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Km 2024-08-30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나바우길 13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안동한지는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간직된 전통 한지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학생들에게는 학습의 장(場)으로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안동한지는 안동의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안동한지의 특징은 풍산의 풍부한 물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노련한 기술자의 투철한 장인정신이 결부되어 순 한지(純紙)를 전통의 방법으로 생산하여 우수한 지질(紙質)과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주요 생산품목으로는 서예용으로 쓰는 국내 백닥화선지, 일반 화선지, 문 바를 때 쓰는 창호지, 중지, 운용지, 벽지용 피지, 미사라시 운용지, 족자에 배접할 때 쓰는 배접지, 장판지, 책 만들 때 쓰는 책지, 고급 인테리어용으로 쓰는 요철지, 전문 화가가 쓰는 100호, 120호, 한지 공예품 만들 때, 또는 포장지로 쓰는 색한지 등 60여종을 들 수 있다.
19.0Km 2023-08-08
안동 하회마을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만큼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구체적으로 안동을 다 여행하려면 이 코스가 적당할 듯하다. 안동의 한지체험과 탈박물관은 기본이고 사림파 학문의 전당인 병산서원을 거쳐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까지 거치면 완성이다.
19.0Km 2023-08-09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 사람들이 고려 때부터 해온 탈놀이다. 별신굿은 ‘별난 굿’을 뜻하는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5~10년에 한 번씩 큰 굿판을 벌였기에 붙은 이름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화회마을을 둘러보라. 흙과 돌로 반듯하게 쌓아 올린 담장과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 정겨운 초가, 수령 600년에 이르는 삼신목, 강변에 자리한 만송정, 절벽 위에서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부용대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19.1Km 2025-01-2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32
010-3522-1104
경북 안동에 자리한 송계헌은 서원 건축의 백미라고 찬사 받는 병산서원 가까이에 자리한, 소나무로 지은 한옥이다. 전체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어 가족이나 단체 여행객에게 반응이 좋다. 송계헌은 전통한옥 구조와 현대식 시설을 갖춰 편의성을 높였다. 3개 침실 중 방 1개는 침실, 2개는 한실이고, 입식과 좌식이 공존한다. 주방이 있어 요리도 할 수 있다. 주인이 친절하게 안동 지역 곳곳을 안내해 준다.
19.1Km 2025-12-09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의성길안로 1034
소계당은 남정기가 1800년 경에 지었다고 전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너머에 ㅡ자형 사랑채가 남향으로 있고, 그 뒤로 ㄷ자형 안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트인 ㅁ자형이다. 앞쪽에 있는 사랑채는 건물 가운데에 있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은 집안의 남자 웃어른인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큰사랑이고, 오른쪽은 아들이나 손자가 거처하는 작은사랑이다. 큰사랑과 작은사랑의 지붕 모양은 각각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으로 서로 다르다. 지붕이 더 높고 화려한 팔작지붕을 한 곳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는 곳임을 나타낸 것이다. 안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안방, 왼쪽에는 상방과 마루방을 두었다. 안방에는 집안의 안주인이, 상방에는 집안의 여자 웃어른인 할머니가 살고 있다. 소계당은 영남 지방 양반들이 살던 집의 일반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19.3Km 2025-03-06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수변로 108
영주호 용마루 공원은 경북 영주시 평은면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은 용마루 공원 1과 용마루 공원 2로 구분된다. 용마루 공원 1에는 방문자의 집, 전망대, 카페테리아 등이 있으며,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용두교와 용미교라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용마루공원 2가 나온다. 용마루 공원 2에서는 평은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주변에는 영주댐물문화관이 있다.
19.4Km 2025-10-23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지풍로 1975-1
삼귀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영수와 그의 형제들이 어머니 예천 권씨를 위해 1496년(연산군 2)에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가 있는 소산마을은 안동 김씨의 집성촌으로, 김영수는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김삼근의 손자이다. 삼귀정이라는 이름은 정자 왼쪽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 세 개 있는 데서 유래했다. 거북이는 전통적으로 장수를 상징한다. 정자의 이름에서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아들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의 정자 건물은 1947년에 다시 지은 것이며, 사방이 모두 트여 마을을 비롯한 주변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안에 걸린 삼귀정의 현판은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종준이 썼다.
19.5Km 2025-01-16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수변로 13-16
영주 괴헌고택[榮州 槐軒古宅]은 입향조의 8대손이 1779년에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 등이 모인다 하여 잘 산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소쿠리형’(또는 삼태기형) 명형국지[名形局地]의 한 가운데 지은 집으로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사당․사랑채․안채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의 고유영역을 이루며 배치되고 구조양식도 이 위계에 따라 격조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으며, 쪽마루․수납공간․환기창․고창 등이 발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작 년대 미상의 오래된 성주단지가 온전하게 보존․전승되고 있고, 큰 사랑방과 안방의 다락에 지혜롭게 위장해 둔 은밀한 비밀 피신처는 일제강점기 등의 시대상을 읽게 하는 흔치 않은 실례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19.5Km 2025-12-1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豐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서당의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다.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에 가호가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에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니 서애 선생께서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 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중 하나이다. (출처 : 병산서원 홈페이지)
19.5Km 2025-12-23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268
퇴계종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종가이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선생의 13대손 하정 공이 옛 가옥의 규모를 따라 새로 지었다. 퇴계종택은 정침, 정자, 사당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영역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침 영역은 정침과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음 ㅁ자형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배치되어 있으며, 행랑채로 통하는 솟을대문에는 이안도 부인 안동 권씨의 절개를 기리는 정려가 걸려 있다. ‘퇴계선생구택’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대문을 지나면 정자 영역에 도달한다. 정자 영역에는 조선 시대의 문신 권두경(1654~1725)이 숙종 41년(1715)에 이황을 추모하여 지은 추월한수정이 있다. 원래의 정자는 1896년 일제에 의해 불탔고, 1926년에 400여 문중의 성금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재 추월한수정은 수련생을 강의하거나 문중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