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19.4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에 위치한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괄 문서들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서적과 문서들로 총 12권 10 매인데,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원 관계 서적이나 문서들이 희귀한 편인데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를 두루 구비하고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며, 保奴案, 保直案은 院奴와 서원의 지숙을 담당하던 院直을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배정된 保인 保奴, 保直의 명단으로 19세기에 서원에도 保가 배정되었음을 알려준다. 古文書 중에는 1) 서원 接人의 잡역을 금해줄 것을 진정하여 수령으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2) 서원 儒案에 평민이 入錄되고 있으며 유생의 확보가 재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3) 서원 유생을 수령이 着定하고 그 差帖도 수령이 발행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있어 18- 19세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자료이다.

관곡서원

19.4Km    2024-11-06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매봉 밑자락에 있는 관곡서원은 1820년(순조 20)에 지방 유림들이 최윤덕, 이형남, 이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8년 후손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가 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관곡서원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곡서원 인근에 덕재산(487.1m)의 옥녀봉, 매봉이 있어 서원을 둘러 본 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좋다.

장안산군립공원

장안산군립공원

19.4Km    2024-10-23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장안리

높이 1,237m의 장안산은 1986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산용소와 방화동, 지지계곡 지구로 나뉘어 있다. 기암괴석과 원시수림이 울창하고 심산유곡에 형성된 연못과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관광지로 덕산계곡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계곡 26개소 및 윗용소, 아랫용소 등 7개의 연못, 지소반석 등 14개의 기암괴석, 5군데의 약수터 등 주요 경관이 울창한 수림과 어울려 수려함을 이루고 있다. 특히, 장안산의 또 하나의 비경은 산등에서 동쪽 능선으로 등산로를 따라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이다.

원흥석불입상

19.6Km    2024-11-06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장수군 산서면 마하리 팔공산 기슭에 있는 원흥사 법당 안에 있는 높이 4m의 거대한 석불 입상이다. 원래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04년 이 마을에 살던 이처사 부부가 꿈을 꾼 뒤 불상을 만들어 모셨으며, 그 뒤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현재의 원흥사를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살찐 모습이며 눈과 입이 작은 편이나 코는 큰 편이다.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으며 3개의 주름인 삼도는 분명하지 않다. 신체는 어깨와 하부의 너비가 같아 둔한 느낌을 준다. 양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는데 가슴이 거의 노출되었고, 양 소매와 배 아래로는 형식적인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손은 양 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으며, 무릎 이하는 땅속에 묻혀 있다. 머리 위에 모자가 얹혀 있었다 하는 이 불상은 손 모양이 특이하며 전체적인 조각 기법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흥사(장수)

원흥사(장수)

19.7Km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백제 무왕 때 창건한 팔성사의 일곱 암자 중의 하나이며, 고려 중기에 창건되어 조선 초기에 폐허화되었다고 한다. 절의 폐허 후에도 이곳에는 높이 4m, 둘레 3m의 거대한 미륵입상이 남아 있었다. 노천에 있던 이 불상은 1904년에 원흥 마을에 살았던 이 처사 부부가 현몽한 뒤 불당을 지어 봉안하였다. 그 뒤 부인은 출가하여 운선이라는 법명을 얻어 원흥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그 뜻을 이어받아 현재의 원흥사를 이룩하였다. 원흥사의 문화재인 원흥석불입상은 몸에 비해 얼굴이 크고, 눈과 입은 작고, 코가 크며 귀는 길다. 목은 매우 짧고 양손을 가지런히 배에 대고 옷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다. 본래 머리 위에 관을 쓰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불상은 크기와 비례, 조각수법 및 형태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법당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1984년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높이는 4m의 원흥석불입상이 있다. 사찰 주변으로 어필각, 압계서원, 호룡보루 등 연계 방문할 만한 문화유적지가 위치해 있다.

몽펠리에 카페 레스토랑

몽펠리에 카페 레스토랑

19.8Km    2024-01-29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원대흥길 127-21

2011년 11월에 오픈한 몽펠리에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2022년 3월에 야외 유리하우스 웨딩홀과 8월에 베이커리 카페를 오픈하였다. 웨딩홀은 하루 한 팀의 여유로운 결혼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족 외식이나 돌잔치, 각종 모임에도 적합하다. 넓고 예쁜 정원에 주변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기 좋다. 식전 빵에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 피자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분수가 있는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으로 분위기 내기 제격이다.

송광산장

송광산장

19.8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19
063-243-8154

현지에서 직접 키운 토종닭과 각종 약재 등을 사용하여 정갈하고 깨끗한 최고의 맛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 식당은 특이하게 테이블 밑에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구조로 되어있어 여름에 찾기 좋다.

완주상관편백숲

완주상관편백숲

19.9Km    2024-09-05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상관면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에는 1976년에 조성된 86ha 규모의 산지에 10만여 그루의 편백나무, 삼나무, 낙엽송이 식재된 편백숲이 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숲은 전주한옥마을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여름 한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나무가 빼곡하다. 사람들은 이곳에 돗자리를 깔거나 텐트를 치고 하루종일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만끽할 수 있다. 숲이 만들어낸 청량한 그늘이 잔잔하고 아늑하다.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문태서, 박춘실 의병대장 전적비

문태서, 박춘실 의병대장 전적비

19.9Km    2024-09-06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문태서 호남의병대장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조인되자 덕유산을 거점으로 호남의병단을 결성하여 신출귀몰한 병법으로 덕유산 일대에서 500여 회 왜병을 섬멸하였고, 이원역 습격작전, 장수주둔 일본수비대 기습작전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고향 안의에서 왜병에 체포되었다가 경성형무소에서 34세로 옥사했다. 박춘실 호남의병선봉장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조인되자 의병 50여 명을 이끌고 남덕유산에 들어가 토옥동 어구 양악에서 호남의병장 문태서장군과 호남의병단을 조직하고 장수, 무주, 진안, 안의, 함양, 거창 등지에서 유격전을 펼쳐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1913년 11월 토옥동 전투에서 결사항전했으나 일군에 체포되어 대구로 이송, 감옥을 부수고 동지 100여 명을 탈옥시켜 투쟁케 하는 등 끝까지 굴하지 않다가 1914년 6월 3일 40세에 옥중에서 자결했다. (출처: 장수군 문화관광)

화산서원(진안)

화산서원(진안)

19.9Km    2024-09-11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백삼로 30-1

진안군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방촌 황희의 영정을 안치하고, 그와 그의 자손인 황보신, 황발 등을 배향하고 있는 장수 황씨의 사당이자 사원이다. 황희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명재상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화산서원은 서원의 강당에 있는 현판들의 기록에 의하면, 192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고 1970(경술)년 2월에 중수되었다. 서원은 평평한 대지 위에 긴 네모꼴의 담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담 안은 남북의 두 구역으로 나뉘어 뒷부분 뒷담 쪽 중앙에 남향의 사당이 있고, 그 앞 왼쪽 가, 앞부분 동쪽 가에 서향의 강당이 있으며, 양쪽은 내삼문으로 연결된다.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와가로서 정면 중앙에 화산서원의 현판이 붙어 있고, 방에는 황희의 영정과 위패, 황보신과 황징의 위패 등이 모셔져 있는데, 황희의 영정은 지방 유형 문화재 12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