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Km 2025-03-19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49길 16 (봉무동)
롯데아울렛 이시아폴리스점은 온 가족이 즐거운 도심 속의 힐링 테마파크이다. 대구, 경북 유일의 글로벌 직영 상설 매장 나이키팩토리, 아디다스 팩토리와, ZARA, 한섬관부터 빈폴, 타미힐피거, 라코스테 등 유명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 좋은 제품으로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패션, 레져스포츠, 식당가, 영화관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또한 반려견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다.
6.3Km 2025-03-24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227 (봉무동)
섬유산업은 가내수공업적 전통산업에서 현대 산업 사회로의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성장기에 섬유산업이 중심 역할을 하였고, 대구는 그 한가운데서 섬유를 기반으로 성장한 ‘섬유도시’다. 이것이 대구섬유박물관을 건립한 이유의 하나다. 섬유는 탄소섬유, 나노섬유 등 섬유소재의 발전으로 과학, 의료, 첨단산업 등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미래산업이기도 하다. 대구섬유박물관은 세계에서도 드문 섬유와 패션을 아우르는 종합박물관으로, 패션, 산업, 신소재 등 섬유의 역사와 특성에 관해 한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편안한 문화휴식처가 되고 있다. 대구섬유박물관은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새로운 도약에 다리가 되고자 한다. 첨단으로 향하는 섬유·패션의 발전을 기업을 비롯한 섬유분야와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추억을 떠올리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섬유박물관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6.3Km 2024-04-29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 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 가면서 오늘 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6.3Km 2025-03-19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의병장이자 경상도 방어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의 공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공원 안에는 곽재우의 동상이 서 있고, 동상 부근에 그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망우당기념관이 있다. 하얀 성벽 위로 보이는 누각은 영남제일관인데, 조선시대에 축조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80년 이곳에 옮겨 중건한 것이다. 이 지방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조양회관도 이곳에서 들러볼 수 있다. (출처 : 대구트립로드)
6.3Km 2025-03-19
대구광역시 달서구 새방로 21
성주 도씨 서촌계의 랜드마크인 병암서원은성주 도씨 도응유(都應兪)와 경유(慶兪) 형제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산 고등학교 옆 대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병암서원의 시작은 인조 3년인 16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주의 선비 도경유가 낙음정사를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이 후에 병암서당으로, 다시 병암서원으로 발전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병암서원도 헐렸으나 후손들이 1924년 현재 위치에 복원했다. 2000년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다시 옛 서원을 헐고, 지금의 자리에 강당, 사당, 동재, 서재 등 목조건물 10여 동과 회관, 지하 주차장 등 연건평 560여 평을 새로 건립하고 2003년 5월에 준공하였다. 이 한옥들은 2003년 ‘대구광역시 우수 건축물’로 선정돼 상을 받은 작품들이다. 경내에 황토를 가마에 구워 만든 전돌담장은 경복궁 자경전 꽃담의 일부를 재현하였으며 근래 대구전통문화센터를 통해 한옥 숙박 체험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고택 음악회등이 열리는 등 서원이 빗장을 열고 다양한 형태로 시민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