과거 1984년 이전까지 국궁 활터로 사용되었던 곳에 새로이 건물을 이전하여 법당을 만들어 포교당을 조성했다. 절에서 전하기로는 조선시대 선조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활터와 화엄사, 송광사, 선암사 3대 사찰의 대중과 승군의 최초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창건 및 연혁에 관한 기록은 없다. 해방 직후 대처승들이 이곳을 매도하여 약 20년 전까지 활터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활터가 북쪽으로 이전함에 따라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2026-06-3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동강면 고흥로 4603-53
흥덕사는 고흥의 관문이라 할 첨산 아래에 위치해 있고 1929년에 기불대사가 초가로 지어 석로암이라 하다가 1962년 첨산사로 개칭하고 1973년에 확장하면서 극락전을 신축하고 사명을 흥덕사라 했다. 정면 3칸 팔작지붕의 극락전, 산신각, 2층 누각 형태의 종각, 요사, 해탈문, 강당 등이 있다. 절이 자리한 첨산은 이 지역의 명산으로서, 18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북방 중턱에 낙안사, 남방 중턱에 흥양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흥덕사가 창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낙안사에 있던 미륵불이 절 부근까지 굴러 내려왔다는 말이 전한다. 흥덕사가 자리한 첨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어 지루하지 않으며 능선에서는 넓은 들판과 멀리 여자만을 조망할 수 있다.
2025-09-09
경기도 의정부시 전좌로155번길 262 (호원동)
사패산 산중에 위치한 회룡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태종 이방원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 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 제7호이며, 비구니 절이다. 회룡사는 흔히 도봉산 회룡사로 불리지만 정확히는 도봉산 한쪽 끝 봉우리인 사패산에 위치한 절로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회룡역 1번 출구에서 나와 회룡탐방지원센터를 출발점으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당도한다. 회룡사는 681년(통일신라 신문왕1) 의상이 창건하고 법성사(法性寺)라 하였다. 이후 936년(통일신라 경순왕 10) 동진국사가 중창하였고, 1070년(고려 문종 24) 혜거국사가 삼창하였다. 법성사가 회룡사로 불리게 된 것은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인연 때문인데, 첫 번째 유래는 1384년(고려 우왕 10)에 무학대사가 절을 중창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는 무학과 함께 3년간 창업 성취 기도를 올렸는데 태조는 석굴암에서 무학은 무학굴에서 각각 머물렀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병마사가 되어 요청으로 출정가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찾아와 회룡사라 했다 한다. 이와 관련해 이성계가 머물렀다는 석굴암은 회룡사의 부속암자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김구가 상해로 망명하기 전 피신해 은신처로 삼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구는 해방 후 석굴암에 들러 친필을 남겼는데 입구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무학이 머물렀다는 무학굴은 현재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두 번째 설화는 1403년(조선 태종3)에 태조가 함흥차사 끝에 노여움을 풀고 귀경한 뒤, 이 절로 무학을 찾아와 무학이 회란용가(回鸞龍駕)를 기뻐하여 회룡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회룡사 입구 사거리 부근에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상봉지 표지석이 있는데 함흥차사로 꿈쩍도 않던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 환궁길에 오르니 태종이 이곳까지 나와 친히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이 일대의 마을을 전좌(殿坐) 마을이 되었고, 회룡사의 주소지도 전좌로다.조선의 건국 때부터 조선왕실과 깊은 인연을 이어온 회룡사는 1630년(조선 인조8) 비구니 예순이 중건하였고, 1881년(조선 고종 18)에는 최성이, 1938년 비구니 순악이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이후 6·25 전쟁 때 불에 타 크게 손실된 절을 1954년 비구니 도준이 중건하고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회룡사오층석탑과 회룡사석조,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의정부회룡사신중도가 있다. 그 중 6·25 전쟁의 피해로 복원된 석탑과 사찰의 큰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석조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오층석탑은 의상의 사리 1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하나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렵고 조선시대의 것이다. 또 1887년 상국 신씨가 부모를 위해 발원해 제작된 신중도는 당시 남양주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불화승인 경성당 응석의 작품이다.
2024-04-23
경상북도 안동시 수상동
054-840-1004
경북 안동에 위치한 안동병원에서는 건강과 휴식, 관광과 레저를 동시에 경험하여 몸과 마음
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헬스투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전국 8위 규모의 첨단 대형병원인 안동병원의 차별화
된 고품격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텔 그 이상의 편안함, 쾌적함, 편리함, 고급스러움을 간직한 낙동강변의 안동병원 게스트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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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유교문화, 불교문화
등 풍부한 문화유산, 산과 물이 조화로운 쾌적하고 수려한 자연환경, 맛과 건강을 고려한 지혜로운
양반 밥상, 골프, 레프팅, 오솔길, 등산, 바다체험으로 즐거운 레저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어 더욱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