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대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백련사(대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백련사(대구)

백련사(대구)

5.5Km    2025-12-02

대구광역시 달서구 중흥로 67

1947년 3월 10일 수원 백씨(백남희 보살님)가 친정 부모님 무덤 옆에 절을 지으면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선몽을 받고 건립하였다. 1986년 3월 황정광 주지 스님이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며 만해 용운, 남전 한규, 도봉 본연, 석두 보택, 성월 일전, 만공 월면, 용성 진종, 초부 적음 스님등이 설립 조사인 선학원 소속 사찰이다. 주변에 관덕정, 앞산해넘이 전망대, 앞산빨래터공원이 있다.

아사다라

5.5Km    2024-05-22

대구광역시 수성구 용학로 116-12

아사다라는 대구 수성못에서 지산동 방향으로 100여 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서 부터 울창한 소나무로 조경이 되어 있으며 맛있는 곳, 가고싶은 곳, 편안한 곳, 여유있는 곳을 지향하는 곳으로 주변 경관이 먹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는 곳이다. 한우숯불구이가 메인이지만 잘 차려진 밥상이 한정식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종업원의 친절도가 탁월한 집이어서 친절 음식점으로 선정된 곳이기도하다. 실외 조경도 아름답지만 실내 분위기도 깔끔하고 정돈된 인테리어로 일반 식사자리나 모임장소 뿐 아니라 특히 상견례 장소로 많이 추천 받고 있는 식당이다. 아사다라는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달서시장

달서시장

5.5Km    2025-10-30

대구광역시 달서구 당산로 27 (본리동)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위치한 달서시장은 1986년에 처음 문을 연 전통시장이다. 달서 종합상가 1차와 2차가 합쳐진 상가건물형으로 이뤄졌다. 시장 입구에는 카트가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장 보기에 나설 수 있다. 시장 내부에는 각종 먹거리, 채소류, 생선류, 육류, 의류, 생활용품 등을 파는 상점이 성업 중이다.

고산골

고산골

5.5Km    2025-03-15

대구광역시 남구 고산3길 95-1

고산골은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앞산에 위치한 곳으로 대구 지역의 오랜 역사가 전해오는 장소이다. 고산골 전망대에 서면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대구 남구 지역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며, 특히 해 질 녘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한 도심의 야경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사진 찍기 녹색명소 조성사업’ 공모사업에 선정된 곳이다. 고산골 일대에는 약수터, 유아숲체험원, 메타세쿼이아숲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망우당공원

망우당공원

5.5Km    2025-03-19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의병장이자 경상도 방어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의 공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공원 안에는 곽재우의 동상이 서 있고, 동상 부근에 그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망우당기념관이 있다. 하얀 성벽 위로 보이는 누각은 영남제일관인데, 조선시대에 축조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80년 이곳에 옮겨 중건한 것이다. 이 지방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조양회관도 이곳에서 들러볼 수 있다. (출처 : 대구트립로드)

대구 고모령비

대구 고모령비

5.5Km    2025-08-14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1 (만촌동)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세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만촌자전거경기장

만촌자전거경기장

5.5Km    2025-08-18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1 (만촌동)

자전거 경기장은 전문 선수 양성과 지역 주민들의 이용을 위하여 1984년에 건립되었다. 경기장은 2012년 대구에서 개최된 제93회 전국체육대회를 대비하여 개보수 공사를 하고 대한체육회에서 공인을 받았으며 2012년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대구광역시 사이클 팀의 연습구장으로 사용되는 동시에 다양한 국내·국제 대회의 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지면적 4만 6972㎡, 건축 연면적은 1,157㎡이며 경기장 트랙은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다. 트랙 내부 주로 연장은 333m, 주로 폭은 9m, 주로 면적은 1만 891㎡이며 1,500개의 좌석에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시설경기장 외에 실외 광장에서 일반인 대상 자전거강좌를 진행하고 풍성한 녹음이 있어 자전거 타기도 좋은 환경이다. 대구광역시 통합예약시스템 홈페이지나 대구광역시 자전거연맹에 전화하여 예약할 수 있으며 야간에는 선수 보호 및 안전 문제로 개방하지 않는다.

만촌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

만촌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

5.5Km    2025-10-30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1 (만촌동)

만촌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은 1992년 체육 동호인, 강습생, 롤러 선수들에게 경기장과 훈련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대구 시민들의 건강한 여가 활동을 권장하고 비인기 종목인 롤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건립되었다. 2008년에는 사이클 경기장을 리모델링하여 국제 규격의 200m 트랙을 설치하였다. 실내 경기장과 야외 경기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면적 2,993㎡에 인라인스케이트와 롤러스케이트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전국 6개 인라인스케이트 실내 경기장 가운데 청주(1990년 건립), 강릉(1991년), 전주(1991년)에 이어 네 번째로 지어졌다. 대구 6개 공영 인라인스케이트장 중 유일하게 실내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하고 있고, 2001년부터는 비시즌을 활용하여 선수들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평일은 물론 휴일에도 운영하고 있으나 평일 16시부터 18시 30분까지는 대구시 대표선수 훈련 시간으로 이용이 불가능하다. 대구 6개 공영 인라인스케이트장 중 유일하게 실내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장 주변으로는 영남제일관, 망우당공원 등이 있다

천연애

천연애

5.6Km    2025-11-26

대구광역시 달서구 앞산순환로 289

천연애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1동에 위치하고 있다. 송현역 3번 출구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주차장이 넓어 자차로 방문하기에도 좋다.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이나 가족 단위 손님이 방문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오리고기와 부추가 어우러진 힐링불고기이며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에 예약해야만 맛볼 수 있는 능이백숙을 비롯해 들깨수제비, 메밀막국수, 볶음밥 등 다양한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영영축성비

영영축성비

5.7Km    2025-03-18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에 세워두었으며,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에 성은 헐리게 되었고, 비는 1932년 향교로 옮겨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