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생고기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남산생고기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남산생고기집

남산생고기집

18.2Km    2022-04-12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0길 21
02-3789-9721

명동에 현지인이 자주 방문하는 숨어있는 맛집이다. 대표메뉴는 삼겹살이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성북동 마을과 고택, 예술가들의 이야기

18.2Km    2023-08-08

여기 마을과 집과 그 집에 살던 예술가들이 있다. 1970~80년대 서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북정마을이 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있고, 이종석의 별정이 있는 성북동의 고택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다. 문인가 화가들의 정취가 숨쉬는 성북동을 여유 있게 돌아보자.

출처:이야기를 따라 한양 도성을 걷다.

쿠즈모텔

쿠즈모텔

18.2Km    2025-06-26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11가길 83
02-764-5778

종로구에 위치한 쿠즈모텔은 쾌적하고 청결한 객실을 제공한다. 더블룸, 트윈룸, 특실 등 다양한 타입의 객실이 있다.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18.2Km    2024-06-11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곡로35길 28-7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는 남부순환로 난곡사거리에서 약 1.5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2차 건영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이 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한 낙엽교목이며 참나무류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는 수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숯을 참나무로 구웠으며, 자연 번식으로는 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신림동 굴참나무와 같이 수형이 좋고 수관폭이 방대한 노거수는 남아있는 것이 매우 드문 실정이다. 이 나무는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2.5m, 나무 밑부분의 둘레가 2.9m에 달하며,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현재와 같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 수령은 약 250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근에는 장군이 별당으로 사용하였다는 칠불사가 있으며, 연 2회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 수명 보존(목신)과 동리의 평안을 위하여 고사를 지내고 있다.

창덕궁과 후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과 후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18.2Km    2025-04-02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인 순정황후(순종의 두 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가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은 창경궁(昌慶宮)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1406년(태종 6) 창덕궁 북쪽에 처음 조성된 후원은 세조 대에 확장하였고, 성종 대에 건립된 창경궁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후원 권역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소실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다시 조성되었다. 이후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개수하고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었다. 4개의 골짜기에는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영역이 펼쳐진다.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곳이지만,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자연 풍광을 느끼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는 것을 포함하여 군사훈련 등의 활쏘기 행사,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띄우기도 하고 꽃구경을 하였으며,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도 하였다. 또 대비를 모시는 잔치, 종친이나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 등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도 자주 열렸다. 또한 왕은 이곳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왕비는 양잠을 직접 시행하는 친잠례(親蠶禮)를 열었다.

창덕궁 달빛기행

창덕궁 달빛기행

18.2Km    2025-03-11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1522-2295

창덕궁 달빛기행은 은은한 달빛아래 녹음이 어우러진 창덕궁에서 전문해설사와 함께 궁궐의 곳곳을 관람하며, 각 전각에 대한 해설과 전통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돈화문 공사로 인해 창덕궁 금호문에서 출발해 진선문 · 인정전 · 희정당 · 낙선재 · 상량정 · 부용지 · 불로문 · 애련정 · 연경당 · 후원 숲길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창덕궁 낙선재

18.2Km    2025-04-10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년(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를 지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 일원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낙선재 뒤로는 후원을 만들었다. 건물과 후원 사이에는 작은 석축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화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했다.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한국문화재재단 동궐마루

18.2Km    2024-10-15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와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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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깊이보기 -심화해설-

창덕궁 깊이보기 -심화해설-

18.2Km    2024-11-25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02-3668-2300

O 창덕궁 깊이보기, 궐내각사
-시간: 매주 금토일 10:30
-장소: 궐내각사 권역
-내용: 조선시대 궁궐내 관청인 궐내각사의 역할과 기능 및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등과 같은 조선시대 관리들의 일상 업무 공간에 대한 이해
-예약페이지: https://booking.naver.com

O 창덕궁 깊이보기, 낙선재
-시간: 매주 금토일 14:30
-장소: 낙선재 권역
-내용: 낙선재 권역의 조영 배경 및 건축 특성 등 낙선재 권역에 얽힌 주제별 관람안내
-예약페이지: https://booking.naver.com

김포 수안산성

18.2Km    2024-06-10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

김포 수안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수안산 정상에 위치한 테뫼식(산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한 것) 석축산성이다. 수안산 정상(147m)에 오르면 강화, 인천, 서울지역 조망이 가능하다. 이 토성은 1985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처음 보고돼, 학계는 1682년에 지어지기 시작한 문수산성보다 천 년 이상 앞서 삼국시대부터 서해안 방어를 위해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95년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성벽과 성내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85m이며 성 내부의 면적은 약 1,000m² 정도이다. 성벽과 내부는 1985년까지 군부대가 주둔하여 많은 부분이 인위적으로 파괴된 상태이지만 남쪽 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이 부분을 보면 성벽의 높이는 2~3m 정도로 추정된다. 성돌은 크기가 일정치 않은 장방형의 활석으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현재 10단 정도가 남아이다. 성내의 건물 터는 현재 4곳이 남아 있는데 주변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은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대체로 신라-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들이다. 현재 발견되는 유물이나 성을 쌓는 방법으로 보아 이 성은 신라 진흥왕 때 한강 하류지역을 장악하고 쌓은 성이라고 판단되며, 통일신라 시대까지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