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Km 2024-07-19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수정로 38
음성문화원은 충청북도 음성군 읍내리 마을 가운데에 있으며 음성 지역의 향토 문화 창달을 위하여 설립된 지역 문화 예술 진흥 기관이다. 1958년 2월 20일 설립하였으며, 사무실, 원장실, 서고, 미술실, 전시실, 악기실 창고로 조성되어 있다. 각종 전시회와 예술 문화 강연회, 교양 강좌 등을 개최하고 문화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향토사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에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문화관광부 산하 비영리 기관으로 음성 지역의 문화 사업과 사회 교육 사업 및 설성문화제 등의 각종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음성문화원에서 학술적 고증을 통하여 발간한 도서는 약 34종에 이르고 있다. 특히 2005년 발간한 <음성의 전통 민속놀이>에는 음성 거북놀이, 음성의 산신제 사례 등을 수록하는 등 지역 주민들이 문화적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14.0Km 2024-10-29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로 182
조선 인조 때의 명신인 김시양선생의 신도비로 1670년(현종 11년) 8월에 세워졌다. 김시양은(1581~1643)은 조선의 문신으로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1년 광해군 시절 전라도도사로 향시를 주관할 때 왕의 실정을 비유한 시제를 출제하였다 하여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1623)으로 풀려나와 여러 관직을 지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도체찰사 이원익의 종사관이 되어 활약하고, 이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인조 9년(1631년)에 병조판서에 올라 팔도도원수 ·사도체찰사를 겸임하고,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 신도비는 김시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대에서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조경이 김시양의 아들인 김휘의 요청으로 지었으며, 글씨와 전자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이정영이 썼다. 방형대석과 비신, 가첨석을 갖춘 전형적인 신도비로 최근에 난간석을 돌려 보호하고 있다.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나 암질이 차이가 있다. 현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500m 앞의 취묵당 옆도로(충민사 부근)에 세워졌던 것을 도로폐쇄로 1976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전 과정에서 귀부나 방형으로 조성되어 있었을 대석의 원형이 망실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록 대석은 변형되었으나 가첨석과 비신은 화강암으로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전형적인 조선의 신도비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문장과 서체가 뛰어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4.0Km 2024-06-14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다래월2길 20
석보군 이복생은 조선시대 정종의 9남으로 어머니는 해평 윤씨이다. 그는 효성과 우애가 돈독했으며, 학문에 통달하여 대문장이라 일컬었다. 석보군은 형 수도군과 함께 부왕을 정성껏 봉양했다. 그는 검묵(儉默)을 생활신조로 삼았고, 당시 사람들은 그를 ‘검묵공자’라고 일컬었다. 석보군 묘소는 1447년 경기도 양주군 미아리에 조성하였으나 시가지 확장으로 인하여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로 이장하였다. 마을 인근의 낮은 언덕을 올라 산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묘역 입구에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인 신도비가 있다. 묘비 1점은 가첨석을 갖추었고, 1964년에 건립한 것이며, 장명등 1점을 제외한 기타 석물은 1990년경 묘소 정화사업을 시행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봉분은 높이 약 160㎝에 지름 450㎝이며 호석 12매를 둘렀는데 그 안에 12 지상을 양각하였다. 이장하여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왕실의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4.1Km 2024-04-30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내동1길 26-11
충주 영모사는 충주 최씨 후손들이 시조인 최승 등 8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사당이며, 일제강점기 때 세워져 사액을 받지는 않았다. 최승은 신라 문성왕 8년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아지자, 중국 당나라 무종의 명을 받아 이들을 무력으로 평정하였으며, 통일신라 진성여왕 3년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한 인물이다. 큰 암석 위에 쓰인 내동 부락 표석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충주 영모사가 나온다. 이곳은 남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둔 목조 기와지붕이다. 특징적인 것은 충주 영모사 뒤편에 봉분이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영모사 앞쪽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높인 솟을대문이고 최승이 살았을 때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석교가 있다. 신라 말 최승이 충주에 거처한 이후, 후손들이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충주 최씨가 되었다. 충주 최씨 종중에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며 사당을 관리하고 있고, 뿌리를 잊지 않고 조상의 얼을 받드는 추모의 장소인 만큼 향토 문화의 정립과 역사 교육에 큰 의미가 있다. 상시 개방하고 있으나, 내부 관람은 행사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따로 문의해야 한다.
14.2Km 2024-07-22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충민로 1193
아이뜰 관광농원은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 자리했다. 괴산군청을 기점으로 16Km가량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타고 임꺽정로, 중부로, 충민로를 차례로 거치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안팎이다. 캠핑장은 박달산과 주월산 사이에 터를 잡았다. 이 덕분에 청량감 가득한 캠핑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대형 수영장이 있어 한여름 무더위를 물놀이로 이기기에 제격이다. 캠핑 외 즐길 거리도 차고 넘친다. 대규모 텃밭에서 이뤄지는 각종 수확 체험을 비롯해 어른들이 열광하는 수제 맥주 양조장 체험, 남녀노소 누구나 흥미롭게 즐기는 제과 제빵 체험 등이 그것이다. 펜션형 숙박시설에서 캠핑을 겸할 수 있는 팜핑룸도 이색적이다. 캠핑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한 번쯤 이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캠핑장에는 일반 야영장 20면을 마련했다. 전용 주차 공간이 있는 널찍한 데크에 그늘막을 설치한 덕택에 타프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14.2Km 2024-04-30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숭선길 56
충주 숭선사지 당간지주는 숭선사지 입구에 서 있는 당간지주이다. 숭선사는 954년에 건립되어 조선 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시대 국찰이다. 충주 신덕 저수지를 지나 문숭리로 들어서면 숭선마을회관 앞에 높다란 돌이 서 있는데 이것이 숭선사지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절 입구에 불화를 그린 깃발을 꽂은 장대를 지지하는 구조물로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원래는 동서로 나란히 섰던 당간지주로 2기였으나 현재 서쪽의 것만 남아있다. 동쪽 지주는 일제강점기 때 일인들에 의해 마을 앞 교각의 자재로 사용되었다가 신덕저수지를 조성할 때 수몰되었다고 전해진다. 동쪽 지주를 자른 사람이 화를 입었기에 그나마 서쪽 지주가 보존되었다고 전한다. 지주의 높이는 420m로 숭선사의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지주가 위치한 곳부터 사찰의 초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당간지주의 한쪽은 없어졌지만 남아있는 지주는 당시 숭선사지의 규모를 추측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4.2Km 2024-06-17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김시민장군 충민사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충무공 김시민과 문숙공 김제갑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김시민(1554~1592)의 자는 면오, 본관은 안동으로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진주판관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로 사천, 고성, 진해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우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그 후 진주성 싸움에서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으로 2만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투 후 숨어 있던 적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김시민은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 2등에 추록되고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제갑은 자는 순초, 호는 의재, 본관은 안동으로 명종 8년(1553)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14년(1581) 충청도관찰사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원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영원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으나 성이 함락됐고 그의 부인 이 씨, 아들 김시백과 함께 순절하였다. 김시민은 진주 충렬사에 제향 되었으나 고종 3년(1866) 훼철되어 김제갑의 충열사에 합사 하였는데 1976년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충민사를 세웠다.
14.3Km 2024-02-02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5
1662년(현종 3)에 백곡 김득신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로 괴강가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안쪽에 마루를 깔고 난간이 둘려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득신은 자는 자공, 호는 백곡·구석산인이며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 승리의 공을 세운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기도 하다.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칭해진다. 5언ㆍ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김득신이 이곳에서 <사기>와 <백이전>을 1억 1만 3천번을 읽었다고 하여 일명 억만재로도 불린다. 취묵당은 김시민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와 가까이 자리하고 있고 벽초 홍명희 생가, 제월대 등의 명승지가 많이 있다
14.4Km 2024-08-28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동락전승비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동락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전승비이며, 동락 초등학교 인근 가섭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동락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처음 승리한 전투이다. 1950년 7월 7일 당시 인근 동락 초등학교에 북한군 연대 병력이 집결하고, 수십 대의 차량과 포가 포진하고 있었다. 이때 동락 초등학교 여교사 김재옥이 기지를 발휘해 국군이 철수하고 있다고 북한군을 안심시킨 후 이를 기습의 발판으로 하여 이곳이 한국전쟁의 첫 전승지가 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북한군 무기를 통해 소련군의 간접적 참전을 증명해 유엔군의 참전을 끌어냈다. 동락전승비가 있는 곳에 기념 광장, 상징 조형물, 6.25 참전 유공자 기념비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해서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호국 전승 동락 전승비 근처의 동락 초등학교 교정에는 김재옥 교사 기념관과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이 있다.
14.4Km 2024-11-07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등로 709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득하고 능수버들까지 파릇한 잎새를 뽐내는 충주댐 벚꽃길은 충주댐 북쪽 도로인 충원교부터 충주댐 발전소까지의 차로를 이르는 것으로 중간쯤에서 윗길은 물 문화관으로 가는 벚꽃 산책길로 유명하고 아랫길은 충주댐 취수문비 방향으로 벚꽃 터널을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하얀색 벚꽃도 많지만 댐 물길을 따라 분홍빛 겹벚꽃도 터널을 이루며 피어난다. 꽃축제 기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이곳은 봄이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벚꽃으로 아름답기 그지없고 꽃과 함께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곳이다. 충주댐이 흐르는 물길 옆으로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편하게 둘러볼 수 있고 벚꽃뿐 아니라 개나리와 목련까지 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벚꽃길 옆으로 물 문화관이 있고 2층에 카페가 있는데 산책 중 쉴 겸 주변 경치를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중간에 폭포 쉼터에서 시원함도 느껴보고 군데군데 나타나는 고양이 조형물들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물 문화관을 짓기 전 이곳에 고양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곳이라 고양이 조형물이 많은 듯하다. 충주댐 벚꽃길을 걸으며 봄이 오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