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Km 2024-10-31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봄이면 만개하는 벚꽃길로 유명한 옥연지 일대에 송해공원을 조성하여 새로운 휴양 코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송해공원은 달성군 명예군민인 방송인 송해 선생의 이름을 따 명칭한 곳으로, 둘레길 데크, 백년수중다리, 바람개비 쉼터, 전망대, 금동굴, 얼음빙벽 등 다양한 볼거리로 조성되어있다. 최고의 아름다운 수변공원으로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이다. (출처 : 대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18.8Km 2024-02-21
대구광역시 달성군 달구벌대로 750
꽃잔디식당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다. 예스러운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오직 아귀찜 요리 하나만 하는 집으로 대표 메뉴는 전통 아귀찜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영양돌솥밥이나 바지락칼국수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맛볼 수 있고 순살 아귀찜도 판다. 대구 지하철 2호선 다사역과 다사 IC에서 가깝다. 인근에는 달성문화센터와 다사 근린공원, 강정보 유원지, 강정보 디아크 광장이 있다.
18.8Km 2024-07-22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강정본길 57-1
053-668-4242
1970년대 젊은작가들이 기성미술계의 경직성에 도전하며 다양한 미술실험을 펼쳤던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계승하여 강정보 일원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축제이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개최되는 장소 강정은 1977년 ‘제3회 대구현대미술제’ 당시, 역대 최대규모인 200여명의 작가가 참여한 한국최초의 집단적 이벤트가 펼쳐진 장소로 그 의의를 가진다. 오늘날의 강정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와 ‘동양 최대 수문’ 이라 불리는 강정보,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디자인의 디아크 등 다양한 지역적 사회적 요소들이 갖추어져 있다.
18.8Km 2024-06-24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로 560
카페옐롱은 성주의 청년들이 모여 관광기념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주민사업체이다. ‘지역주민이 가장 보여주고 싶은 성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성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성주 여행을 리마인드 할 수 있도록 한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참외 산지인 성주의 장점을 담아 참외로 만든 먹거리 기념품(참외잼, 참외빵, 참외청, 참외말랭이 등) 과 성주의 풍경, 성주의 귀여운 마스코트 참별이를 이용한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상품에 이용되는 참외는 직접 생산한 참외를 사용하고 있으며, 6차 융복합인증을 받은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성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체험과 참외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일부 상품과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
18.9Km 2024-11-12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사문진 나루터는 옛날 보부상들이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오는 뱃길로 이용되었다. 사문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화원읍 본리리(인흥마을)에 있었던 인흥사[仁興寺]라는 큰절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절사[寺]를 써 사문진[寺門津]으로 불렀다.’는 설과 ‘강가의 모래가 있어서 사[沙]자를 쓰고 포구를 통해서 배가 소금 등을 싣고 들어오고,이 지역의 물건이 다른 지방으로 가는 문이라 해서 사문진[沙門津]으로 불렀다.’는 설 2가지로 전해 오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조선 세종 28년에 설치돼 성종때까지 40년간 무역 창고(화원창)지로 활용되었으며, 이 곳에는 대일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 왜물고가 있었으며, 낙동강 물자 수송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다. 1900년 3월 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 보텀 부부가 피아노를 한국 최초로 이곳을 통해 대구로 가져 왔으며, 일제강점기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 촬영지였다. 현재의 모습은 1993년 화원읍과 고령군 다산면을 잇는 사문진교가 개통되면서 사문진 나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으나, 피아노 광장을 조성하고, 전통 주막촌 3동을 복원하는 등 사문진 나루터 일원에 역사 공원을 조성했다. 주막촌에는 초가 지붕을 얹어 옛 나루터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사문진 나루터 주막촌 중심부에 팽나무, 솟대와 장승이 서 있으며, 피아노 유입지임을 알리는 각종 조형물이 공원 곳곳에 자리해 있다. 사문진나루터에서 출발해 달성습지, 강정보 디아크, 달성보 일원까지 운항하는 1시간 코스의 유람선도 운항 중이다.
18.9Km 2024-03-28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로1길 40-12
053-659-4475
화원읍 본리리(인흥마을)에 있었던 인흥사(仁興寺)라는 큰절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절사(寺)를 써 사문진(寺門津)으로 불렀다."는 설과 "강가의 모래가 있어서 사(沙)자를 쓰고 포구를 통해서 배가 소금 등을 싣고 들어오고, 이 지역의 물건이 다른 지방으로 가는 문이라 해서 사문진(沙門津)으로 불렀다."는 설로 전해 오고 있다.
18.9Km 2024-05-10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로1길 40-12
과거 사문진은 낙동강변에 있는 나루터였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하며 일제강점기 때는 화원유원지로 불리면서 유원지에 많은 행락객들이 붐비던 곳이었다. 현재는 500년 된 팽나무와 함께 대형 피아노 장승, 오리솟대, 피아노 유입 기념비, 임자 없는 나룻배 촬영지 기념비, 시비, 세족대, 부유식 계류장, 피아노 광장 등의 사문진 나루터 공원의 볼거리와 함께 옛 주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막걸리를 비롯해 잔치국수, 국밥, 부추전, 두부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어 옛 정취와 함께 사문진 낙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19.0Km 2024-08-23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15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그의 아들 광석이 1783년 이웃하고 있는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대략 트인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채와 곳간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넓은 대청과 골방이 딸린 온돌방 2칸, 마루방, 청지기방을 두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개방된 툇마루 등으로 꾸몄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서쪽으로 장독대,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삼가헌의 백미, 별당인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원래 4칸 규모의 'ㅡ자형'이었던 건물을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였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라 하엽정이라는 현판과 함께 방앞 처마에는 파산서당 편액을 같이 볼 수 있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을 두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여름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주변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삼가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19.0Km 2024-02-14
경상북도 성주군 주산로 382
왜관식당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 있는 청국장 전문점이다. 3대째 이어오는 맛집으로 모둠 청국장 전골, 차돌 청국장 정식, 할매 청국장 정식이 있고 그 외에 비지찌개 정식, 간장제육불고기, 촌두부, 콩국수 등이 있다. 각종 나물에 김치, 고등어조림 등 밑반찬이 푸짐해 집밥 느낌이 든다. 현지인들이 더 자주 찾을 만큼 인기 있는 식당으로 성주IC에서 가깝다.
19.0Km 2024-06-18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지동길 3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은 선조 31년(1598)부터 솔례마을의 현풍곽씨 문중에 포상된 여각 10려, 비각2려를 한곳에 모은 정려각이다. 정려를 내릴 때마다 따로 정려각을 세우던 것을 영조 원년(1725) 이후 현재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12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려각 내부에는 2기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6·25 전쟁 때 건물 일부가 포격으로 무너지고 비석 1기가 부서졌으나, 1963년에 모두 중수하였고, 2008년에 도로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고 정려하였다. 한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정려를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요 행적] ①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자 며느리와 출가한 딸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이에 선조가 정려하였다. ② 곽재우의 사촌동생인 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병환 중인 부친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 선조가 이를 정려하였다. ③ 곽재기(郭再祺)의 부인 광주이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만나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강으로 투신 자살하여 선조가 정려하였다. ④ 곽홍원의 부인 밀양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대신 죽음으로 현종(顯宗)이 정려하였다. ⑤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결혼 후 1년도 못되어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대신 죽기를 주야로 기원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남편을 잃게 되자 식음을 전폐하여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의 정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