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모리 홍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토니모리 홍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토니모리 홍대

10.0 Km    0     2024-03-24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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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K-뮤지컬국제마켓

2024 K-뮤지컬국제마켓

10.0 Km    4     2024-05-24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14길 29 (혜화동)
02-550-2652

K-뮤지컬국제마켓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국내외 투자를 촉진하고 기획·개발 단계부터 해외 유통 단계까지 전 과정에 걸친 투자 기반을 마련하여 안정적인 뮤지컬 제작·유통 환경을 조성하고자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202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0.0 Km    40109     2024-06-03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친교의 신앙으로 선교하는 제자공동체이다. 이 건물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으로서 조선 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트롤로프 주교가 영국인 아더 딕슨의 설계대로 착공하여 헌당식을 했다. 이후 1993년에 원 설계도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게 되어 본래 모습대로 1996년에 완공하였다. 이 성당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 건축 기법을 조화시킨 아름다운 건물이다. 외형은 십자가 형태로서 다양한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성당 내부에는 좌우로 12사도를 상징하는 돌기둥이 서 있고 전면 반원형 벽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상이 새겨져 있으며 지하 성당에는 트롤로프 주교의 유해가 안치된 동판이 새겨져 있다. 주일감사성찬례는 성인과 학생, 어린이에 따라 여러 시간대가 있고, 평일에는 오전 7시와 낮 12시에 있다. 성공회는 나라와 문화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니며, 한 교회 안에서도 신앙과 신학의 흐름이 매우 다양하다. 다른 교단과 다르게 성공회는 ‘개혁된 가톨릭’,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이다. 수도권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3번 출구에서 200m에 있다.

한사랑약국 이대

한사랑약국 이대

10.0 Km    0     2024-03-2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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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공방 인사

수정공방 인사

10.0 Km    0     2024-03-24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19-2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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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축제 - 내 마음을 가꾸는 정원

정신건강축제 - 내 마음을 가꾸는 정원

10.0 Km    2     2024-02-06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익로 18
02-3272-2334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직접 만든 의학 정보 콘텐츠 아카이브이다. 내 마음을 가꾸는 정원에서 마음 치유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백년가게]하나로회관

[백년가게]하나로회관

10.0 Km    596     2024-06-05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5길 25
0507-1402-7451

[중소벤처기업부 2018년도 '백년가게'로 선정] 1984년 개업해 2대에 걸쳐 운영되는 한정식 전문점이다. 약 17가지의 요리가 제공되는 '하나로 한정식'이 대표 메뉴. 저렴하지만 정성스러운 집 밥 메뉴들로 전통을 유지하면서 손님들에게 추억의 맛을 제공한다. 정보제공 : 소상공인협회 (Tel : 042-363-7981)

돈암장

돈암장

10.0 Km    1     2024-01-02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3길 84 (동소문동4가)

1945년 이승만이 한국에 돌아와 처음 기거했던 사저로 당시 서울시 돈암동 인근에 있다 하여 [돈암장]이라 하였다. 원래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동활인서가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성진의 의뢰로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배희한이 궁궐 양식으로 돈암장을 지었다. 쇠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를 짜서 지었으며 3채의 건물과 700평에 이르는 정원이 조화를 이룬 빼어난 주택이다. 해방 후에는 조선타이어주식회사 사장이었던 장진영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에게 2채를 빌려주어 2년간 거주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승만의 거처로 알려진 한국 근대 정치의 역사적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돈암장은 주인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증축과 개축으로 원형을 잃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현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목조팔작지붕의 한옥 본채 한 동은 2004년 등록문화대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개인 소유로 소유주가 거주하고 있어 방문은 어렵다.

창경궁

10.0 Km    60032     2024-07-03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창경궁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이후 성종 임금 대로 와서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창경궁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 사적인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하여 창경원이라 격하되고 동물원으로 이용되었으나,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온 겨레의 노력으로 1987년부터 그 옛날 본래 궁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홍화문, 명정전(조선 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통명전, 양화당, 춘당지 등이 있으며 구름다리를 통하여 종묘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다. * 주요 문화재 - 홍화문(보물), 명정문(보물), 명정전(국보), 통명전(보물), 옥천교(보물) [창경궁 홍화문 - 보물(1963년 1월 21일 지정)] ‘홍화(弘化)’의 뜻은 교화, 덕화를 널리 한다는 뜻으로 창경궁의 다른 전각들의 이름과 함께 서거정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아래층은 기둥 사이마다 2짝씩 문짝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게 하였으며 위층은 마루를 깔고 앞뒤 벽면에 조그만 널문들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 꼭대기 양 끝의 조각과 부드럽게 굽어 내린 내림마루 부분의 조각상이 건물의 위엄을 한층 더 돋우고 있다. 여러 차례의 수리와 단청으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었지만, 창경궁·창덕궁 같은 건물과 함께 17세기 초반 목조건축의 연구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창경궁 관천대 - 보물(1985.08.09 지정)] 서울에는 현재 조선시대에 만든 2개의 관천대가 있다. 하나는 창경궁 안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옛 북부 관상감 자리인 전 휘문고등학교 교지에 있는 것인데, 두 관천대는 구조나 크기, 제작 방법이 거의 같다.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의하면 창경궁 천문 관측소는 조선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졌다. 높이 3m, 가로 2.9, 세로 2.3m 정도의 화강암 석대(石臺) 위에 조선시대 기본적인 천체관측 기기의 하나인 간의를 설치하고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간의는 없고 석대만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관측소를 소간의대, 또는 첨성대라고도 불렀다. 관상감의 관원들은 이 관측대에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였다. 17세기의 천문 관측대로서는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귀중하며, 관상감에 세워졌던 조선 초기의 또 하나의 관천대와 함께 조선시대 천문대 양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창경궁 풍기대] 조선 후기(18세기)에 제작되었다.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높이 225cm, 하부 대석 높이 91cm, 넓이 62cm×62cm, 상부 팔각주 높이 135cm, 경 43cm이다.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풍기대에는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양각한 팔각주를 세운 모양으로 되어 있다. 팔각주의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직경 4.5cm)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 배수 구멍이 뚫려 있다. 깃대의 길이는 확실치 않고, 깃대 끝에 좁고 긴 깃발을 매어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잴 수 있었다. [창경궁 명정전 - 국보(1985.01.08 지정)]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놓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 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창경궁 대온실 - 등록문화재(2004.02.06 지정)] 대한제국 순종 융희 3년(1909)에 준공한 온실로써,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의 온실이었으며, 진열 식물은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 등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정비 중창공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자생난을 중심으로 세계의 각종 난을 진열하고 있으나 앞으로 국내 자생식물 단일 온실로 특성화할 계획이다.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홍화문

10.0 Km    20173     2023-10-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창경궁(昌慶宮)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다포식(多包式)이다. 장대석의 석조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두었으며 문루 하층은 양개의 판문이 설치되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고 상층은 판상의 누가 설치되었다. 상층의 누는 사면 벽의 판문을 열면 사방을 관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하층의 공포는 내3출목, 외2출목으로 명정전(明政殿)의 공포 형식과 유사하다. 다만 첨차 뒷몸이 모두어져 한 몸이 되어 만들어진 양봉이 대량을 깊숙이 받아 그 끝이 고주의 그것과 맞닿을 정도로 발달된 점이 다르다. 가구는 고주가 상하층에 걸쳐 세워지고 하층보와 상층보가 여기에 결구되어 있다. 하층의 대량 상부에는 우물천장이 설치되었고 상층의 대량 이상은 노출하여 연등천장이 되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각 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마루에는 취두 합각마루 끝과 추녀마루에는 각각 용두와 잡상을 놓고 사래 끝에는 토수를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