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견학리 토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충주 견학리 토성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6.2Km    15113     2024-05-23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

충주 견학리 토성은 충주시 신니면에 있는 철기시대의 작은 토성이다. 이 토성은 낮은 구릉 지역의 끝자락에 축조된 토축성으로 규모가 작은 판축 공법이 적용되었다. 현재 서쪽 성벽은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진 상태이고 남벽과 북벽도 일부 무너졌다. 전체 둘레는 200미터가 약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로 보인다. 발굴조사 시 출토된 유물로는 목 부분에 물결무늬가 시문된 것과 편병, 어골문 기와 등이며 출토유물 대부분은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특징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고, 10세기를 중심으로 한 신라 후기의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유적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곳은 후삼국시대에 호적 세력의 거점이 되었다가 고려 시대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은 곳으로 보인다. 현재 토성 내부는 농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견학리 토성은 규모가 크지 않아 일부러 찾아오기보다는 근처를 여행하는 길에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토성의 성벽이 뚜렷하게 남아있고 길가에서 1분이면 올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미타사(음성)

미타사(음성)

6.4Km    23391     2024-06-05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소이로61번길 164

미타사는 고려 전기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단의 법주사 말사이다. 1965년에 8칸 규모로 목조 와가 형태의 불당을 세웠고, 이후 확장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극락전을 건립하였다. 또한 그 서쪽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의 삼성각을 세웠다. 1980년에는 극락전 앞 서쪽에 정면 7칸, 측면 2칸 반의 주심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의 선실을 건립하였고, 극락전 앞으로는 3층 석탑과 요사채를 건립하였다. 1979년 지은 극락전의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과 아미타여래 좌상, 관세음보살 좌상, 대세지보살 좌상 등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삼성각 안에는 고려 말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90㎝의 석조 아미타여래 좌상 1구가 있고, 약 700m 떨어진 진입로 서쪽의 암벽에는 고려 후기작으로 추정되는 높이 405m의 마애 여래 입상이 보호각 안에 있다.

임호서원

6.8Km    1673     2024-07-10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임호서원(臨湖書院)은 1693년(숙종 20)에 오봉산 기슭 성악사당(城嶽書堂) 옛터에 세워 표남계(表藍溪). 홍허백(洪虛白). 채난재(蔡:1齋). 권동계(權桐溪)의 신위를 모셨고, 채휴암(蔡休巖)을 추배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약 20평 가량이었다. 건물의 정면에 ‘임호강당(臨湖講堂)’이라고 쓴 현판(懸板)이 있었으며 중앙 1칸은 대청이고 양쪽은 온돌방이었다. 대청에는 중수기(重修記) 2개가 벽에 붙어 있었고, 양방에는 병풍과 제기(祭器)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1989년 신흥리에 이건하여 빈집만 남아 있다. [출처 : 상주시 읍면동]

목도강변유원지

목도강변유원지

6.9Km    17008     2024-08-26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괴산군 불정면의 목도강변은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다. 목도강변은 예부터 마포나루에서 출발한 소금 배가 목계나루를 거쳐 들어와 정박하던 곳이다. 남한강의 지류로서 맑은 물과 수려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괴산군에서는 목도강 수변 일대에 전국 최대 규모의 강수욕장을 개장했다. 화장실, 샤워실, 급수대 등 편의시설과 함께 400여 미터의 모래사장과 솔숲을 조성했다. 강변 산책로와 전망대도 조성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목도강수욕장 근처에 목도리마을에는 매월 4일과 9일이 들어가는 날 장이 서는 목도시장이 있다. 긴 세월 동안 자생적으로 형성된 전통시장이며 목도강수욕장에서 여름철 물놀이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좋다. 강과 가까이 위치해 있어 신선한 어죽과 매운탕이 유명하다. 또, 가까운 곳에 태조 이성계의 첫째 아들 진안군 이방우와 대군의 첫째 아들인 봉영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청덕사가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충도저수지

7.4Km    0     2023-12-15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충도저수지는 충북 음성군 소이면에 자리 잡고 있다. 소이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44년 일제강점기에 축조됐다. 저수지에는 붕어, 잉어, 배스가 서식하고 있다. 특히 붕어는 월척급이 자주 출현한다. 저수지는 음성 IC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주변에는 봉학골산림욕장, 로얄포레 컨트리클럽이 있어 연계 관광이 손쉽다.

장암 정호 묘소

장암 정호 묘소

7.5Km    14540     2024-07-18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괴산 정인지 묘소는 문경공(文敬公) 장암(丈巖) 정호(鄭澔,1648-1736)의 묘소이다. 정호는 조선중기의 문신, 학자로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본관은 연일(延日), 좌의정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숙종 8년(1682) 생원이 되고 1684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정언(正言)을 지냈으나 1689년에 을사환국(乙巳換局)으로 파직되어 문외출송(門外黜送)당했다가 이어서 경성(鏡城)에 유배되었다. 이후 숙종 20년(1694)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서인이 기용될 때 재등용되었고 당쟁의 와중에 부침을 거듭하였으나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충주의 누암서원(樓巖書院)에 배향되었고, 부조묘(不轅廟)는 충주시 가금면 창동에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 묘비, 망주석(望柱石) 등이 있으나 전체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충강공 이상급 신도비

7.8Km    14442     2023-12-13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504

충주 이상급 신도비는 충주시 주덕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강공 이상급(1571∼1637)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이상급은 선조 39년(1606) 문과에 급제한 후 형조 좌랑, 평안도 도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벼슬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인조반정 후 다시 단천 군수, 연안부사 등을 역임하고 병조 참지가 되어 군비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왕을 모시다가 강화도로 가던 중 적병에게 피살되었다. 사후에 이조판서의 벼슬로 추증되었고 순조 때 [충강공]의 시호를 받았다. 8각 석주형의 이 신도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비의 받침돌은 8면인데 6개 면에는 꽃무늬를, 마주 보는 두 면에는 동물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받침돌 윗면에는 큼직한 꽃잎을 새겼고 그 위에 8각 기둥형의 비신을 세웠다. 이 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 몸체와 머리 부분인 이수는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다. 이수의 앞, 뒷면으로는 두 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비신이 8각형인 점에서 형태가 특이하고 조각 수법이 뛰어난 작품이다. 바로 옆에 푸르른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그의 기상을 나타내는 듯하다.

충주 박팽년 사당

충주 박팽년 사당

8.5Km    18253     2024-06-20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참샘길 113

박팽년 사당은 충주시 참샘길에 있다.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충신인 박팽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1775년에 창건되고 1968년에 충주시에서 새로 복원한 것이다. 박팽년은 1447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의 관원이 되어 신숙주, 유성원 등 젊은 학자들과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단념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김질의 밀고로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되었고,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세조의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과 함께 참형을 당하였다. 이 사우는 전면 3간 측면 2간의 목조 8작 집으로, 흙과 돌을 섞어 담장을 둘렀으며 입구에 일각대문이 있다. 사당 건물 정면에는 솟을삼문의 충신문이 있는데 중앙칸에 박팽년의 충신지문 편액이 걸려 있다. 민가 가운데에 있으며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낮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상시 개방 하고 있으나, 내부 관람은 문의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에만 개방한다.

음성 수정산성

8.5Km    0     2023-11-06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약현길38번길 13-13

수정산성은 전해오는 기록마다 명칭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신 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산성’이라 하고, 『대동지지』에는 ‘운성’, 『호서승람』에는 ‘수정산성’이라 하였다. 성의 서쪽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성벽의 높은 곳은 7m가 넘고, 나머지는 대략 2∼3m 정도의 높이이며 폭은 4m 정도이다. 성벽의 바깥으로 사각형식으로 덧붙여 만든 성벽인 치성은 3곳이 아직 남아있다. 성벽을 따라 돌 수 있게 낸 길인 회곽도가 4∼5m 폭으로 있으며, 성벽의 바깥쪽에는 돌을, 안쪽에는 흙과 잡석을 채워 그것을 한단한단 층을 이루며 쌓아 올렸다. 성내에 1곳의 건물터가 있으며, 산성의 축성기법이나 유물들로 보아 8∼9세기 초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청덕사

청덕사

8.7Km    14989     2024-07-18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한불로청덕2길 14

청덕사는 조선 순조 31년(1831)에 태조 이성계의 첫째 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와 대군의 장자인 봉령후 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건립되었다. 이방우는 고려 공양왕 초에 밀직부사로 부친이 혁명의 뜻이 있음을 알고 함흥에 은거하다가 죽었다. 후에 진안대군에 추봉 되었으며, 해주의 지청사에 배향되었다. 청덕사로 현판을 붙인 것은 대군이 청빈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청덕’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청덕사’란 편액이 걸려있다. 내·외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으며, 외정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외정 안에 1933년 후손 이태호가 인도교를 창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교리를 적어 세운 인도교창립기념비가 있었는데, 일제 때 일인들이 이곳을 참배했다고 하여 광복 후 주민들에 의해 일부가 파손되었던 것을 2011년 철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