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기길 4코스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솔향기길 4코스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솔향기길 4코스

솔향기길 4코스

3.9Km    1     2023-12-04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솔향기길은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에서 해안선과 소나무 숲을 따라 백화산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안가와 솔숲길을 연결한 도보 중심의 길이다. 천혜의 해안 경관을 감상하며 피톤치드 그윽한 솔향과 바닷냄새를 들이마시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에 흠뻑 매료되어 탐방할 수 있다. 총 5코스의 길은 태안의 주요 경치를 둘러볼 수 있게 구성됐다. 그중 4코스는 새섬리조트~호안·임도~청산포구~갈두천(풍천교회)로 이어진다. 섬의 모양이 만조 때는 자라, 거북 등과 같고 간조 때에는 3발자라와 같은 새섬에서 출발해 과거 정기여객선이 운항했던 청산나루터, 자연 친화적 농촌마을인 갈두천마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청산리오토캠핑장

청산리오토캠핑장

4.3Km    0     2024-07-17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청산길 279

태안 청산리 오토캠핑장은 태안 바닷가 송림에 위치한 오션뷰 캠핑장이다. 송림 그늘아래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목줄을 필수로 한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다.

이원식당

이원식당

4.6Km    47446     2023-11-07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원이로 1539
041-672-8024

이원식당은 50년 전통을 이어가는 맛집으로 박속밀국낙지의 원조이며 원산지이다. 충남 지정 모법업소로 선정되어 태안관광의 대표 음식점이기도 하다. 이원식당은 태안군 이원면에서 잡히는 갯벌 낙지를 주로 사용하는 식당으로, 충남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하는 로컬푸드 맛집이다. 박의 속을 잘라서 야채와 갯벌낙지를 넣고 맑고 시원하게 끓이는 태안군 원북·이원면의 향토음식 박속낙지탕에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어 먹는 박속밀국낙지탕을 맛볼 수 있다.

구도 범머리길

구도 범머리길

5.0Km    1     2023-11-22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

구도범머리길은 서산아라메길 중 하나로 서산시 팔봉면의 서해안과 팔봉산을 따라 조성된 트레킹 코스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자 생태자원의 보고인 가로림만의 풍광을 직접 보고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으로 구도포구의 갯벌과 민물과 바닷물이 겹쳐 둠벙을 이룬 옻샘을 볼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팔봉산 감자 축제 및 팔봉 갯벌 체험장에서 갯벌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구도범머리길은 A와 B 두 코스로 나뉘어 있다. A코스는 팔봉산 주차장에서 원점회귀 기준으로 주벅전망대까지 돌아보는 총길이 24km에 8시간 30분가량이 소요되며, B코스는 구도항에서 원점회귀 기준으로 총길이 14.5km에 4시간가량이 소요된다. 등산 난이도는 A가 좀 더 높은 편이다. 구도범머리길은 국도 32호선에서 지방도 634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가 가깝다. 주변에는 구도항, 팔봉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원반도

이원반도

5.3Km    25702     2024-08-07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
041-670-2114

이원반도는 태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는 지형이다. 태안의 땅끝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최북단에 만대포구가 있는데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서산 벌천포와 마주 보고 있고, 거리가 가까워서 벌천포와 대산산업단지, 독곶리 황금산 등이 보이기도 한다. 이원반도 내에서 가족단위로 찾아가기 좋은 해수욕장은 내리 1구의 사목해수욕장이다. 모래밭의 길이가 1km에 달하며 폭은 100m 정도이다. 대로변에서 700m가량 서쪽 바다로 들어가면 해변이 나타난다. 솔숲동산이 해변 가운데 있고, 그 양편으로 백사장이 뻗어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조용히 해변 정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카페만조

카페만조

5.7Km    1     2024-01-09

충청남도 서산시 중왕뱃마을길 14

카페만조는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위치한 디저트 카페이다. 가로림만해양정원을 앞마당 삼아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해 질 녘 낙조를 감상하기에도 좋다. 대표 메뉴는 진하고 쫀득한 바닐라 크림을 풍성하게 올린 만조 구름 커피다. 이 밖에 신선한 잠봉 고메 버터를 곁들인 샌드위치 잠봉뵈르, 달면서 짤 소금 크림을 올린 만조 커피 등도 맛볼 수 있다.

중왕리수로

중왕리수로

5.9Km    23078     2023-08-03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닷개길

전체 길이 약 2km의 간척지 수로로 전면에 갈대, 줄풀 및 말풀이 분포되어 있다. 수심은 2m 미만 인근에서 민물낚시도 겸할 수 있다.

팔봉산(서산)

6.6Km    53303     2023-12-05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팔봉산은 태안반도 서편에 위치한 해발 364.4m의 산이다. 해발고도가 높지는 않지만 서해안의 저지대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는 우뚝 솟은 것처럼 보인다. 산의 형세는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9개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정기 있게 솟아 있으며, 산의 명칭은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있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봉이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을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하였고, 매년 12월 말이면 그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넣지 않았다고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세가 수려하며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산세와 멀리 보이는 서해 바다가 절경이며 3시간 정도의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등산로는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 있는데, 북쪽의 양길리 방면이 정상과 가까우며 서산 아라메길 구도범머리길 A코스 시종점이기도 하다. 이 산은 남동쪽으로 금강산(316.1m)과 이어지며, 주변에는 구도항, 팔봉갯벌체험장 등이 있다.

태안 볏가리마을

태안 볏가리마을

6.6Km    37979     2024-08-07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볏가리길 62

서해바다와 가로림만 사이에 길게 뻗은 이원 반도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농촌체험마을 중 하나이다. 언뜻 보면 들녘이 많아서 농사에만 의존하는 듯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업도 활발한 반농반어의 바닷가 마을이다. 지금도 추수가 끝난 뒤의 논에 볏가리를 세우는 풍속이 남아 있어 볏가리마을로 불리게 됐다. 이처럼 농어촌의 풍속과 풍경을 모두 지니고 있으며 농촌체험, 갯벌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마을 서쪽의 바닷가 절벽엔 구멍바위가 있는데, 이 구멍을 통과하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옛날부터 아들 낳기를 바라는 아낙네의 발길이 잦았다고 한다. 또한, 이 구멍바위로 바라보는 일몰이 아름답다.

이종일선생생가지

이종일선생생가지

7.1Km    17802     2024-05-30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