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정인지 묘소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괴산 정인지 묘소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괴산 정인지 묘소

괴산 정인지 묘소

9.8Km    2024-07-18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로1길 24

괴산 정인지 묘소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고려사>, <용비어천가>, <태조실록> 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 신숙주, 최항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역재집> 있다. 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을 써서 다시 세웠다.

고구려의 역사가 깃든 충주로 떠나는 역사 여행

고구려의 역사가 깃든 충주로 떠나는 역사 여행

9.8Km    2023-08-08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되어지는 충주 고구려비.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인 충주 고구려비가 있는 충주로 떠나는 역사 여행 코스. 고구려의 역사 뿐만 아니라 별, 행성, 성운 등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과학관까지 함께할 수 있는 여행 코스이다.

충주 이시진 묘소

9.8Km    2024-06-20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1길 149-11

충주 이시진 묘소는 충주시 동량면에 있으며 그의 신도비 뒤쪽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시진(1578∼1633)은 조선 시대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기록된 효자로서 국가로부터 정려를 받은 인물이다. 이시진 묘소는 17세기 전반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전주 이씨 임영대군 효자공파 6세손인 이시진 묘부터 13세손인 이명규 묘까지 조성되어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시진의 무덤은 평면 사다리꼴 형태이며 가로 6m, 세로 6m, 높이 1.5m정도이다. 부인 전주 황씨와 풍산 심씨를 합장하였다. 묘역은 5대에 걸친 직계 장손들의 묘소가 차례로 조성되어 있고 방계 후손들의 묘도 함께 있는데 능선부에서 약간 비켜 조성되어 있다. 5대 묘는 봉분과 석물(상석, 혼유석, 향로석, 석비, 망주석 등)을 갖추고 있으며 상석과 혼유석, 향로석 등은 조성 당시의 석물이며 석비와 망주석은 대개 2003년 종중에서 일괄 건립한 것이다. 이시진, 이제홍 묘 석비는 당시의 것으로 순조 12년(181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묘 양식을 잘 알 수 있는 곳이며 근처 충주호 등 관광지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이시진 효자각

9.9Km    2024-06-14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1길 149

이시진 효자각은 충주시 동량면 마을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뒤쪽 언덕에 그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시진(1578~1633)은 조선 중기 때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극진하여 난리를 만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또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케 하였으며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이시진의 효행은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1608년(선조 41) 효자문이 세워졌다. 지금은 낮은 담장을 둘러 효자각을 보호하고 있으며 담장 앞에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남향으로 배치된 정려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구획하여 사면에 홍살을 둘렀다. 기단은 자연석을 낮게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주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는 만들지 않고 창방으로 결구된 주간에만 4개의 소로를 놓아 주심도리 장형을 받치고 있다. 가구는 양측 대량 상부에 제형 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를 받치도록 한 삼량집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청을 하였다. 그 효행은 삼강행실도 7권 20면,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40면에 실려 있다. 인근에 충주호와 충주댐 물 문화관, 계명산 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충주자연호텔

충주자연호텔

9.9Km    2024-10-22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팔봉로 1061

충주자연호텔은 월악산, 조령산, 수주팔봉 중앙에 위치하여 약 2,000여 평의 연꽃 호수를 조성하고 있다. 자연의 힐링 산책로를 조성하여 자연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야생화를 즐길 수 있다. 또한 회화나무 샛길, 도화도 샛길, 도토리 6형제길, 이팝나무 샛길 이외에 쉼터와 각종 산나물 등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행복, 자연, 건강을 생각한 테마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외에 각종 연수를 위한 넓은 대강당과 중강당 그리고 회의 장소로 좋은 소강당, VIP 회의실 등이 있으며 객실 손님을 위한 식당과 사우나, 카페가 운영 중이다.

충주 장미산성

9.9Km    2024-09-05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충주시의 남한강 인근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둘레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 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2년 조사 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영토분쟁을 벌인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다. 북쪽 정상 부분의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장미산성 위에서는 남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중원고구려비와 누암리 고분군 등 충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충주 영모사

충주 영모사

10.0Km    2024-04-30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내동1길 26-11

충주 영모사는 충주 최씨 후손들이 시조인 최승 등 8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사당이며, 일제강점기 때 세워져 사액을 받지는 않았다. 최승은 신라 문성왕 8년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아지자, 중국 당나라 무종의 명을 받아 이들을 무력으로 평정하였으며, 통일신라 진성여왕 3년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한 인물이다. 큰 암석 위에 쓰인 내동 부락 표석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충주 영모사가 나온다. 이곳은 남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둔 목조 기와지붕이다. 특징적인 것은 충주 영모사 뒤편에 봉분이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영모사 앞쪽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높인 솟을대문이고 최승이 살았을 때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석교가 있다. 신라 말 최승이 충주에 거처한 이후, 후손들이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충주 최씨가 되었다. 충주 최씨 종중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며 사당을 관리하고 있고, 뿌리를 잊지 않고 조상의 얼을 받드는 추모의 장소인 만큼 향토 문화의 정립과 역사 교육에 큰 의미가 있다. 상시 개방하고 있으나, 내부 관람은 행사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따로 문의해야 한다.

충주 최응성 고가

충주 최응성 고가

10.1Km    2024-11-11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중원대로 2220

최응성 고가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고가로 충북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숙종 때 문장가이며 수암 권상하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함월 최응성의 생가이며 원래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이게 되자 지금의 용천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건물 뒤쪽 사당은 울창한 숲에 있어 조용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황토와 막돌로 쌓은 담벼락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본채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본채 건물은 자연석으로 만든 기단 위에 건물을 지어 안정감이 넘친다. 본채 앞의 마당에는 수십 년을 사용해온 우물이 여태까지 물을 쏟아내고 있으며 작은 생활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농기구가 놓여 있다. 건물 배치는 기억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에 일자형의 행랑채가 있고, 좌측으로는 함월이 서재로 사용하던 염선재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기억자형의 창고가 사괴석 담장으로 일곽을 만들어 함께 배치되어 있다. 고풍스러움을 뽐내고 있는 이곳은 상류층 양반가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으며, 고택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는 곳으로 중부권의 고택 연구 자료로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이곳은 봄에 다양한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옥 스테이와 야생화 체험이 진행되어 자유로이 볼 수는 있으나 문의 후 관람하는 것이 좋다.

충주야생화와 고택나들이[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충주야생화와 고택나들이[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0.1Km    2024-07-23

충청북도 충주시 중원대로 2220
010-5485-7744

충주에 위치한 야생화와고택나들이는 조선 후기의 학자 최응성 고택으로, 무려 350여 년의 시간을 지닌 충주의 유형문화재 한옥이다. 방이 두 개씩 있는 사랑채와 안채는 독채로 대여하고, 행랑채와 별채는 큰 방과 작은 방이 있는데 따로 예약을 받는다. 집 전체를 대여하기도 한다. 취사시설은 따로 없다. 정자에 앉아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야생화 체험, 인절미․연잎밥 등 전통음식 만들기, 전통놀이 체험 등을 제공한다.

괴산 삼방리 삼층석탑

10.2Km    2024-10-31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연지길 49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대석 위에 갑석을 올렸는데 갑석의 윗면에는 2단의 탑신괴임이 있다. 대석의 면석에는 양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양우주를 정연하게 각출하였다. 각층 옥개석 낙수면의 물매는 비교적 급한 편이며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탑신부는 각기 다른 석재로 만든 탑신석과 옥개석을 번갈아 3층으로 쌓았고 위층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팔작지붕처럼 생긴 옥개석은 윗면의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고 아랫면에는 4단의 각형받침이 선명하게 돌출된 모습이다. 1층 탑신 4면에 새긴 불상은 앙화좌 위에 결가부좌 하였으며, 모두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다. 동쪽은 약사여래, 서쪽은 아미타여래, 남쪽은 대일여래, 북쪽은 석가여래상을 조각하여 사면불의 의궤를 갖추었다. 이 석탑은 삼층탑신과 상륜부의 일부가 결실되어 최근에 보수하였으나 정제미와 조각기법이 뛰어나며, 옥개석의 전각,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