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랜드눈썰매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모악랜드눈썰매장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모악랜드눈썰매장

15.1Km    2024-12-04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랜드는 겨울에 눈썰매장, 여름 물놀이장을 운영하는 사계절 썰매장이다. 썰매장은 왼쪽이 성인 슬로프 오른쪽이 유아 슬로프로 나뉘어 있고, 유아슬로프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를 안고 탈 수 있다. 성인 슬로프는 오른쪽 무빙워크를 이용하거나 왼쪽으로 걸어서 올라가면 된다. 성인 슬로프 옆에는 눈놀이장도 있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장갑, 모자 등 방한도구는 필수로 챙겨가야 한다. 눈썰매 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이킹, 미니바이킹, 회전목마 등 소규모 놀이동산이 있다. 간단한 스낵과 편의점, 커피를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도 있으며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야외테라스도 있다.

모악산유스호스텔

모악산유스호스텔

15.1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60-20
063-548-4401

모악산 유스호스텔은 1,4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금산사 문화유적지, 드넓은 금산사 계곡 일원의 모험 활동장, 각종놀이시설의 체험 활동장인 사계절 썰매장 모악랜드, 천혜의 삼림욕장인 모악산 등산로, 일제시대 역사현장인 금광동굴 등의 다양한 체험 활동장과 더불어 현대적 감강의 쾌적한 숙소, 조명 및 음향/영상 시설이 완비된 강당, 완벽한 위생시설의 식당, 감나무 숲속의 캠프화이어장과 더불어 청소년의 건전육성을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는 청소년지도자들이 21세기를 선도하는 수련시설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헤이그라운드

헤이그라운드

15.1Km    2025-01-1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60-20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 도립공원 입구에 있는 세련된 분위기의 감성 카페이다. 넓은 잔디 마당과 모던한 건물을 갖추고 있으며, 실내외에 넓은 간격을 두고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쾌적하게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인상적이며, 다양한 종류의 베이커리와 디저트를 건강한 레시피로 제조하여 판매한다. 카페 자체 주차장이 있으며, 도립공원 주차장을 이용해도 된다.

금산교회

15.3Km    2024-05-2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가 지은 한옥교회이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향수원

향수원

15.3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제상로 31

향수원은 전북 완주군 봉동의 오리주물럭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으로 테이블과 좌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이 있다. 양념이 잘 밴 오리주물럭의 감칠맛에 콩가루의 고소함을 더한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오리주물럭 외에 오리훈제도 맛볼 수 있다. 식당 앞에 주차장이 있다. 주변에 둔산공원, 생강골공원, 중앙공원이 있다.

방길낚시캠핑장

방길낚시캠핑장

15.4Km    2024-06-12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신덕면 삼길1길 155-77

전주에서 옥정호 가는 길에 방길리가 있고 마을 안쪽에 크지는 않지만 풍치가 좋은 방길저수지가 있다. 방길낚시 캠핑장은 바로 이곳 방길저수지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호수변 끝자락이 캠핑장과 연결되어 있고 저수지로 흘러드는 물길이 캠핑장 중간을 지난다. 때문에 캠핑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저수지와 주변 산세가 일품이다. 이곳 캠핑장은 일반야영장구역과 카라반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텐트 데크는 가로 5.5m 세로 5m와 가로 6m 세로 5m 두 종류가 있고 전기 사용이 가능하며 6인용 야외테이블 및 파라솔도 제공된다. 카라반은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밥솥과 인덕션을 갖추고 있으며 기본 세면도구를 제공한다. 저수지와 근접한 카라반 문 밖 데크에 앉으면 호숫가 프라이빗한 별장에 와 있는 것처럼 만족스럽다. 모든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고 텐트 사이트 동계 장박도 가능하다. 주변에 임실치즈테마파크, 아쿠아틱파크 아마존이 있어서 연계 관광이 가능하다.

낙양사

15.4Km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월명사(김제)

15.4Km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7길 128-27

김제의 월명사는 1957년 승려 이영기가 창건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사찰은 금산사 입구 제비산 중턱에 자리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앞으로는 금산저수지가 있어 주위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제비산 중턱 경사진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 용화전이 있으며, 양 옆에 선방과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 아래에 염불당이 있고, 그 옆에 새로 지은 양옥 요사채가 있다.

완주 반려동물놀이터

15.4Km    2024-03-28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완주산단7로 11
063-290-3220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 위치한 반려동물 놀이터이다.

추수경장군묘역

15.5Km    2024-05-03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추동안길 14-7

추수경 장군은 명나라 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청하, 호는 세심당이다. 명나라 귀주성 성덕산하 오현군 칠성동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나고 문무를 겸비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명나라의 무강자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의 신종에게 청원하여 이여송의 원군을 출병케 하였고, 자신도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총병아장으로 다섯 아들과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함께 참전하였다. 1593년 2월 곽산 대첩을 시작으로 평양성 탈환, 개성ㆍ한양 수복 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고, 전주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전주사고를 끝까지 지켰다. 명나라 군사들의 환국 시 조상의 나라에 남기로 하고 전투에 참여한 5명의 아들과 함께 완주군 봉동읍 추동에 남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추동이라는 마을 이름도 추수경 장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죽은 뒤에 충장공의 시호를 내리고 호성공신·완산부원군으로 봉하였다. 무덤 앞에 있는 비는 1973년에 새로 세운 것인데, 원래의 비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제각으로 썼던 [봉양제]라는 건물은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터에 주춧돌과 정문만이 남아 있다. 훼손된 묘역은 2004년 11월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완주군에서 신도비와 사당 봉양사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