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Km 2024-05-30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는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제출되었던 서한을 기념하는 비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 유림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해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공헌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희사금과 국민의 성금 등으로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 비를 건립하였다. 세계평화회의에 제출된 서한은 [파리장서]로서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이다. 곽종석, 김복한을 비롯하여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이 장서를 김창숙이 상해로 가져가도록 하였고 이를 다시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되었다. 또한,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과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다. 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유림을 체포 투옥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제1차 유림단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 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장충단공원에 처음 기념비가 세워진 이후 1977년 경상남도 거창, 1997년 대구 월곡역사공원, 2008년 전라북도 정읍사공원, 2014년 경상북도 봉화군 송록서원 등 곳곳에도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3.3Km 2024-02-07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17길 295
6호선 버티고개역 1번 출구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내부 인테리어가 이국적이고 메뉴판도 모두 영어로 제공되어 마치 현지 식당에 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직원들도 모두 외국인이라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 준다. 이탈리안 홈스타일의 파스타와 피자를 즐길 수 있고, 리소토와 라자냐에서도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전용 주차장은 없지만,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어 차를 가지고 방문하기 편리하다.
3.3Km 2024-05-07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78-1
이화만두는 지하철 5호선과 7호선 군자역 6번 출구 부근 서울어린이대공원 방향에 있다. 상가 건물 내에 주차장은 따로 없다. 이화만두는 SNS를 통해 줄 서서 먹는 만둣집으로 유명하다. 준비된 재료와 만두가 모두 소진되면 마감한다. 대부분 마감 시간 전에 소진되어 일찍 문을 닫는다. 1인당 10팩으로 구매량이 제한되어 있다. 대표 메뉴는 김치만두와 고기만두이다. 김치만두는 적당히 매콤하게 알맞게 익은 김치 맛이 특징이고 고기만두는 고기 특유의 잡내가 없다. 만두 속은 고기, 대파, 양파, 당면이 주를 이루고 직접 손으로 빚은 얇은 만두피로 만든다. 주변에 서울 어린이대공원, 아차산생태공원, 뚝섬유원지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3.3Km 2024-07-19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5길 46
서울 종로구 창신동 언덕에 위치한 테르트르카페는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뷰를 갖춘 카페이다. 카페 단독 건물의 3개층과 루프탑 어느 자리에서나 전망이 뛰어나서 서울의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와 남산타워까지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다. 낮에도 좋지만 해 질 녁이나 밤에도 서울의 모습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언덕 위에 있고 주차장이 없어서 접근성은 좋지 않지만, 전면 통창과 루프탑에서의 뷰는 역대급인 카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입장 후 BAR에서 선 주문 후, 2층이나 3층 또는 루프탑으로 이동하여 차를 즐기면 된다. 음료와 디저트를 많이 이용하지만 맥주, 글라스 와인 등도 판매하고 있다. 대학로나, 한양도성, 낙산공원과 연계 관광이 가능하다.
3.4Km 2024-12-13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8길 34
02-963-2290
모닥불은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샤부샤부 전문점이다. 과학기술원 정문 앞에서 가스 주유소를 끼고 약 300m를 내려오면 보이는 빨간 벽돌집으로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전체가 음식점이다. 아래층은 주로 외국인이 많이 이용하고 2,3층은 방으로 단체손님을 받으며 특히 VIP손님을 위한 지상 3층은 최상의 음식과 양질의 서비스를 고객님께 제공하고자 하는 모닥불의 자랑이다. 징기스칸, 국수전골, 상추 샤부샤부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3.4Km 2024-08-23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일제 강점기 시절 교육자이자 애국 계몽가인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 내 남문과 동문 사이 위치에 있다. 서울 오산 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의 공로를 표창하고 시은을 보답하기 위해 동교 관계자와 졸업생들이 이승훈 선생의 동상 건립을 위해 동상 건설 준비회를 조직하고 기부금을 모집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사금과 각계 성금 1,500만 원으로 민복진 조각가에 의해 1974년 10월 3일에 완공되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1864~1930)은 정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40대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1907년 재산을 털어 오산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기르는 데 힘썼고 독립운동에 몸 바쳐 1922년부터 세 차례 수년간의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기독교 신앙에 몰입하여 복음 전도와 복지 운동, 민립대학 설립 추진, 언론 창달 등에 힘을 쏟았다. 평생을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교육 운동에 헌신한 그는 내 유해를 땅에 묻지 말고 골격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쓰게 하라 유언하고 눈을 감았다. 1962년 이승훈 선생에게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3.4Km 2024-11-27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1973년 어린이대공원 내(동문 인근 위치)에 건립한 동산이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육탄으로 적의 진지를 공격해 승리로 이끌었던 강승우 소위와 오규봉 일병, 안영권 일병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들 3용사는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 예하 제1중대 제1소대 소속으로 1952년 10월 철원평야 일대 중부 전선의 전략 요충지인 백마고지에서 TNT와 박격포탄, 수류탄 등을 휴대하고 육탄으로 돌진하여 적의 기관총 특화점을 격파한 후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고지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953년 7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강승우 소위는 중위로,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하사로 추서했다.
3.4Km 2024-06-11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8
일성이준열사동상은 이준 열사의 애국 항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장충단 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이준 열사는 1859년 함남 북청 출신으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1898년 11월의 만민공동회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04년 대한보안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획득을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일진회에 대항하여 공진회를 조직하고 친일적인 대신들을 규탄했으며 애국계몽 운동에 힘썼다. 1907년 광무황제로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밀령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도착하여 황제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일제의 한국 침략을 폭로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를 공개하여 세계 언론의 여론을 환기했다. 그러나 각국의 언론들이 협조적인 데 비해 열강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에 분개한 열사는 연일 통탄하다가 순국하였다.
3.4Km 2024-12-0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0가길 14
의류 상가가 꽉꽉 들어찬 빌딩들이 즐비한 동대문, 이제는 아시아 최대의 의류상가 지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곳이 동대문 주변 지역이다. 이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뒤에는 동대문 원단시장, 평화시장과 인근에 자리 잡은 시장 사람들이 있었다. 30여 년 전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마음을 녹여주던 곳이 지금의 닭한마리 골목이었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8, 9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기업은행 건물을 끼고 좌회전하면 일방 통행길이다. 그 길 오른쪽에는 오늘도 동대문 종합시장과 인근 시장으로 드나드는 물품을 나르는 택배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 길 중간쯤 오른쪽에 보면 덕성각이라는 중국요리집이 보이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닭한마리집들이 나온다.
그 골목 닭한마리집들은 짧게는 5년부터 길게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식당이 있기 전 개인 집에서 닭칼국수를 팔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골목 닭한마리집의 역사는 30년 보다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당시 닭칼국수를 팔던 할머니집을 28년 전에 인수해서 지금까지 '닭한마리'를 팔던 식당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머니 한 분이 지금의 '닭한마리'식의 요리가 아니라 닭고기를 넣고 칼국수를 끓여 팔았다고 한다. 기와 얹은 한옥집 마루와 방에서 손님을 받았다. 지금의 사장은 그 집을 고스란히 인수해서 당시 마당이었던 곳에 홀을 만들고 식탁을 놓았다. 지금 남아 있는 집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집은 '진옥화 닭한마리'이다. 그러나 식당에 불이 났고 2009년 2월 재건축 하였다.
이 집 또한 처음에는 지금의 '닭한마리'식의 요리가 아니라 '닭칼국수'를 팔았다. 그러니까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요리의 원조는 닭칼국수인 셈이다. 지금도 이 골목 식당 간판이나 현관, 유리창에는'닭칼국수'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또한 '닭한마리'와 곁들여 먹는 메뉴에 칼국수 사리가 남아 있는 것도 그 증거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칼국수에 닭고기가 들어간 것에서 닭한마리를 육수에 넣고 끓이는 닭요리에 칼국수가 부재료로 들어가는, 주객이 전도된 요리이기도 하다. '닭한마리' 요리는 집집마다 거의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닭고기를 찍어먹는 소스의 맛과 육수, 선택해 넣어 먹을 수 있는 부재료 등이다. 그래서 이 골목 집집마다 소스와 육수의 비빔을 반만 공개한다. 나머지는 비밀이다. 소스의 주재료인 고춧가루가 좋아야 한다. 맵기만한 고춧가루가 아니라 매우면서도 풍부한 미감과 감칠맛을 머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도 엄나무, 인삼 등 집 마다 다르다. 큰 양푼에 육수 가득 붓고 그 속에서 닭한마리를 통째로 끓인다. 닭은 살짝 삶아서 나오지만 식탁 위 간이 가스레인지 위에서도 푹 끓이는 게 좋다. 왜냐하면 감자와 떡, 인삼, 대추, 버섯 등 부재료들의 맛이 우러나 뒤엉켜 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끓고 나면 고기와 부재료를 건저 먹은 뒤 남은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것으로 닭한마리의 만찬은 끝난다. 지금도 이 골목 단골의 반 이상이 동대문 주변 시장 사람들이다. 소문이 일본까지 퍼져 일본 여행자들도 꽤 많이 찾는다. 또한, 맛골목을 좋아하는 젊은 연인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팔품을 팔아 이 골목을 찾는다. 그들의 입맛에 30년 전 '닭한마리'요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