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Km 2025-03-13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과천 정부종합청사 옆에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과천 관문 은행나무 길 또는 과천 청사 은행나무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가는 왕복 4차선 도로변,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래미안에코팰리스까지의 길이 은행나무 길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은행나무 길에는 메타세쿼이아 길도 있어 더욱 깊은 운치를 자아낸다.
7.1Km 2025-07-22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대치동)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심 속 예술이 있는 감성공간’이라는 비전 아래 다양하고 수준 높은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강남 도심 속의 미술관이다. 대형 미술 전시공간으로 로비 라운지, 아트샵, 카페, 세미나 룸인 오픈살롱, 컬처살롱, 교육 공간 에듀살롱, 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졌다. 어렵게 느껴졌던 예술을 마이아트뮤지엄이 편안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누구나 손쉽게 예술적 품격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7.1Km 2025-10-23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왕릉이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95년 광주 학당리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4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묘역은 현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겼다. 이후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재궁(梓宮)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여 1593년 7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의 왕릉이다. 중종은 1544년에 세상을 떠나 다음 해인 1545년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현 고양 서삼릉 내 철종의 예릉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능의 이름을 희릉과 함께 정릉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릉은 1562년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문정왕후는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논의하여 중종의 능을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는 문정왕후 본인이 중종의 묻히기를 원해서였다. 그러나 옮긴 정릉이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문정왕후는 세상을 떠난 후 정릉이 아닌 현재 서울 노원구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 왕비(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은 모두 따로 흩어지게 되었다. 정릉은 선릉과 마찬가지로 1592년 임진왜란 때 능이 파헤쳐져 재궁(梓宮)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고, 1593년 8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7.1Km 2024-09-13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606번길 10
031-706-9880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자산어보는 일식, 한식 전문점으로 각종 활어회 코스나 일식 정식부터 대구탕, 민어탕, 알탕 등 식사류까지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고 있다. 갓 잡은 생선과 신선한 재료만을 엄선하여 고객에게 제공한다. 싱싱한 청 세꼬시, 돌문어를 비롯한 다양한 메뉴를 미역에 싸 먹기도 하고 가자미식해와 함께 싸먹으면 그 맛이 별미이다. 개별 룸이 준비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에도 좋다.
7.1Km 2024-05-2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탄천로 181
감미옥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자리 잡고 있다. 대표 메뉴는 가마솥에 끓인 설렁탕이다. 이 밖에 국내산 한우로 만든 돌판 수육을 비롯해 접시 수육, 꼬리탕, 도가니탕, 사골 갈비탕을 판다. 음식점은 수도권 지하철 수인분당선 야탑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주변에는 현대 어린이 책미술관, 성남 큐브미술관이 있다.
7.1Km 2025-07-04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
영장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고려 현종 19년(1028)에 창건하였으며, 그 뒤 폐허가 된 것을 태조 4년(1395년) 담화가 태조의 명으로 중수하였다. 현종 15년(1674년)에는 현종의 공주 명혜와 명선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주의 능 근처에 있는 절을 중창하게 하였다. 당시의 역사를 맡은 승려는 금강산 일축 존자였으며, 중창 뒤에는 봉국사라 하였다. 봉국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문장에 뛰어났던 승려 백곡 대사 처능(1617~1680)의 <백곡대각등계록>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절은 1674(현종 15)년 요절한 현종의 두 딸 명선, 명혜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비의 주선으로 금강산의 승려 축존에게 명하여 공주의 무덤이 있는 바깥 동리인 이곳 성부산 아래에 절을 짓게 하여 봉국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봉국사 대광명전은 그 후 6·25동란으로 퇴락하여, 1958년 비구니 법운이 중수하였고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해체 복원하였다.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지닌 주심포 양식의 아담한 건물이다.전각 내부의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불단에 안치된 불상은 대광명전의 주존이어야 할 비로자나불이 아니고, 아미타불인데 이 불상은 창건 시인 조선 후기의 불상 양식을 보인다. 또한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된 이 전각은 본래의 명칭의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