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Km 2024-08-22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동수원로 399 (인계동)
월화원은 중국 광둥(廣東)성이 효원공원 서편에 조성한 중국식 정원으로서 광둥 지역 전통 정원의 특색을 살려 건물과 정원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2003년 10월 경기도와 광둥성이 체결한 '우호 교류 발전에 관한 실행 협약'의 내용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전통 정원을 상대 도시에 짓기로 한 약속에 따라 2005년 6월 15일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2006년 4월 17일 문을 열었다. 광둥성에 있는 전통 정원인 영남 정원과 같이 건물 창문으로 밖의 정원 모습을 잘 볼 수 있게 하였고 후원에 흙을 쌓아 만든 가산(假山)과 인공 호수 등을 배치하였다. 또 호수 주변에는 인공 폭포를 만들고 배를 본떠 만든 정자를 세우기도 하였다. 곳곳에 한시와 글을 새긴 건물은 하양 가루로 파랑 벽돌과 나무를 연결하는 광둥 지역의 전통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라 지었다. 지붕 접합부는 나무와 벽돌, 석회 조각 등을 사용하였다. 2005년 6월 한국으로 건너온 중국 노동자 약 80명의 손으로 지어진 이 정원 크기는 6,026㎡(1,820평)이며 광둥성이 건축비 34억 원을 부담하였다. 2003년 10월 맺은 협약에 따라 경기도 역시 광둥성 광저우(廣州)에 있는 웨시우공원(越秀公園) 안에 해동 경기원(海東京畿園)을 조성하였다. 2005년 12월 문을 연 해동경기원은 전라남도 담양군에 있는 한국 전통 정원 소쇄원을 본딴 것이다.
18.7Km 2025-05-2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다리로 253 (인계동)
백청우칼국수 본점으로 해물칼국수와 해물 만두전골, 찐만두 등을 파는 소박한 분위기의 음식점이다. 해물 만두전골은 준비된 육수와 각종 해물, 호박, 파, 채소 등을 넣고 끓여준다. 신선한 재료를 바로 끓여서 먹는 재미가 있다. 비 오는 날이나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씨에 많이 찾는 곳이다. 포장과 배달이 가능하다.
18.7Km 2025-04-2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八達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1794년 2월 28일 장안문과 같은 날에 터 닦는 일을 시작했지만 대체로 장안문보다 공정별로 약 1주일 늦게 완성하였다. 강원도 출신 목수 윤사범이 다포를 짜 맞추는 일을 담당했는데, 이 목수는 훗날 창덕궁 인정전을 짓는 공사를 담당해 근 100년 만에 화성에서 재현했던 다포 건축 기술을 이어 나갔다. 팔달문은 축성 당시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사 감독과 석공의 이름을 새긴 실명판, 현판까지 원형이 잘 남아 있다. 2013년 처음으로 문루 전체를 수리했는데 훼손된 목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였다. 부재에 남겨져 있는 전통 기술의 흔적까지 보존한 사례로 손꼽힌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
18.8Km 2025-01-07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76-2 (팔달로3가)
팔달문 시장은 영동시장과 함께 ‘왕이 만든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전라도 해남에 터를 잡고 무역업을 하고 있던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을 수원으로 불러들였고, 그 후 전국의 상인들이 수원을 주시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이렇게 수원 화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팔달문 시장은 수원을 상업과 경제의 중심지로서 세우고자 했던 정조의 뜻에 따라 팔달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도 성업 중인 전통 재래시장이다. 매향교에서부터 시작되는 통닭거리와 가구거리, 그리고 상가 안에 자리하고 있는 패션거리로 구분되며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또한, 시장 상인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아동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한 의류 쇼핑을 할 수 있는 패션거리는 젊은 감각의 보세의류점이 많아 산책하듯 둘러보면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18.8Km 2024-11-26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 (팔달로2가)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 관광특구는 2016년 2월에 지정되었으며, 수원화성 일대 1.83k㎡의 지역을 말한다. 수원화성 성곽을 중심으로 장안구 팔달산~장안공원~연무대~팔달문 시장 일대이며,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서북공심돈, 동북각루와 방화수류정, 북수문, 화홍문, 동남각루, 동삼치, 동이포루 등의 시설이 포함된다.
18.8Km 2025-01-13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팔달산은 해발 128m로 옛 이름은 탑산이었으나 조선조 이태조가 탑산을 본 뒤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고 하며 산 이름을 팔달산이라 명명했다. 성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팔달산 정상 서장대에 오르면 수원시내와 화성행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1948년 8월 15일 일제 순사 노구찌의 순국비를 부순 자리인 중포산에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세웠으며, 1969년 3월 1일 삼일동지회는 삼일독립기념탑을 팔달산에 세우고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탑 옆으로 옮겼다. 또한 팔달산과 연무대를 오가는 화성어차를 이용해 수원화성을 일주하는 왕복 1시간의 관람코스가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18.8Km 2024-09-30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255번길 6
031-251-0171∼2
수원 영동시장은 정조대왕 시절 우시장으로 시작하여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깊은 시장이다. 경기 남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원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최대 번화가인 팔달문 주변 각종 점포가 밀집되어 있고, 현대상가와 재래시장의 복합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시민들의 통행이 많아 항상 생동감이 넘치고 거의 모든 상품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영동시장하면 한복을 떠올릴 정도로 한복과 포목 품목이 특화된 시장으로, 300여 개 상점 중 순수 한복점은 40여 개 점포이며 그 밖에 의류, 잡화, 농축산물을 취급하는 상점이 있다. 현재 수원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에 의해 아케이드와 냉난방시설이 갖춰지고 상점의 보수가 이루어져 현대적 시설로 탈바꿈되었다. 시장과 연결된 건물에는 7080 추억의 감성을 만나 볼 수 있는 28 청년몰이 있는데 디저트, 아트, 공예 상점 및 다양한 먹거리와 포토존도 있어 실내 데이트로 가볼 만하다.
18.8Km 2025-01-13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융릉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위층은 1칸으로 위로 가면서 좁아진 형태다.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 훈련인 성조(城操)를 거행했는데 1795년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1795년 성조식이 끝난 뒤 정조는 화성장대 현판의 글씨를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짓고 글씨를 쓴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효원의 종은 1991년 11월 수원시가 조성한 높이 3.54m, 지름 2.15m, 무게 12.5톤의 종이다. 팔달산 정상에 종각이 세워져 있으며, 19평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한식 기와집으로 건설되었다. 종의 전면에는 시의 상징물인, 은행나무, 철쭉, 비둘기 등과, 화홍문을 위시한 수원화성의 주요 문화재 등이 새겨져 있다. 효원의 종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효원의 종은 유료로 3번 타종할 수 있으며 제각각 다른 의미의 소원을 빈다. 첫 번째 타종하면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두 번째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빌며, 세 번째는 자신의 발전과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이 종각은 효의 도시 수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