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암서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소암서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소암서당

15.3 Km    1242     2023-12-13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지산로 807-11

소암서당은 투암 채몽연(1561~1638), 백포 채무(1588~1670), 극명당 장내범(1563~1640)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서원이다. 1703년(숙종 29) 유학자인 장벽, 장세휘, 박정석 등 20여 명이 소암동 팜암바위 뒷산에 사당과 강당을 지어 소암사라 하고 같은 해, 1712년(숙종 38)에 투암, 백포 부자를 봉안하였다. 1803년(순조 3)에 서원으로 승격하고 1847년(헌종 13)에는 극명당을 배향하였으나 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모두 훼철되었다. 이후 1932년, 강당을 복원하고 이를 소암서당이라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강당 대청 상부에는 기문 등이 남아 있다.

군위 불로리 마애보살입상

15.4 Km    16576     2023-09-21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군위 불로리 마애보살입상은 지면에서 약 7km 높이의 암벽에 조각된 높이 2.4km의 입상으로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형으로 봐서 조성 당시에는 나지막한 야산의 중턱에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는 도로 개설과 확장으로 인해 암반이 많이 절개되어 불상이 있는 곳은 가파른 절벽이 되었다. 커다란 바위를 다듬어 중앙을 감실 형태로 만들었고 그 안에 불상과 광배(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 대좌를 조각하였다. 감실 위에는 넓은 판석으로 처마를 만들어서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불상의 얼굴은 네모졌고, 머리에는 낮은 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목에는 삼도(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줄기 주름으로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를 나타냄))가 표현되었다. 가는 눈과 좁은 미간, 넓은 코, 얇은 입술과 튀어나온 입 등에서 부자연스러운 점을 느낄 수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하였고 발끝은 팔자 모양으로 좌우로 향하도록 하였다. 조각양식은 정면관으로 위아래의 조각기법이 같지 않으며 흉부 위쪽은 반입체적으로 반원각하고, 아래쪽은 얕게 부각하거나 선각함으로 회화적 표현을 가미하였으며 전체적으로 큰 편이다. 이 불상에는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선조 때 홍판교의 손자 장사람 응경은 대대로 큰 부자라 하루 위천을 건너온 손님이 백명이 넘어 손님 접대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안주인은 너무 많은 손님 접대가 귀찮아 시주하러 온 인각사의 도승에게 시주는 원하는데로 줄테니 손님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스님의 말대로 박타산 지류 절벽 암반에 미륵불상을 조각했더니 그때부터 차차 가산이 기울더니 망했다고 한다. 이곳에 살던 남양 홍씨는 한사람씩 이곳을 떠나 불상반대방향인 영천, 의성 등지로 이사했다고 한다. 현재도 이곳에 치성을 다하여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하여 많은 사람이 이 불암을 보호하고 있다.

선석사(경북)

15.4 Km    16860     2024-02-02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

대한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선석사는 성주군 서진산 중턱에 위치했으며 성주군에서는 가장 커다란 사찰이다. 경북 지역의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 창건 연대, 창건 인물 등은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단지 692년(효소왕 1) 의상대사가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창건 당시는 지금보다 서쪽이었고 고려 말 나옹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려 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와 지금의 선석사라 명하였다. 이후 1592년(선조 25)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 혜묵, 나헌 스님 등이 중창하고 1725년(영조 1)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 서윤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 정법료를 지었으나 그 뒤 화재로 어필각은 소실되었고 최근 대웅전 뒤 대나무 숲 아래 야외 미륵부처님을 조성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다. 절에서 약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이 있으며 이는 태실 수호 도량으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고 왕조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태실의 변화를 지켜보아야 했다. 숱한 역사의 굴곡을 함께 하여온 선석사는 이제 성주 고장 사람들을 위한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봄마다 아름다운 도량에서 열리는 산사 음악회를 비롯해서 문화 공간, 수행 공간, 교육 공간으로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15.4 Km    29632     2023-06-10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39-18

조선조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전열은 11기, 후열은 8기로 되어있다.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실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에서부터 세종 24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비석이 닳아 판독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으며, 판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평원대군, 영응대군, 의창군 등의 태실비이다. 그러나 1977년 12월, 이곳을 보수, 정비하면서 금성대군, 화의군, 단종 등의 태실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토기, 태호, 분청인화문 대접, 분청상감 연화문 뚜껑 1식과, 명기가 있는 지석2점 등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경주박물관, 경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가까이엔 이곳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던 선석사가 있다. * 태실과 지석의 구조에 대하여 *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을 말한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민간에서는 땅에 묻는 경우도 있었으나 많은 경우 출산 후 마당을 깨끗이 한 뒤 왕겨에 태를 묻어 몽긋몽긋하에 태운 뒤에 재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왕족의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시키는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이때 이를 주관하는 관상감에서 길지로 선정된 명산에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밟아 묻었는데, 이 의식과 절차를 거쳐 완성한 시설을 태실이라 불렀다. 또한 태봉은 태실 가운데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할 경우에 격에 맞는 석물을 갖추고 가봉비를 세운 것으로 임금의 태실을 말한다. 19기의 태실은 화강암으로 깎은 조선태실 의궤(儀軌)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胎壺)를 넣는 형태이다. 태호 속에는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두었다.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각 왕자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 태실의 옥개 높이는 25㎝, 지름 1.6m, 둘레 3.2m이며 신석은 높이 60㎝, 지름 1.2m, 둘레 2.4m이다. 기단은 높이 45㎝, 지름 2.2m, 둘레 8.8m이고 태비의 높이는 90㎝, 너비는 35㎝이다. * 태실 수호사찰 선석사 * - 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 - 조선초기 세종대왕 수호사찰 - 소장 문화재 : 성주선석사영산회괘불탱(보물) / 선석사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태장전 : 현대인의 아기 태를 봉안하는 시설이 있으며, 태 봉안인의 무병/장수를 기도하는 도량 [문화재 정보] * 조성연대 : 1438년(세종 20)~1442(세종 24) * 재질 : 화강암 * 크기 : 면적 5,950㎡ * 태실수 : 19기 -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장자 문종을 제외한 17왕자 태실 18기 - 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이 태어났을 떄 조성한 태실 1기 ※ 단종의 태실은 세자로 책봉된 후 성주 법림산에 새롭게 이전 조성함 * 문화재적 가치 - 태실이 군집을 이룬 전국 최대의 태실 문화유산 - 조선초기 태실문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문화유산 - 태실 조성방식의 시대적 변천을 확인 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

한개마을에서 즐기는 고즈넉한 시간

한개마을에서 즐기는 고즈넉한 시간

15.5 Km    1901     2023-08-10

성주 한개마을은 영남 제일의 길지에 자리 잡은 성산 이씨의 집성촌으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7개 마을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 때 지어진 북비고택, 한주종택, 교리댁, 하회댁 등 전통고가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마을을 잇는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칠곡양떼목장

15.5 Km    2     2023-12-08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창평로 209-42

칠곡양떼목장은 2007년 개장한 동물체험농장이다. 초기에는 우량한우 수정란생산 부속농장으로 개장하였으나 국내 한우의 구제역 등의 여파로 농장 경영이 어려워지자 3년간의 준비를 통해 양떼체험목장으로 탈바꿈하였다. 칠곡양떼목장에서는 한우와 면양, 유산양, 타조 등을 함께 사육하고 있으며, 양사에서는 양 떼먹이 주기와 동물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계절별 테마 체험 행사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놀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푸른 초지와 대자연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태실문화관

태실문화관

15.6 Km    0     2023-10-11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12

태실 문화관에는 생명존중 정신이 깃들어 있는 태실의 고장 성주를 소개하고, 장태의 역사, 조선 왕실의 출산 의례, 태실의 조성, 태실의 구조 등 태실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생명문화공원은 조선시대 태실 미니어처가 설치되어 공원 산책을 즐기며 전국에 산재된 태실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장독대

장독대

15.7 Km    19793     2023-07-25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대로 1917
054-974-0222

2대째 자연산 미꾸라지만 사용한 추어탕 전문음식점으로 경상도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되었다.
통발로 미꾸라지를 잡아서 사용하는 자연산 미꾸라지와 순수 한국 토속음식 (반찬류) 만으로 식단을 짜 잊혀가는 우리의 맛을 전하고 있다.
미꾸라지 튀김이 특히 별미이다.

기러기농장가든

기러기농장가든

15.8 Km    22117     2023-07-12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용매로 788
054-382-6337

경상북도 군위군에 위치한 기러기농장가든은 농림부에서 지정한 위해 요소 중점관리(HACCP)인증 사료만으로 사육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안심하고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리사(구미)

도리사(구미)

15.9 Km    39531     2024-05-10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도리사는 신라 제19대 눌지왕(417년) 때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해동불교의 발상지이자,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 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이 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挑도)와 오얏(李리)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불교의 성지인 이곳에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에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1976년 세존 사리탑 보수 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는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이 514년(법흥왕 14)으로 이보다 보다 70여년이나 앞서 창건 된 도리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유형문화재로 보물인 화엄석탑이 있고, 아도화상 동상(2002년 새로 건립조성), 세존사리탑, 아도화상 사적비, 조선후기 탱화가 있으며 지정된 불교의 교리와 불교 문화 전파를 위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