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Km 2025-10-28
광주광역시 서구 천변좌로 243 (양동)
1588-5471
호남 최대 전통시장인 양동전통시장에서 올해 세번째로 열리는 양동통맥축제는 먹거리, 즐길거리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시장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장주도, 시민참여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로 시장별 특성을 반영한 K-콘텐츠를 확보하고자 한다. 맛, 멋, 흥으로 양동과 통하자는 의미를 담은 양동통맥축제는 전통시장의 통(通)과 115년의 역사의 맥을 잇는 맥(脈)을 합쳐 양동과 통한다는 뜻을 담은 축제 브랜드이다. 다시찾고 싶은 양동이라는 명성에 맞게 양동전통시장을 브랜딩하고, 천원 맥주라는 킬러 콘텐츠를 통해 세대를 어우르는 K-전통시장 축제로 자리매김 한다. 후한 시장인심과 맛있는 먹거리로 개개인의 취향에 부응해 새롭고 유연한 여행지로서의 양동전통시장을 보여주고, '양동통맥, 너랑 나랑 통했잖아!'를 슬로건으로 시장과 방문객과의 감정적 교류와 재방문을 꿈꾼다. 제3회 양동통맥축제에서는 다양한 시장먹거리를 선보이고, CHEERS STAGE로 대표되는 밴드 공연, 시장에서 일탈을 즐기기 위한 댄스인더마켓과 양동 EDM, 시장의 본질에 충실한 깜짝경매와 가족단위 관광객들을 위한 톡톡블럭, 어항캔들만들기 등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펼쳐진다.
17.4Km 2025-01-06
광주광역시 북구 경양로 125
062-527-6636
풍년오리탕은 오랜 전통의 오리탕 전문점이다. 생오리로스, 오리훈제, 전골, 주물럭 등 다양한 오리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향긋한 미나리를 곁들여 먹는 오리탕이 별미이자 대표 메뉴이다. 단체석과 연회석이 준비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에도 좋다.
17.4Km 2025-08-08
광주광역시 북구 경양로 125
광주오리요리의 거리는 오리를 적당히 잘라서 익힌 다음에 들깨가루를 섞은 초장에 고기와 미나리를 찍어 먹는 음식점이 밀집된 거리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유동과 신안동 일대에서 특화된 오리탕의 시초는 1970년대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라남도 나주시 금천면에서 오리농장을 운영하던 한 청년이 보급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면서 오리로스를 권장하다가 유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 주인을 만났다. 청년은 식당 주인에게 자연산 청둥오리 요리법을 전해 듣고 미나리와 들깨가루를 넣어 끓여내는 오리탕을 개발하였다. 저렴한 가격에 오리가 공급되었고, 예측대로 담백한 오리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에 오리탕 전문점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의 오리요리 거리가 형성되었다. 북구 유동과 신안동 일대에서 오리탕 전문점이 많아질 수 있었던 것은 원재료인 오리 생산지가 인접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970~1980년대 당시 유동과 신안동은 광주고속터미널과 중앙고속터미널, 광주역이 가까워 시민들과 외지인들의 이동량이 매우 많았다. 이와 같은 지리적 여건을 기반으로 유동 일대에만 30여 개의 오리탕 전문점이 생겨났다. 현재 유동오거리 주변에는 아직도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광주광역시는 북구 경양로 일대를 음식특화거리로 지정하고 ‘광주오리요리의 거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메뉴는 오리탕, 오리로스, 오리주물럭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오리탕의 인기가 가장 좋은데, 다른 지역과 달리 국물 맛이 고소하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질그릇으로 만든 냄비나 솥에 된장과 간 고추, 들깻가루, 마늘, 생강 등을 넣고 토막 내 살짝 데친 오리고기를 넣어 4시간 이상 끓인다. 여기에 다시 된장으로 간을 하고 미나리와 대파를 얹어 내놓기 때문에 맛이 담백하다 광주오리요리의 거리는 광주광역시 북구 유동과 신안동의 경계지역에 자리하며, 중국인과 일본인들도 관광코스에 넣어 찾아올 만큼 이름이 있는 곳이다. 단일 음식이 특정 지역에 군집해 있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오리탕 메뉴로 특화거리를 형성하고 수십 년에 걸쳐 명성을 유지하는 사례는 드물다. 광주오리요리의 거리는 음식점 군락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17.5Km 2025-01-02
광주광역시 북구 경양로119번길 18
062-524-0443
영광오리탕은 광주 유동에 위치한 오리 요리 전문점이다. 들깨가루와 야채 등을 넣어 뚝배기에 끓인 오리탕이 대표적인 메뉴이다. 들깨가루를 넣은 국물에 된장으로 간을 맞춰 한번 끓인 후 다시 나물, 미나리, 토란대 등을 넣어 끓인 맛이 별미이다. 오리탕은 한마리와 반마리로 골라 먹을 수 있으며, 약오리는 4시간 전에 예약 필수이다.
17.5Km 2025-03-21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5
금호평생교육관은 광주 남구에 위치한 문화시설이다. 지역 주민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1월 1일 재개관하였다. 어린이실 온돌방을 신설하고, 평생학습강의실을 확충, 노트북 열람실을 신설하였다. 금호평생교육관의 상징과도 같았던 중앙정원은 지역 주민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차양이 설치된 쾌적한 휴게 시설로 개선하였다. 금호평생교육관은 약 18만 권가량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보유 장서 중 DVD를 포함한 9천여 권가량의 비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는 인문교양, 문화예술 및 직업능력교육 분야 등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7.6Km 2025-10-23
전라남도 나주시 청동길 14 (삼도동)
061-334-8249
나주 지역은 영산강을 품고 있는 평야 지대로 농산물은 물론이고, 수산물이 풍부해 시장이 형성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영산강의 풍부한 수량을 관개용수로 삼아 영산강 유역의 땅을 기름지게 했고,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을 바탕으로 영산강의 물길을 이용해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나주는 인접한 무안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장이 개설되었다. 풍부한 물산과 지리적 이점으로 18세기에 15개의 시장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잦은 농민운동과 자연재해로 인해 7개로 줄어들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부상한 시장은 영산강의 수로 교통과 호남선의 이점을 살린 영산포장이었다. 이후 영산강 상류의 댐 건설로 수로 교통의 이점을 잃었고,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나주읍이 상권의 중심지가 되면서 장세가 약화되었다. 나주 시내에는 나주 읍내장의 명맥을 이은 성북시장과 옛 장터에 개설된 상설시장 금계매일시장이 있었는데, 도시의 복원 계획에 따라 두 시장이 통합되어 2012년에 나주목사고을시장으로 변모했다. 나주목사고을시장은 2013년에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었고 토요문화장터, 토요야시장 등을 통해 성공적인 전통시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17.6Km 2025-11-19
광주광역시 남구 고싸움로 2 (칠석동)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에 의하여 칠석동 일원이 아시아 전승문화권으로 지정되면서 고싸움놀이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고싸움놀이 테마파크가 조성되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에 거쳐 고싸움놀이 전수교육관, 고싸움놀이 영상체험관, 민속놀이 체험마당, 야외공연장 등의 시설을 갖춘 테마파크가 건설되었다. 테마파크에는 체험관뿐만 아니라 부용정과 무송정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칠석마을 앞에는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0호인 할머니 당산나무가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신령한 것으로 여기고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신제를 지낸 후 고싸움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17.6Km 2025-11-06
전라남도 나주시 박정길 3 (산정동)
나주 순교성지는 기해박해(1839) 때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1807~1839베드로)와 병인박해(1866~1871)때인 1872년에 순교한 강영원(바오로,1822~1872), 유치성(안드레아, 1825~1872), 유문보(바오로, 1822~1871)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순교자 기념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경당 입구에는 60톤의 거석과 관 모양의 제대가 있고 경당 내부는 사방이 막혀있고 위쪽만 뚫려 있다. 성당 내에는 초대 나주 본당 신부인 하롤드(헨리, 1909~1976) 대주교가 초대 주임 시절에 쓰던 타자기를 비롯해 기도서, 십자가, 성합, 제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교육, 의료 등 자선을 통해 복음화에 앞장 선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었던 한옥 기와집이 복원되어 당시 수녀들의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근에 그들이 순교한 장소인 무학당 순교터 (현 나주초등학교 정원 내)가 있고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여 개의 돌이 130여 년 동안 현장에 보전되어 오다가 2001년 나주 성당으로 옮겨 그 위에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