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Km 2024-10-21
경상남도 합천군 황강옥전로 1558 합천박물관
합천박물관은 합천의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2004년 12월 개관했다. 가야 시대 다라국의 지배자 묘역으로 알려진 옥전 고분군의 유물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용봉 문양 고리 자루 큰칼과 금제 귀걸이를 포함해 각종 장신구, 철기류, 토기류 등 다라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 3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현재는 합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관 1층은 다라문화실, 2층은 다라역사실로 옥전 고분군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별관은 역사관으로 합천의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를 알리는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이용하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물 크기로 복원한 가야시대 다라국 지배자의 무덤과 다라국 도성의 미니어처, 다양한 영상 자료 등을 갖췄다. 기획전시실에는 신석기, 청동기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합천의 역사를 알리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16.0Km 2024-05-23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가산단대로52길 6
전국 유일의 노사상생 협력 모델로 2021년 11월 12일에 개관한 노사평화의 전당은 노사상생을 위한 교육, 연구시설이자 시민들을 위한 복합 문화향유 공간이다. ‘노동을 알기 쉽게, 노사관계를 올바르게’라는 슬로건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감과 동시에 노동과 노사관계의 새로운 상생의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건립되었고, 건물 내부는 야외 휴게시설과 상설전시, 기획전시, 문화공간, 교육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16.1Km 2024-06-18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지동길 3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은 선조 31년(1598)부터 솔례마을의 현풍곽씨 문중에 포상된 여각 10려, 비각2려를 한곳에 모은 정려각이다. 정려를 내릴 때마다 따로 정려각을 세우던 것을 영조 원년(1725) 이후 현재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12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려각 내부에는 2기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6·25 전쟁 때 건물 일부가 포격으로 무너지고 비석 1기가 부서졌으나, 1963년에 모두 중수하였고, 2008년에 도로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고 정려하였다. 한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정려를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요 행적] ①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자 며느리와 출가한 딸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이에 선조가 정려하였다. ② 곽재우의 사촌동생인 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병환 중인 부친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 선조가 이를 정려하였다. ③ 곽재기(郭再祺)의 부인 광주이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만나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강으로 투신 자살하여 선조가 정려하였다. ④ 곽홍원의 부인 밀양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대신 죽음으로 현종(顯宗)이 정려하였다. ⑤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결혼 후 1년도 못되어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대신 죽기를 주야로 기원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남편을 잃게 되자 식음을 전폐하여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의 정려 등이 있다.
16.1Km 2024-09-30
경상남도 합천군 청덕면 성태길 81
덕원서원은 세조(재위 1455∼1468) 때 이시애의 난을 맞아 당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강열공 차운력, 문절공 차원부, 문목공 차포온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덕원서원은 숙종 18년(1692) 세웠는데, 처음에는 호남 승평에 세워 오천서원이라 했다. 그 뒤 지방 유림이 순조 6년(1806)에 청덕면 성태리로 옮겨지어 덕원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자진 철폐하였고, 고종 39년(1902) 지방 유림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원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6.2Km 2024-07-17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645-8
치인 자동차 야영장은 가야산국립공원 해인사지구인 치인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짙은 그늘이 시원함을 선사한다.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과 주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새로 지은 화장실은 넓고 깔끔하다. 캠핑장 바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시원하다 못해 얼음물처럼 차가울 정도다. 이곳에서 물고기 잡기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용문폭포, 용문 자연관찰로와 인접해 있어 다양한 자연체험이 가능하며, 합천 해인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연계관광이 용이하다.
16.2Km 2024-07-10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645-8
가야산 삼정야영장은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다. 저렴한 이용료로 즐길 수 있는 가야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오토캠핑장이다. 야영지 내 수목과 지형지물의 훼손을 최소화한 자연 친화형 야영장으로 가족 단위 야영객을 비롯하여 많은 캠퍼들이 찾는 곳이다. 사이트는 총 17면이다. 아쉽지만 온수 사용은 할 수 없으며 반려동물도 동반할 수 없다. 야영장 옆으로 흐르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 해인사, 소리길 등 아름다운 가야산 역사와 경관 자원을 감상할 수 있다. 삼정 야영장 주변에 가야산, 해인사, 대장경테마파크가 있어서 연계 관광에 좋다.
16.2Km 2024-10-02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18-116
백련암은 산내 암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한가할 뿐 아니라 경계 또한 탁 트여 시원하다. 특히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로 일컬어 왔다. 백련암을 처음 창건한 연대는 잘 알 수 없고 다만 선조 38년 곧 서기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고승들이 즐겨 수행처로 삼아 오던 이곳은 역대로 산중 어른들이 주석해 왔다. 몇해전 성철스님께서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였다.
16.2Km 2024-10-22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비슬로130길 53-1
053-668-2645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은 대구 달성군 현풍읍에 위치한 전통시장으로 1918년 3월에 현풍장으로 개장한 이래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지금은 달성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시장이다.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은 다양한 세대 간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전통시장과, 매월 5일과 10일에 열리는 오일장, 시대와 세대를 넘어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청년몰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싱싱한 현지 특산물과 토산품, 문화상품 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즐길 거리가 준비되어 있는 전통시장이다. 특히 5일장이 주말과 겹치는 날에는 다양한 플리마켓 외에 관광형 시장이라는 명성에 맞게 문화행사도 같이 열어 먹거리와 더불어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 3월에 청년몰 [현이와 풍이의 청춘신난장]도 개설되어 관광객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진흥원이 추진하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현풍백년도깨비시장에서 도깨비도 만나보고, 전통 5일장의 향수도 느껴볼 수 있는 유쾌하고 사람 냄새 가득한 시장이다.
16.2Km 2024-07-26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로6길 5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은 1918년 3월에 개장한 역사 깊은 시장이다. 시장은 세 가지 특징을 지녔다. 먼저 다양한 세대 간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전통시장이라는 것이 첫 번째 특징이다. 두 번째는 매월 5일과 10일에 전통 오일장이 열린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청년몰이 입점해 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청
16.4Km 2024-08-14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해 있는 홍의장군곽망우당묘소는 홍의장군 곽재우 선생의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친 선영이다. 충익공이 임종에 즈음하여 임진왜란 당시 왕릉이 무너지고 종묘가 불에 탄 후 신하된 자가 묘의 봉분을 쌓을 수 없으니 예장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여 곽재우의 묘는 1617년 봉분없이 평장하였다. 그로부터 114년이 지난 영조 7년, 1731년에 한음의 후예 현풍현감 이우인이 충익공의 묘소를 참배한 후 실묘가 염려되어 사림들을 설득, 충익공의 유지를 받들어 봉분을 낮게 쌓았다. 이와 같은 보고를 접한 경상도 관찰사 조현명은 대제학 이덕수로부터 비문을, 좌의정 조문명으로부터는 글씨를 받아 충익공의 유언을 존중하여 1732년 소박한 장식의 묘비를 세웠다. 충익공의 묘는 정부인 상산김씨와 합장묘이며, 유가면 가태리에 불천위 사우와 예연서원이 있다. 곽재우 장군(1552~1617)은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계수(季綬)이고,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관군(官軍)이 대패하자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대신하여 싸웠다. 그는 스스로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 하여 붉은 비단으로 군복을 지어 입고 백마에 높이 앉아, 아군과 적군에게 위엄을 보이고 위장전술로 적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장군이 이끄는 의병은 왜군의 진로를 차단하여 그들이 계획한 호남진출을 막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장군은 그 후 성주목사, 경상좌도 방어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더 이상 다른 벼슬은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광해군 9년(1617년) 4월 10일에 창녕군 길곡면 창암리에서 66세로 생애를 마쳤고, 숙종 35년(1709년)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