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Km 2025-07-21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6가길 6 (예장동)
남산인권숲은 본래 중앙정보부가 위치하던 곳이다. 지금은 터만 남기고 숲으로 되어 있으며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념비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단순히 휴식 공간을 넘어 교육에 도움이 되는 장소이다.
8.1Km 2025-12-03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7길 23 (통의동)
아트스페이스 3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이다. 숫자 ‘3’은 예술가와 관람객, 갤러리 세 그룹 간의 조화와 균형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사동에서 시작해 2018년 서촌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추상미술 기획전 <이것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생각한다>, <젊은 공예가들의 신작전, 공예이기>, <컬러풀 한국 회화 – 조화에서 정화까지> 등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짚어주는 전시를 주로 개최했다. 화이트 벽과 시멘트벽을 동시에 갖춘 메인 전시실은 천정의 높이도 4m, 8m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 재미있는 전시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메인 전시실과 복층 구조로 연결된 공간에는 16세기 조선 시대 주거 형태를 볼 수 있는 유구 전시실도 있다. 이는 건물을 지으면서 발굴한 조선부터 근대에 이르는 주거 유적과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별도 전시실을 마련한 것으로 덕분에 최전선의 현대미술과 옛 문화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탄생했다.
8.1Km 2025-07-21
서울특별시 중구 주자동
조선시대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남산예장자락을 복원한 공원으로,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있다. 지상에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실을 재현한 ‘기억6’, 조선총독부 관사 터를 그대로 보존한 ‘유구터’, 남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남산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푸른 소나무 숲과 잔디밭,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지하에는 이회영 기념관, 친환경 버스환승센터, 녹색에너지센터 등이 있다. 이회영 기념관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공간으로, 선생의 유품과 기록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남산예장공원은 과거와 현재,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원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군사독재 시절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공원 조성 과정에서 다양한 역사적 유적과 시설물을 복원했다. 또한, 공원을 통해 시민들이 역사를 배우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8.1Km 2025-11-27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서린동)
1992년 종로에서 처음 오픈한 영풍문고 종각종로본점은 도서, 문구, 편의점, 무인양품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구성한 곳이다.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고전, 전공서적, 아동서적, 외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도서뿐만 아니라 문구류, 선물용품, 음반 등 다양한 상품을 함께 취급하여 방문객들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다. 낭독회, 사인회, 강좌 등 문화행사나 강연 등도 진행되어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장소이다. 종로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8.1Km 2025-05-27
서울특별시 중구 주자동
서울 남산 예장자락 일대에 약 1.7㎞에 이르는 역사 탐방길로, 서울시는 1910년 한·일 강제병탄(경술국치, 庚戌國恥) 등 아픈 역사를 담은 이 구간을 역사 탐방로로 만들어 2018년 8월 조성했다. ‘국치의 길’이라는 명칭은 국권 상실의 현장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자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국치길은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한국통감관저 터가 있었던 남산예장공원에서 시작해 ㄱ자 모양의 바닥 로고를 따라 연결된다.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던진 한국통감부 터(왜성대 조선총독부 터)와 노기신사 터,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뒤 일제가 세운 갑오역기념비, 경성신사 터를 거쳐 조선신궁으로 이어진다. 길 마지막에는 지난 8월 14일 위안부 기림의 날에 서울시에서 설치한 서울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도 만날 수 있다.
8.1Km 2025-03-19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
천왕근린공원은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해 있다. 공원 내에는 연못이 있는데, 연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여름철이 되면 무료로 물놀이장을 개장하여 아이들과 방문하기 좋다. 또한 공원의 녹지공간을 활용하여 캠핑 사이트를 조성하여 돗자리나 텐트를 가져와 캠핑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공간도 있다. 다만, 취사나 야영은 불가능하며, 캠핑장의 자세한 이용사항은 구청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된다. 온 가족이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휴식하기 좋은 도심 속 힐링 공간이다.
8.1Km 2025-03-13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1길 20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애국지사 이회영 선생을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흉상이다. 이회영은 이조판서 이유승의 4남으로 태어나 성장했다. 1905년에 을사늑약 체결의 음모를 저지하고 무효로 하는 운동을 주도하였고,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때, 6형제 전원과 일가족 50여 명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망명을 떠났다.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12년에는 합니하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무관학교 교육을 시작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독립군 간부 3,500여 명을 양성하는 성과를 이루고 독립전쟁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을 창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구성됐을 때는 의정위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아나키즘 운동과 의열단 조직을 지원함과 동시에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여 흑색공포단을 산하에 두고 의열투쟁에 매진했다. 중국의 항일부대와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도록 현지 지도 차 잠입하던 중 대련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으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국하는데 이때가 선생의 나이 66세였다. 흉상은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으며,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이 위치한 서울 YWCA 앞에 함께 놓여 있다.
8.2Km 2025-10-23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6길 14
02-6925-5916
경복궁 옆에 있는 숨바꼭질(Hide & Seek)는 서울의 정중앙에 자리하며, 도보를 통해 경복궁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 한국식 양옥을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하여 1인실부터 6인실까지 구비하고 있다.
8.2Km 2025-11-21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74
서울 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한국 가톨릭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으로 순교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성지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에 있다.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대규모의 고딕 양식 천주교 성당이자 한국 최초의 본당(사제가 상주하며 사목하는 성당)이다. 1977년 11월 22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하 성당에 엥베르 주교, 모방신부, 샤스탕신부 등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장된 거룩한 성지이다. 1900년 9월 10일 베르뉘 주교 등 병인박해 당시 순교자들의 유해를 용산신학교로부터 대성당 지하묘소로 안치하였으나 이후 연고지로 옮겨 모셨고 1926년 기해교난과 병오교난 때의 순교자 79위의 유해를 지하 묘소에 모셨다가 대성당 좌측 회랑에 복자제대를 설치하고 79위 성화를 모셨다. 1950년 전쟁 때에 대성당이 인민군에 점령당해 지하 묘소에 안치 중인 순교자 유해가 손괴당하기도 하였다. 군사 정권 시대를 지나면서 민주화 투쟁의 중심지로 인식되기도 했다. 1991년, 퇴락한 유해를 포장하고 부식된 납관 등을 새로 제작했으며 유해를 안치한 후 봉인하여 석관에 모시고, 이를 새로 말끔히 단장한 현실에 모신 후 비명을 적은 석판을 세워 마무리했다. 수시로 순례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묘역의 입구를 유리문으로 개조 설치하였다. 평일과 주말에 미사와 고해성사 시간을 갖는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으며 크리스마스 때는 주위의 화려한 거리 장식 사이에서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8.2Km 2025-03-16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조선 전기의 문신 류순정(1459~1512)과 무신인 그의 아들 류홍(1483~1551)의 묘역이다. 류순정과 류홍 부자는 공을 세운 공신으로, 이 묘역은 16세기에 조성되었다. 오늘날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부자(父子) 2대 공신묘역으로, 돌로 만들어 묘 앞에 세워 둔 석물들의 양식과 묘역의 조성 형태로 조선시대 공신의 묘를 세우던 관습이나 제도 등 묘제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류순정의 묘 형태는 부인과 상하 합장으로, 위는 류순정의 묘이고 아래는 부인 안동 권씨의 묘이다. 부부의 묘역 왼쪽에는 류순정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67년(명종 22)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한성부 판윤이었던 강혼이 지었고, 글씨는 이름난 서예가였던 송인이 썼다. 류순정의 묘에서 서남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언덕에 아들 류홍을 비롯한 후손의 묘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