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Km 2025-04-10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275
두타몰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이다. 다양한 브랜드의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복합 쇼핑 공간이다. 다양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을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젊은 층을 겨냥한 트렌디한 매장이 많아 쇼핑의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가 있어 쇼핑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합하다. 쇼핑과 문화, 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9.4Km 2024-12-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0가길 14
의류 상가가 꽉꽉 들어찬 빌딩들이 즐비한 동대문, 이제는 아시아 최대의 의류상가 지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곳이 동대문 주변 지역이다. 이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뒤에는 동대문 원단시장, 평화시장과 인근에 자리 잡은 시장 사람들이 있었다. 30여 년 전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마음을 녹여주던 곳이 지금의 닭한마리 골목이었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8, 9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기업은행 건물을 끼고 좌회전하면 일방 통행길이다. 그 길 오른쪽에는 오늘도 동대문 종합시장과 인근 시장으로 드나드는 물품을 나르는 택배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 길 중간쯤 오른쪽에 보면 덕성각이라는 중국요리집이 보이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닭한마리집들이 나온다.
그 골목 닭한마리집들은 짧게는 5년부터 길게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식당이 있기 전 개인 집에서 닭칼국수를 팔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골목 닭한마리집의 역사는 30년 보다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당시 닭칼국수를 팔던 할머니집을 28년 전에 인수해서 지금까지 '닭한마리'를 팔던 식당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머니 한 분이 지금의 '닭한마리'식의 요리가 아니라 닭고기를 넣고 칼국수를 끓여 팔았다고 한다. 기와 얹은 한옥집 마루와 방에서 손님을 받았다. 지금의 사장은 그 집을 고스란히 인수해서 당시 마당이었던 곳에 홀을 만들고 식탁을 놓았다. 지금 남아 있는 집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집은 '진옥화 닭한마리'이다. 그러나 식당에 불이 났고 2009년 2월 재건축 하였다.
이 집 또한 처음에는 지금의 '닭한마리'식의 요리가 아니라 '닭칼국수'를 팔았다. 그러니까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요리의 원조는 닭칼국수인 셈이다. 지금도 이 골목 식당 간판이나 현관, 유리창에는'닭칼국수'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또한 '닭한마리'와 곁들여 먹는 메뉴에 칼국수 사리가 남아 있는 것도 그 증거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칼국수에 닭고기가 들어간 것에서 닭한마리를 육수에 넣고 끓이는 닭요리에 칼국수가 부재료로 들어가는, 주객이 전도된 요리이기도 하다. '닭한마리' 요리는 집집마다 거의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닭고기를 찍어먹는 소스의 맛과 육수, 선택해 넣어 먹을 수 있는 부재료 등이다. 그래서 이 골목 집집마다 소스와 육수의 비빔을 반만 공개한다. 나머지는 비밀이다. 소스의 주재료인 고춧가루가 좋아야 한다. 맵기만한 고춧가루가 아니라 매우면서도 풍부한 미감과 감칠맛을 머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도 엄나무, 인삼 등 집 마다 다르다. 큰 양푼에 육수 가득 붓고 그 속에서 닭한마리를 통째로 끓인다. 닭은 살짝 삶아서 나오지만 식탁 위 간이 가스레인지 위에서도 푹 끓이는 게 좋다. 왜냐하면 감자와 떡, 인삼, 대추, 버섯 등 부재료들의 맛이 우러나 뒤엉켜 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끓고 나면 고기와 부재료를 건저 먹은 뒤 남은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것으로 닭한마리의 만찬은 끝난다. 지금도 이 골목 단골의 반 이상이 동대문 주변 시장 사람들이다. 소문이 일본까지 퍼져 일본 여행자들도 꽤 많이 찾는다. 또한, 맛골목을 좋아하는 젊은 연인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팔품을 팔아 이 골목을 찾는다. 그들의 입맛에 30년 전 '닭한마리'요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9.4Km 2024-12-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0가길 20 (종로5가)
한옥갈비는 동대문 닭한마리 먹자골목 내에 자리하고 있는 소갈비 구이 전문 고깃집이다. 종로5가역(1호선)과 동대문역(4호선), 종로6가 종합시장 근처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양념소갈비와 돼지왕갈비, 꽃등심 등 소갈비메뉴 뿐만 아니라 생삼겹살, 쌈밥, 돌솥비빔밥 등 각종 고기구이류와 식사류가 준비되어 있다. 매장 내부는 규모가 크고 인테리어가 깔끔해서 단체 모임 식사나 회식 장소로도 제격이다. 밑반찬은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푸짐하게 올라오는데, 그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고기와 곁들여 먹기 좋다.
9.4Km 2025-04-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0가길 18 (종로5가)
02-2275-9666
동대문 종합시장 먹자골목에 위치한 진옥화할매원조닭한마리 본점은 1978년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생후 35일 된 신선한 영계만을 사용하여 요리한다. 메뉴는 닭한마리 단일메뉴만을 판매하고 있다. 끓여 나오는 육수가 진하고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떡사리, 파사리, 감자사리, 국수사리 등 다양한 사리를 추가하여 먹을 수 있다.
9.4Km 2025-05-28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
010-5508-0089
중곡동 가구거리는 1960년대 형성된 곳으로, 어린이 대공원 후문에서 군자로 사이에 리바트, 삼익가구 등 대형업체의 대리점부터 중소 가구업체까지 65여 개 정도의 숍이 늘어서 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가구를 비교할 수 있는 중곡동 가구거리는 일반적인 가구는 물론 고급 가구, 사무용 가구, 학생용 가구 등 다양한 디자인과 용도의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가구점마다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편리한 쇼핑을 할 수 있다.
9.4Km 2024-12-31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37-7
02-720-2722
삼청동에 자리 잡은 갤러리 카페 3안은 현대와 고전적인 감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1920년 당시에 지었던 목재와 현대 건축 간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갤러리와 카페의 조화 속에서 사람에 의해 문화가 만들어지고 사람을 통해 소통되어 일상생활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개성 있고 특색 있는 현대 미술과 신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스페셜티 원두를 기본으로 두 가지의 맛을 선택할 수 있고 디저트와 음료도 수제로 제조하고 있다.
9.4Km 2025-06-2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전태일(1948~1970)은 대한민국의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이다. 1960년대 중반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시다, 미싱사,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으나 정부의 탄압과 사회의 냉대에 분노했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기로 한 날 집회, 시위가 경찰에 의해 막히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焚身)으로 항거하였다. 메디칼센터(현, 국립의료원) 응급실로 이송하여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다음날인 14일 오전 1시 30분에 임종하였다. 이 동상은 당시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재단사 전태일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2005년 서울시는 청계천로 평화시장 인근 일대에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고, 청계천 버들다리 내에 전태일 기념 동상과 동판을 설치했다. 2013년에는 전태일 분신장소(신당동 평화시장 A동과 B동 사이 대로변) 일대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선정 근거는,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며 신음하던 노동자의 삶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계기이자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신호탄이 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9.5Km 2025-04-07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창경궁(昌慶宮)은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옛 수강궁에 창건한 궁이다. 창경궁은 원래 1418년(세종 즉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이다. 이후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인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창경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중건하였으며, 1830년(순조 30)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4년 뒤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1907년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심하였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한 후 궁궐 경내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 궁궐의 모습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경궁은 남향으로 있는 다른 궁궐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