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Km 2025-08-2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0 (여의도동)
여의도 웰빙 산채정식 맛집 명보정은 건강에 좋은 산나물, 각종 채소, 쌈 등이 함께 제공되는 산채 정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여러 매체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음식의 재료는 엄격히 선정한 강원도 산지의 야채와 경기도 양평에서 직접 키우고 숙성시킨 유기농 김치, 장들과 기름, 채소, 나물, 잡곡들로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만든다고 한다. 20여 가지가 넘는 반찬으로 다채롭게 차려지는 웰빙산채정식은 제철 나물과 굴비, 청국장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저녁시간에는 차돌박이, 오겹살, 항정살 등의 육류도 준비되어 각종 모임 장소로도 손색없다.
10.3Km 2025-08-2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0
여의도 한식 맛집 <성하>는 주인이 직접 요리하여 정성가득한 엄마표 집밥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30년간 운영해 온 노하우가 돋보이는 정갈한 반찬 구성으로 단골 손님이 많으며 한 상 가득 채우는 푸짐하고 맛깔나는 상차림에 반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사의 부담을 덜었다. 점심에는 그날그날 신선한 식재료로 반찬이 바뀌는 성하정식을 준비하여 주변 직장인들이 메뉴 선택의 고민없이 즐기고 있으며 안주 및 육류 메뉴로는 북어찜, 돼지 불고기, 소육전(돼지육전) 등이 인기다. 40석의 매장을 갖추고 있어 단체모임도 가능하다.
10.3Km 2025-08-2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0 (여의도동)
웨이팅이 언제나 필수인 여의도 맛집 쌍대포는 파주 장단콩을 사용하여 직접 갈아 만든 순두부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인기메뉴인 해물순두부는 각종 해산물과 순두부가 푸짐하게 들어가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며 맵고 진해 보이는 국물은 보기와 다르게 자극적이지 않아 부드럽게 넘어간다. 취향에 따라 들깨, 해물, 굴순두부 중 골라 먹을 수 있으며 순두부 외에 소갈빗살, 소금구이, 오겹살, 껍데기 등의 고기류도 수준급이고 기본찬의 퀄리티도 상당하다. 가격은 여의도에 맞지 않게 저렴하다. 대포집 같은 푸근한 분위기를 갖춰 퇴근 후 부담 없이 들르기 좋은 여의도 맛집으로 추천되곤 한다.
10.3Km 2025-08-2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0, 2층
단골들 발길이 끊기지 않는 양꼬치 맛집 ‘여의도 양꼬치’는 9개월 미만의 최상급 어린 양을 100% 참 숯 만을 사용해 굽기 때문에 잡내 없이 부드럽게 즐길 수 있어 한국인 입맛에 맞는 양꼬치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이곳 특제소스는 양고기 향을 중화하면서 동시에 짙은 풍미와 감칠맛을 배가하기 때문에 양고기 초보자를 포함해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오리지날 양꼬치 외에 신선한 양고기를 비법으로 숙성한 고급 양갈비도 인기이며 꿔바로우 등 대중적인 메뉴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10.3Km 2025-08-2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0 (여의도동)
오감 충족 ‘진가’는 조미료 없는 맛으로 직장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시그니쳐 메뉴인 살치살 철판구이는 최고등급 프라임 살치살을 사용하며 글로벌 기업 경영진들이 만족하고 오마카세를 권유할 정도로 숙성과 손질이 수준급이다. 또한 국산 돼지고기, 최고급 덴마크햄, 1등급 생크림과 우유 등 최고급 재료를 사용한 특별한 맛의 김치전골(투움바, 부대)과 떠먹는 두껍 삼겹 스테이크, 국물 닭갈비, 레몬크림새우 등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메뉴로 이 집만의 차별화를 이룬다. 저녁에는 직장인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이자까야로 변신해 소규모 모임도 가능한 맛집이다.
10.3Km 2025-08-2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30 (여의도동)
여의도 매생이 요리의 원조인 향토는 직장인이 선택한 여의도 3대 맛집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이미 <생방송 투데이>, <2TV생생정보> 등 다수의 방송에 소개되었으며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이 집 시그니쳐 메뉴인 통문어 보쌈은 꽃처럼 피어난 통문어와 부들부들 보쌈을 보쌈 속, 백김치와 같이 즐길 수 있어 대낮에도 막걸리를 부르는 별미이며 홍어삼합, 모둠전 도 인기가 높다. 매생이국+보리비빔밥, 보쌈 정식 등의 점심메뉴도 준비되며 합리적인 가격에 다채로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단체모임이나 회식이 가능한 룸과 단독 룸이 창가 쪽으로 통유리로 되어 여의도 특유의 경치를 보면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회식이나 모임 시 자리 경쟁률이 치열한 맛집이다.
10.3Km 2025-11-04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8 (장충동2가)
일성이준열사동상은 이준 열사의 애국 항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장충단 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이준 열사는 1859년 함남 북청 출신으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1898년 11월의 만민공동회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04년 대한보안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획득을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일진회에 대항하여 공진회를 조직하고 친일적인 대신들을 규탄했으며 애국계몽 운동에 힘썼다. 1907년 광무황제로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밀령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도착하여 황제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일제의 한국 침략을 폭로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를 공개하여 세계 언론의 여론을 환기했다. 그러나 각국의 언론들이 협조적인 데 비해 열강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에 분개한 열사는 연일 통탄하다가 순국하였다.
10.3Km 2025-11-04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8 (장충동2가)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는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제출되었던 서한을 기념하는 비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 유림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해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공헌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희사금과 국민의 성금 등으로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 비를 건립하였다. 세계평화회의에 제출된 서한은 [파리장서]로서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이다. 곽종석, 김복한을 비롯하여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이 장서를 김창숙이 상해로 가져가도록 하였고 이를 다시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되었다. 또한,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과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다. 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유림을 체포 투옥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제1차 유림단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 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장충단공원에 처음 기념비가 세워진 이후 1977년 경상남도 거창, 1997년 대구 월곡역사공원, 2008년 전라북도 정읍사공원, 2014년 경상북도 봉화군 송록서원 등 곳곳에도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10.3Km 2023-08-11
한양도성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축성한 성곽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라있다. 총 길이는 18km에 이르며 가장 아름다운 곳은 흥인지문부터 혜화문까지 낙산구간이다. 흥인지문에서 성곽에 오르기 전에 서울디자인지원센터의 한양도성박물관에 들러 서울의 과거를 들여다보자. 해가 질 무렵 낙산공원에서 자리 잡은 낙산정으로 가보자. 서울 한복판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일 것이다.
10.3Km 2025-12-01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101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장충동 남산공원(남산 2호 터널 입구)에 위치해 있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 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내려갔다. 1919년 4월 1일, 3천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모인 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시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고 시위대열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은 총검을 휘두르고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일제는 유관순을 이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체포하여 서대문형무소에 감금하였으나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으로 결국 1920년 10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