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농촌체험휴양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유정농촌체험휴양마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유정농촌체험휴양마을

유정농촌체험휴양마을

.0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남양길 12

마을 어디서든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침 안개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지역이다. 각박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어우러져 지낼 수 있는 유정 농촌체험 휴양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유정권역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장수의 특산품인 사과 판매는 물론, 사과 따기, 사과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다양한 사과 관련 체험을 할 수 있고, 산기슭에서 나는 산나물을 주요 재료로 하는 산채비빔밥 만들기 체험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민박도 가능하다. 이른 아침 운무가 춤추고 넉넉한 인심과 따뜻한 농촌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의사전해산 추모비

1.0Km    2030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92

의사전해산추모비는 전해산 호남의병장의 애국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장수군 향교유림들이 1972년 11월 17일 번암초등학교 앞에 건립하였다. 이후 2014년 6월 16일에 전해산기념관이 준공되면서 의사전해산 추모비는 이전되었다. 전해산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기하여 해산한 군인과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인 대동 의병단을 조직했다. 이후 심남일, 김영엽, 오성술 등과 호남 의병의 연합조직을 결성하였으며 1908년 겨울 호남동의단을 탄생시켰고 대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전라도에서 활동하던 11개 의병부대가 참여한 큰 규모의 부대였다. 순창, 고창, 정읍 함평, 영광 등 전남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였고 71회 전투에서 수 백 명의 일본군을 살상하였다. 일시 귀향 중 왜병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910년 7월 19일 31세의 나이로 옥사하였으며, 그 해 9월 8일 시신이 번암면 원촌마을 생가로 운구되자 부인 김해김씨도 자결했다. 전해산기념관에는 추모비는 물론 전해상 의병장의 영정을 모시는 산해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장재영가옥

4.4Km    1575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원노단길 15

*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집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전라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집이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솟을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에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오량집이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맨 끝이 부엌이고, 앞쪽으로 찬방이 있다. 주춧돌은 직사각의 자연석 화강암을 사용하였고, 토방은 자연석을 중첩하여 쌓았다. 안채의 정면 앞쪽에 있는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 오량집이다. 기둥은 두리기둥[圓柱]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첫 칸의 지붕이 다른 것보다 휠씬 낮은데 이것은 후에 단것이기 때문이다. 기둥도 이 칸만은 각기둥이다. 다음 칸은 방이고 이어서 대청, 건넌방 순이다. 사랑채 정면에는 솟을대문이 있다.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며 전체가 널빤지로 구성되어 있다. 공기가 잘 통하도록 지표면으로부터 40㎝ 높이에 바닥을 널빤지로 깔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고 솟을대문이다. 왼쪽에는 변소와 헛간이 있고 오른쪽에 문간방이 있다. 문 앞 양쪽에는 너비 56㎝, 길이 47㎝, 높이 40㎝의 화강암 노둣돌[下馬石]이 있는데, 원래 하나는 집 앞 도로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 철종 때에 에 건립된 건물 *

본래 문간채 오른쪽으로 곳간채가 보이는 정면에 솟을대문 형식의 중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중간에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곳간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팔작지붕이다.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사병진삼월이십팔일을유오시(崇禎紀元後四丙辰三月二十八日乙酉午時)”라고 기록되어 있어 1856년(철종7)에 건립된 건물임을 알 수 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창덕암(남원)

창덕암(남원)

4.5Km    18518     2024-09-04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중절길

창덕암의 창건은 1933년에 김보덕화 여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당시부터 부녀자들 사이에 영험 있는 기도처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절에서 전하기로는 창건 이전에도 움막 형태로나마 절이 있었다고 하므로 보기에 따라서는 1933년의 불사를 중창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것은 지금 절에 전하는 삼층석탑이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이므로 절의 역사를 적어도 석탑이 세워진 조선시대까지 올려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절은 조선시대 이래 나름대로 면면이 법등을 이어왔던 것이다. 1997년에는 대웅전을 헐었는데 예전 삼성각 자리에다 새로 지을 계획이며, 그전까지 있었던 삼성각을 헐어버리고 대웅전 자리에 새로 지었다. 대웅전과 삼성각을 서로 자리를 바꾸어 새로 짓는 셈이다. 최근에는 요사도 새로 지었다.

번암장 (1, 6일)

번암장 (1, 6일)

4.5Km    748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신평로 317-1
063-353-2303

번암장은 전라북도 장수군에 위치한 장으로 1일, 6일에 열린다. 산세가 험준하고 공기 맑고 물 좋은 오염 안된 자연 그대로 보존된 고랭지로서 약초와 산채가 다량으로 채취하여 판매하고 인근 남원 상인들이 번암에서 생산되는 곡물류 및 산채류 등 특히 약초생산 물량을 사다가 전국 각지로 판매하며 5일장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남원 황산대첩비지

남원 황산대첩비지

4.6Km    27322     2024-08-26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남원 황산대첩비지는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가 있던 자리이다. 금강 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고려군은 이성계를 최고 지휘관으로 삼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 이에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완전히 섬멸하였다. 선조 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의 글, 송인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부수었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왜구의 침탈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는 오른쪽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고, 오른쪽 뒤편에 파비각이 있다. 파비각 안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흔적으로 파손된 대첩비가 있다.

동편제탯자리

동편제탯자리

4.6Km    2165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여류 명창 박초월의 소리의 고향이다. 예로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곳(운상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순조 때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 선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 판소리의 표현 영역을 확대시키는 등 다양한 음악 기교를 사용함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 중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은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송흥록 선생으로부터 출발된 동편제는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뒤에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은 아우 송광록과 손자 송만갑이 대를 이어온 이후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광범위한 애호를 받는 예술로 부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무덤에서는 ‘내 소리를 받아 가라’는 귀곡성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부터 비전마을에 국악 성지가 조성되며 송흥록 선생 생가와 박초월 명창 고택이 복원되었다.

신기마을

신기마을

4.6Km    0     2024-08-06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운봉신기길 103

신기마을은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 후 인동 장씨 장덕복이 이곳에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의 기운이 이어지는 명당자리로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 신기마을은 지형학적으로 와우형, 즉 소가 누워 있는 평화로운 정경이라고 한다. 초봉에는 운봉의 갑부 박희옥이 만든 별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명창 소리꾼들을 불러 판소리를 감상하고, 또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국악의 성지

국악의 성지

4.6Km    19414     2024-06-1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69

국악의 성지는 민족의 혼이 담긴 전통예술인 국악을 더욱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지리산 기슭 운봉읍에 조성된 박물관이며 전시관이다. 이곳에는 동편제를 완성시켜 가왕의 칭호를 받은 송흥록 선생의 생가와 함께 국악 전시체험관, 독공실, 야외공연장, 국악인의 묘역, 사당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기악, 정악, 명창들의 기증 유물 등이 전시되어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음악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남원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가 될 만큼 예로부터 국악의 산실이었으며 오늘날 동편제 판소리를 정형화한 유서 깊은 곳이다. 국악의 성지에서는 보고 듣고 연주하는 생생한 국악체험 프로그램과 국악기 체험을 할 수 있고, 사랑방식의 공연장에서 열리는 국악 공연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대중 친화적인 공연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큰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왕 송흥록 박초월 생가(송홍록생가)

가왕 송흥록 박초월 생가(송홍록생가)

4.7K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

가왕 송흥록 박초월 생가는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비전마을에는 동편제의 태자리가 있다. 서편제와 더불어 판소리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동편제가 이곳에서 첫 소리를 냈다. 동편제 창시자로서 판소리계에서 최고의 칭호인 가왕으로 불리는 송흥록 명창이 이곳 비전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200년 판소리 역사 속의 허리 역할을 단단하게 해낸 인물로 꼽힌다. 송흥록 생가 옆에 국창 박초월 선생의 생가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